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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그 애틋한 이름
임철순 2008년 08월 18일 (월) 08:33:31

가을 햇살 눈부시고 바람도 선선하던 날, 이 세상 모든 게 한없이 투명하게만 보이던 10월의 아침. 동구 밖 신작로로 나가는 길은 언제나 호젓합니다. 그 길을 혼자 걸어 학교에 갑니다. 남들은 퍼런 책보를 어깨에 비껴 메고 다니는데, 나는 토끼가 그려진 가죽가방을 메고 있습니다. 샘이 나서 그러겠지만, 아이들은 몰래 개구리 잡아 넣고 돌도 넣고 그러면서 “똥가방 메고 절뚝발이…” 노래 부르며 놀립니다. 나는 늘 혼자 다닙니다. 가방이 싫습니다.

저만치 앞에서 완복이 누나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가방에서 떡을 하나 꺼냈습니다. 엄마는 도시락에 떡을 싸 주고 학교 가며 먹으라고 따로 몇 개를 주었습니다. 뭐라고 말하지? 이거 내 생일 떡인데 먹어 봐. 이거 먹어. 아니 그냥 이거? 남에게 뭘 주어 본 적이 없습니다. 열 걸음쯤 뒤에서 따라가는 동안 손에 땀이 차기 시작합니다. 숨이 가쁘고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기침을 할까, 불러 세울까? 뭐라고 부르지? 형 누나,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왜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을까? 떡을 쥔 손에 갈수록 더 땀이 나고 발에까지 땀이 차 검은 고무신이 벗겨질 것 같습니다.

그렇게 따라만 가다가 걸음을 빨리 해 바짝 다가섰습니다. “아, 철순이!” 인기척을 느낀 완복이 누나가 무슨 말을 더 하기 전에 “이거…” 하고 떡을 내밀고 뜀박질하듯 앞질러 갔습니다. 학교에 가면서 계속 생각했습니다. 완복이 누나는 그 떡을 먹었을까, 안 먹었을까? 기름기에 땀과 손때가 묻은 떡이 더럽다고 또랑에 버리지 않았을까? 그 뒤 친구의 누나 그녀, 다섯 살 위인 그녀가 집에 오면 여덟 살 소년은 방문 뒤에 숨어 엄마와 주고 받는 말을 엿듣고 엿보고, 둘이 마주칠 것 같으면 다른 길로 가거나 딴청을 부리곤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초등학교 5학년 때, 계룡산 기슭의 친구 집에서 잤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눈발이 날리고 문풍지가 크게 울던 겨울 밤, 바람을 타고 집 뒤 솔밭에서 아기 우는 것 같은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윗방의 친구 누나가 뒤척이며 한숨 짓는 소리도 얇은 벽 사이로 들렸습니다. 남자에게 배신 당하고 서울에서 돌아온 뒤 한 번 목을 맨 적이 있었답니다. 문풍지 소리, 늑대소리, 친구 누나의 한숨소리에 덩달아 잠을 자지 못하면서 제발 그 누나에게 아무 일도 없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 무렵, 서울에 올라간 고종사촌 누나로부터 크리스마스 카드라는 것을 처음으로 받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신기한 것도 있었나. 산타할아버지와 사슴이 그려진 그 카드에서는 반짝반짝 흰 눈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은가루로 장식된 카드 한 장은 동화책 한 권이었고, 꿈의 나라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작문시간. 작가였던 국어 선생님은 도치법(倒置法)을 설명하면서 “합격이다, 누나야”라는 문장을 예로 들었습니다. 서울에 와 고등학교 시험을 본 소년이 누나에게 보낸 전보입니다. “누나, 나 합격했어”보다 그렇게 도치된 문장이 감정 전달에 훨씬 충실하며, 둘 사이에 가장 중요한 단어는 합격이므로 당연히 그 말이 맨 앞에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설명을 들으면서 멋대로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소년은 왜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닌 누나에게 전보를 쳤을까. 부모가 없겠지. 남매는 단 둘이겠지. 하나 뿐인 동생이 시험을 보는데 누나는 왜 서울에 함께 오지 않았을까. 차비도, 먹고 잘 돈도 없었겠지. 그 아이는 어떻게 학교를 다녔을까. 누나가 학교를 그만두고 동생 학비를 댔겠지. 누나는 동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고 결심했겠지. 전보는 무슨 돈으로 보냈을까. 친척 누군가가 처음으로 도와 주었을까. 누나는 전보를 받고 어떻게 했을까. 기뻐서 슬퍼서 한없이 울었겠지….

