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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 -『희망의 인문학』
김이경 2008년 11월 11일 (화) 08:13:27
신문을 보니 서울대 신입생 열 명 중 한 명, 사법시험 합격자 열 명 중 한 명이 강남 출신이랍니다.(참고로, 강남은 서울의 25분의 1에 불과합니다.) 짐작대로, 부모의 능력과 투자가 학생의 실력을 결정하는 세상입니다. 하기야 예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 저희 반 70여 명 중 삼분의 일은 중학교 진학을 못했습니다. 집 근처에 가발을 만드는 가내 수공업 공장이 여럿 있었는데 거기서 일하던 같은 반 친구가 교복 입은 제 모습을 보고 도망친 일이 있습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네가 왜 도망을 가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냥 우두망찰한 채로, 쟤랑 나랑은 다시 못 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과연 저는 그 친구를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친구가 늘 먼저 보고 달아났는지, 아니면 어린 나이의 고생으로 부쩍 늙어서 제가 보고도 못 알아봤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아마 서로가 사는 공간이 너무 달라서 애초에 부딪힐 일이 없었을 겁니다. 물론, 중학교 진학은 못했지만 뒤늦게 운이 트여 잘살게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지독히 적다는 것을 아이들도 압니다.

바야흐로 부가 학력을 낳고 학력이 다시 부를 낳는 시대입니다. 아무리 공부는 제 할 탓이라지만, 많이 배운 부모의 후원 아래 최상의 교육을 받는 아이들과 변변한 공부방 하나 없이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이 경쟁이 될 리 없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은 점점 학업에 뜻을 잃고 공부에서 멀어집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에서도 멀어집니다. 그 아이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요?

열세 살에 시카고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은 얼 쇼리스는 인문학을 공부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인문학을 배우면 록펠러보다 더 부유하게 살 수 있다고요. 황당한 이야기지요. 그러나 얼 쇼리스가 쓴 『희망의 인문학』을 보면, 뻥은 좀 있지만 아주 황당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1995년 가을, 얼 쇼리스는 거리의 청소년, 노숙자, 난민, 에이즈에 걸린 싱글맘 등 20여 명의 학생들을 놓고 ‘클레멘트 코스’를 시작합니다. 학교 올 차비도 없는 학생들에게 토큰을 나눠주면서 철학, 예술, 논리, 시, 역사를 가르치는 이 인문학 강좌에 대해 지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말도 안 된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학생들이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토론하고,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읽고, 블레이크의 시를 낭송한다는 게 믿어지지도 않았고 또 의심스러웠던 거지요. 직업교육이라면 모를까 고전교육이라니?

하지만 쇼리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난을 받아들이고 거기 안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난을 의심하지 않는 정신이 바로 가난이라는 거지요. 쇼리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교도소에서 만난 한 여성 재소자 때문이었습니다. 고교 중퇴에 마약중독자인 비니스 워커. 클레멘트 코스의 산파 역할을 한 여성입니다.

첫 만남에서 쇼리스는 묻습니다. “사람들이 왜 가난한 것 같나요?” 비니스는 거침없이 대답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치면 그 애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을 거예요.… 길거리에 방치된 그 애들에게 도덕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

그녀의 말에 쇼리스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인문학의 역할에 대해, 정신적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성찰하는 힘’을 가질 때 비로소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그것은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삶을 뜻한다는 걸 깨닫습니다. 클레멘트 코스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에게 쇼리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제껏 속아왔어요. 부자들은 인문학을 배웁니다. 인문학은 세상과 잘 지내기 위해서, 제대로 생각할 수 있기 위해서, 외부의 ‘무력적인 힘’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칠 때 심사숙고해서 대처해나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공부입니다. 저는 인문학이 우리가 ‘정치적’이 되기 위한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자들은 잘살기 위해, 힘을 얻기 위해 정치를 이용합니다. 이 사회에서 잘 먹고 잘사는 데 필요한 효과적인 방법을 더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부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사람에게서, 그리고 사람들이 소유한 것들에게서 나오는 진정한 힘, 합법적인 힘을 갖고자 한다면 정치를 이해해야 합니다. 인문학이 도와줄 것입니다.”

쇼리스의 생각이 황당무계한 것인지 현실적인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는 클레멘트 코스의 이후 성과가 말해줍니다. 뉴욕에서 시작된 클레멘트 코스는 십 년 만에 4대륙 50개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기에 이릅니다. 몇 년 전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노숙자와 빈민, 교도소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한 ‘희망의 인문학’ 강좌가 진행되고 있고요.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클레멘트 코스를 수료했다고 해서 금방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에 소개된 빈민 수강생들의 후일담이 그 증거입니다. 의욕을 갖고 시작한 공부를 끝맺지 못한 학생들도 있고, 비극적 최후를 맞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가난이 수 세대에 걸쳐 그들을 옭아맸듯이, 가난으로부터의 해방 역시 수 세대가 걸릴 것입니다. 쇼리스는 인문학이 그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희망의 인문학』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사는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교육’이란 사실을 일깨웁니다. 죽어라 시험공부만 하는 아이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난한 존재가 되어버린 우리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그 아이들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희망의 교육, 배움이 희망이 되는 아름다운 교육을 언제나 할 수 있을지, 우리들의 가난이 부끄러운 겨울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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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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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란 (211.XXX.XXX.45)
공감입니다. 저도 희망의 인문학을 접하며 많은것을 꿈꾸어 볼 생각이었으나 실행하지 못하던 중에 글을 읽고 다시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접근 할 수 있을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시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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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1 0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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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철 (211.XXX.XXX.45)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이야기에는 상당히 공감이 갑니다. 그런데 시작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좀 다른 생각을 해 보면 어떨까요. 강남을 서초/강남/송파구로 본다면 일반계 고등학생 인원이 6만명 정도이고 서울 전체는 30만 명 정도이니 25분의 1이 아니라 5분 1이 됩니다.
서울대 입학 정원이 3천명이니 강남 출신은 3백명 정도라는 이야기인데, 6만명 중 졸업생이 2만명임을 감안하면 강남 출신의 1.5퍼센트만이 서울대 진학을 하는 것이네요. 생각보다는 편중이 심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냥 편하게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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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1 23: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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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211.XXX.XXX.23)
은행 잔고가 바닥날 때, 상황이 절망적으로 보일 때 인문학 책을 펼쳐드는 제 버릇... 그 바탕에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나 봅니다...
답변달기
2008-11-11 13: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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