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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2)
방석순 2008년 11월 17일 (월) 03:06:56
참으로 철딱서니 없는 새댁이었습니다. 젖을 빨던 아이가 잠들기만 하면 안 다니는 데가 없었습니다. 저녁 찬거리 산다고 시장에도 다녀오고, 언젠가는 더 좋은 데서 살 거라며 집 보러도 다니고. 그래도 배불리 젖을 먹은 아이는 두어 시간씩 보채는 법 없이 새근새근 잠을 잘 잤습니다. 새댁은 갓난아이로 인한 근심걱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철없기는 남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으로 직행하는 날은 한 주일에 고작 하루 이틀. 툭하면 야근, 출장이고 아니면 한 주일에 닷새쯤은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꽃꽂이다, 서예다 취미를 붙인다며 여기저기 오가던 새댁이 어느 날 반색할 만한 소일거리를 찾아냈습니다. 하숙, 빈 방에 잠재우고 지은 밥 나눠 먹으면 돈이 생기는 신나는 일거리였습니다. 하숙생은 마침 방학을 맞아 인근 대학교에서 우리말을 배우러 온 두 명의 재일동포 여학생들이었습니다.

남편이야 밖으로만 나도니 변변히 인사 나눈 적도 없지만 한 달여 하숙생활에 새댁은 여학생들과 꽤나 친해졌습니다. 우리말 공부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갔던 여학생들은 몇 달 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찾아와 아이의 첫돌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어느 한 곳 붙박이로 살기 쉽지 않은 게 우리네 살림살이니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어른이 되어 직장에 다닐 때까지 너덧 번은 이사를 간 것 같습니다. 신기한 것은 다 커서도 첫돌 때 두 여학생이 선물로 주고 간 원숭이인형을 끼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새댁은 중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두 여학생과의 만남도 아스라한 추억 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남편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직장을 두어 번이나 옮겼습니다. 예전 하숙생과 새댁의 연결고리는 어디서도 찾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게 인연의 질긴 끈일까요. 무려 27년 만에 그들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때 함께 우리말 공부를 하다가 서울에 남아 한의원을 개업한 친구가 물어물어 예전 하숙집 남편을 찾아낸 것입니다. 어느새 그 젊고 예쁘던 하숙생들도 중년이 돼 있었습니다.

재회의 반가움으로 그날 밤 철딱서니 새댁과 남편, 아니 우리 내외는 30년은 젊어진 기분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들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쌓인 궁금증과 이야기보따리를 풀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 ‘오십세주’가 뭐예요? 일본에서도 백세주는 많이 마셔 봤는데...” 그래서 ‘오십세주’ 제조법도 가르쳐 가며 우리는 마시고 또 마셨습니다.

한 사람은 우리말을 배운 후 곧바로 일본으로 돌아가 지금 센다이()에서 사업을 하고 있답니다. 또 한 사람은 국내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지금은 하마마쯔()의 문화센터에서 일본인 제자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국어 선생님은 요즘도 한 해 두어 번씩 남녀노소 일본인 제자들을 이끌고 우리나라를 찾습니다. 방송사에도 가고 우리 내외와 함께 식사도 하면서 제자들에게 우리말 현장교육을 시키는 겁니다. 언제나 명랑쾌활하고 재담도 잘 해서 나이 많은 제자들에게도 인기가 짱입니다. 가끔 메일로 웃기는 사연, 뚱딴지같은 질문도 보내옵니다.

“우리 예정대로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다들 너무 좋아하고 대만족하면서 돌아왔습니다. 아저씨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다음도 있냐? 라는 표정하셨죠? 그럼요! 다음도, 다다음도 있으니까 그런 줄 아세요!!)”

“그런데 ‘졸라’가 뭐예요?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말투라는 아저씨 자유칼럼 글을 읽었어요. 재미있게 읽었는데 어떻게 쓰이는 거예요?”

“아저씨 메일 끝에 ‘방석순 이상분’이라고 썼던데 ‘이상분’이 뭐죠?” ‘이상 무(以上 無)’는 알겠는데...”

그토록 밝고 명랑한 그가 사실은 꽤 오래전부터 중한 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날 아내는 종일 눈시울이 벌게져 있었습니다.

열 명도 넘는 제자들을 안내해 왔던 어느 날입니다. 방송 녹화현장도 지켜보고 그 자리에서 좋아하는 탤런트로부터 사인도 받아냈다며 모두들 신이 나 있었습니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여느 때처럼 일부러 시간을 내 우리 내외와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아저씨,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언니, 너무너무 고마워요! 또 올게요. 또 와도 괜찮죠?”

여전히 밝고 환한 인사에 아내는 또 목이 멥니다. 올 때마다 잊지 않고 들고 오는 선물이 미안스러워 “언니에게서는 뭘 답례로 받았어요?” 물었더니 “눈물!”하고 답합니다.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둘이 마주안고 한참을 울었다는 겁니다. 그래도 여전히 밝고 씩씩한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도 대견합니다.

아들의 결혼식 날 두 사람이 동시에 날아왔습니다. 한 사람은 센다이에서, 또 한 사람은 하마마쯔에서. 벌써 두어 달 전부터 서로 기별해 시간을 약속했답니다. 둘은 몇 번씩이나 아내와 부둥켜안곤 했습니다.

아이들 혼례에는 뜻밖에도 많은 분들이 분에 넘치는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일생 못 다 갚을 만큼. 경황이 없어 예를 갖추지 못해 두루 송구스러운 마음뿐인데 특히 두 사람에게는 더욱 신경이 쓰였습니다. 가깝지 않은 곳에서, 그리고 결코 가볍지 않은 병고를 짊어지고도 선뜻 날아와 준 정성에 콧날이 시큰해졌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신발 밟혔다고 짜증내고 어깨 부딪쳤다고 눈 부라리고 자동차 범퍼 스쳤다고 멱살 잡으며 살고 있습니다. 누구든 짓밟아야 내가 산다고 악다구니 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나 그들이나 모두가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와 그들은 모두 알게 모르게 갖가지 인연으로 얽힌 사돈의 팔촌이요, 스승과 제자요, 학교 동문이요, 고향 친지며 가까운 이웃의 형제자매인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에게나 함부로 인상을 쓰며 다툴 일이 아닙니다. 멱살을 잡고 한바탕 뒹굴고 난 상대가 알고 보니 가장 사랑하는 이의 형제자매였다면 얼마나 쑥스럽고 민망한 일입니까. 모든 인연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우리는 누구에게도 그렇게 험한 얼굴로, 닫쳐진 마음으로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혼례라는 대사를 치르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새삼 가슴에 새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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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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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211.XXX.XXX.68)
조카님에게도 이 난을 빌어 감사합니다. 평소 칼럼 운영 관련 자문에 응해 준 데 특히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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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 15: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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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222.XXX.XXX.125)
피천득 선생님의 같은 제목 수필을 생각나게 하는 佳篇입니다.
그러고 보니 거기 나오는 '아사코'도 일본 사람이었는데, 여기 등장하시는 두분은 재일 동포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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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7 15:50:21
0 0
신 아연 (123.XXX.XXX.28)
감동이 옵니다. 세월을 통해 '인연'을 확인해가는 일이란 삶의 큰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
답변달기
2008-11-17 15: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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