그 해 겨울입니다. 누나와 함께 자취하는 친구에게 놀러 간 일이 있습니다. 둘이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여대생이던 그의 누나가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너무 추워서 다리가 땡땡 얼었어” 그러더니 스타킹을 신은 다리를 동생에게 만져보라고 했습니다. 다리를 만지며 “와, 진짜 얼었네” 하던 친구가 나는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젊은 여성에 대한 궁금증에다 여성의 살에 대한 그리움이 이미 더해진 시기입니다.

누나가 있었으면, 내 마음을 나처럼 알아 주고 치맛자락으로 내 눈물과 마음의 콧물을 닦아주는 누나가 있었으면 하고 늘 생각했습니다. 누나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누나라면 흔히 20대 처녀, 해맑고 눈부신 여성의 젊음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누나, 누나 하고 입 속에서 뇌어 보면 알 수 없는 애잔함과 애틋함, 애달픔이 고여 오릅니다.

시집 간 누님, 이승을 떠난 누님, 동생들을 위해 희생한 누님에 대한 그리움과 죄스러움, 목 메이는 안타까움, 이런 것들을 나는 실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초정 김상옥의 시조 <봉선화>에는 시집간 누님이 나옵니다.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다음 연은 ‘누님이 편지 보고 하마 울까 웃으실까’ 하고 시작됩니다. 울고 웃는 오누이의 정이 여실합니다.

김소월의 시 <접동새>에서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진두강 앞마을에/와서 웁니다 (중략)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랍동생을/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제주대 교수인 시인 尹石山의 <헌사>라는 시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갈매꽃처럼 늙어가는 내 누나야/생활을 모른다고 탓을 했었지/접싯가 묻어 있는 자잘한 이야기/일곱 오랍 걱정하다 치마 쓰고 떨구던 눈물/내 손목을 잡고 꽃나무가 되어/날(日) 돋도록 내 곁에서 날 기다리던/누나야, 이것이 그 시의 전문입니다.

연암 박지원의 이야기도 추가하고 싶습니다. 연암은 34세이던 1775년에 아홉 살 많은 큰 누님을 여의고 묘지명(墓地銘)을 썼습니다. 맨 뒤에 ‘去者丁寧留後期 猶令送者淚沾衣 扁舟從此何時返 送者徒然岸上歸’라는 시가 나옵니다. ‘떠나는 이 정녕코 다시 온다 다짐해도/보내는 이 눈물로 여전히 옷 적실 텐데/조각배 이제 가면 언제나 돌아오나/보내는 이 헛되이 언덕 위로 돌아가네’, 이런 뜻입니다. 배에서 누님의 상여를 영결하며 쓴 시입니다.

