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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리가 있어야
김홍묵 2008년 08월 20일 (수) 04:50:51

고교 동기생 중에 별명이 ‘야마리’라고 불리는 친구가 있습니다. 늘상 자신이 ‘야마리 있는 반듯한 사람’임을 강조하고,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인간쓰레기로 질책하여 붙여진 별호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남을 보고 제 앞을 닦는’ 본보기가 되기도 합니다.

거침없이 내뱉는 욕설 때문에 더러는 합석을 저어하는 친구도 있지만, 그는 확실히 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술자리가 끝나고 귀가할 때면 대부분 택시를 잡아 친구를 먼저 내려주고 자기 집에 가곤 합니다. 남의 집을 방문하면 노부모나 자녀들에게나, 단골집 주인 자녀의 입학ㆍ입대 때면 용돈을 쥐어 주며 건강과 행운을 빌어 주기도 합니다.

하도 자주 들먹이는 ‘야마리’가 혹시 일본 말이 아닌가 의아해 하는 이도 있어 사전을 찾아 보니 분명한 우리말이었습니다. 사전적 정의는 얌통머리 또는 얌치와 같은 뜻이었습니다. 염치 있고 남을 배려할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넓은 의미의 행동 기준이라고 하겠습니다.

유난히 더운 여름, 찌는 더위를 잠시 식혀 준 베이징 올림픽 중계방송을 보면서 그 ‘야마리’를 떠올리게 하는 두 장면을 보았습니다. 유도(60kg급)에서 첫 금메달을 딴 최민호 선수를 껴안고 축하하는 오스트리아의 루트비히 파이셔 선수와, 같은 유도(76kg급) 종목에서 금을 딴 아제르바이잔 엘누르 맘마들리 선수가 왕기춘 선수의 등 위에서 승리의 쾌재를 부르는 모습이었습니다.

가난에 대한 회한, 국제대회에서 번번이 동메달에 그친 좌절을 딛고 마침내 세계 정상에 올라 감격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린 최민호. 그를 일으켜 세워 격려하며 축하의 포옹을 해 준 파이셔의 스포츠맨십은 관중과 시청자들의 칭찬을 받고도 남을 만했습니다.

반면 맘마들리는 정 반대로 비쳤습니다. 경기 도중 갈비뼈가 부러진 채 금메달에 도전했으나 업어치기 한 판에 무릎을 꿇은 왕기춘. 분하고 참담한 심경과 찢어지는 아픔으로 망연자실하여 엎드려 있는 왕기춘의 등에 걸터앉은 맘마들리는 그 환호마저 거만해 보였습니다.

승자나 패자나 상대방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감정과 사생활의 내막까지 알 리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패배의 처절한 굴욕감 속에서도 승자를 인정하고 축복해 주는 아량과, 승리의 환희에 도취하여 패자를 패배자로 도외시하는 기고만장함 사이에는 분명히 ‘야마리’가 있고 없음이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스포츠도 요즘에는 순수성이 많이 퇴색한 것 같습니다. 큰 국제경기일수록 개최국 선정, 경기 종목 채택, 방송 중계권 부여 등에 돈과 힘이 작용합니다. 경기에서도 고의 반칙과 태클, 편파판정과 판정불복, 약물복용, 나이 속이기 등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잦습니다. 그러나 스포츠는 당사자에게도 보는 이에게도 기쁨을 줍니다. 이기면 박수를 보내고 져도 재기의 격려를 해 주는 금도(襟度)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도 스포츠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승자에게 영광이 돌아가지만 패자도 몇 년 뒤의 설욕전이 보장됩니다. 관중에 해당되는 국민에게 더 좋은 삶, 더 많은 희망을 주려고 노력하는 면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달라도 많이 달라 보입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6개월이 다 됐지만 기쁨은커녕 앞날이 캄캄하기만 합니다.

대선과 총선을 통해 정권이 바뀌는 승부가 가려졌지만, 새 정부의 일자리 창출ㆍ경제 성장ㆍ초 선진국 도약 공약은 요원해 보이기만 합니다. ‘잃어버린 10년’의 주역으로 치부된 야권은 꼬투리 잡고 시비 걸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민생 관련 법안마저 팽개친 채 거의 석달을 허송세월하며 세비만 축낸 선량들이 알량하게 보이기만 합니다.

돈 선거와 이권 개입으로 국회의원 지위가 흔들리는 자가 속출하고, 집권 반 년도 안 돼 대통령의 사촌 처형 쯤 되는 이가 공천 장사 혐의로 구속되는 일도 식상합니다. 전직 KBS 사장을 두고, ‘편파 방송의 주역’ 주장에 ‘임기 보장’과 ‘공정 방송’으로 맞서다 끝내는 ‘배임 혐의’로 체포되자 전직 대통령이 ‘해괴한 논리’라고 으르렁대는 꼴이 처량합니다.

스포츠에서처럼 예쁜 얼굴과 몸매, 빼어난 기량과 기술을 정치인에게 기대하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 보다 국민이 잘 살고, 긍지를 가지고 국가 경쟁 대열에 나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야마리’있는 정치인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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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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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211.XXX.XXX.129)
경상도에서는 "야마리 까지다"라는 말을 자주 쓰지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흙묻은 말이군요.
좋은 글 더 많이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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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1 16: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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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210.XXX.XXX.22)
이 시대에 가장 요구되는 큰 德目중의 하나가 "야마리"가 아닐까. 단, 남을 배척하지 않는 야마리로 한단계 승화시켜야 더욱 빛이 날 것을----.
답변달기
2008-08-21 11:5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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