그 글에는 여덟 살 된 연암이 갓 시집간 누님에게 행패를 부린 이야기가 나옵니다. 방바닥에 말처럼 뒹굴며 말 더듬는 자형을 흉내내자 누님이 수줍어 빗을 떨어뜨렸고, 이마에 빗이 맞았습니다. 성이 난 연암이 울면서 먹물을 분가루에 섞고 거울에 침을 뱉자 누님은 옥비녀 등을 꺼내 주며 달랬다고 합니다. 연암은 그 때를 회상하며 강가의 먼 산들은 검푸르러 누님의 쪽 진 머리 같고 강물 빛은 거울 같고 새벽달은 고운 눈썹 같았다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누나 이야기는 한도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누나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최근에 읽은 글 때문입니다. 퇴직한 신문사 선배 한 분이 오래 감춰온 고통을 글을 통해서 공개했습니다. 여고생일 때 못된 남자에게 변을 당한 그의 큰누나는 병들어 결국 숨지고 말았고, 당시 고3이던 그는 형과 함께 서울 와우산의 언 땅을 파고 시신을 묻었다고 합니다. 둘째 누나가 그와 같은 해에 대학에 합격하고도 집안이 어려워 동생에게 양보한 것도 그에게는 평생 마음의 빚입니다.

놀라운 것은 큰누나의 사망 50년이 된 올해 봄에 그 범인의 소재지를 드디어 알아냈다는 것, 그런데 그 놈을 찾아 반드시 죽이겠다고 별렀던 오랜 결심과 달리 그를 속으로 용서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는 자기 혼자만의 얼굴이 있지만, 그가 그렇게 아픔을 숨기고 감추며 살아온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는 지금도 어쩌다 와우산 옆을 지날 때면 애써 산 쪽을 쳐다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에 대한 용서는 당연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가 장한 것은 깊고 오랜 고통을 스스로 극복해 나가는 모습 때문입니다. 이 글이 스스로 고통을 이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면서 가족들을 위해 헌신해온 모든 누나들에게 작은 헌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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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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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순 (210.XXX.XXX.15)
주옥언니같은 누나들은 이제는 보기 힘든 옛 누님들의 표상일거예요. 아울러 지난 번 한국일보의 '기자들아 잘 좀 하자'라는 칼럼, 오라버니의 용기를 엿볼 수 있었던 귀한 글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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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4 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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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순 (210.XXX.XXX.15)
사람들은 잊고 싶어서 애써 외면하는 감정의 문제들을 정직하고 의연하게 직면하고 따뜻하게 풀어가는 오라버니의 글을 읽어오면서, 또 날로 많은 이들로 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모습에 감동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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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4 17: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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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란 (211.XXX.XXX.129)
2008-08-20 10:54:05
늘 따스한 삶의 이야기로 독자의 감성을 일깨워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남은 더위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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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0 14: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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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49)
불러 주길 바라던 때가 많았습니다. 여자이건 남자이건 동생이 없었는데 누나라고 부르는
남동생이 정말 갖고 싶었답니다. 아마 그랬었다면 저도 선생님의 글에서 비쳐지는 아름다운
누나가 되려고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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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22: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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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복 (118.XXX.XXX.12)
참으로 정겹도록 눈물나는 글입니다. 이런 누나가 커서 우리나라의 어머니가 되었지요. 베이징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이 금/은/동메달승전보를 울리면서 자긍심이 대단하지만 예전에도 지금에도 50대-60대이상의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겪었던 고통들이란 어찌 말할 수가 있을까요? 잘 예쁘게 늙어가시는 복많고 지혜로운 어머니들도 많겠지만 그렇지않은 분들이 훨씬많다는것을 생각하면요... 사람의 정이 인간의 냄새가 물씬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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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15:33:56
0 0
한분순 (211.XXX.XXX.129)
임주간님



한 줄기 거센 빗줄기가 스치더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하마 가을인가. 여전히 심성 말갛게 하는 임주간님 글 읽으며

어린 날 충청도 산골 정든 고향에서의 일을 잠시 떠올렸습니다.

언제나 좋은 글 읽는 즐거움에 임주간님 글 기다려집니다.

남은 시간 행복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ㅡ 한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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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15:21:26
0 0
김주연 (211.XXX.XXX.129)
글 쓴이에 감정이 그대로 보여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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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15:18:18
0 0
백학순 (211.XXX.XXX.129)
임철순 선생님께 안녕하십니까. 오늘 쓰신 "누나, 그 애틋한 이름" 잘 읽었습니다.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누나를 그리는 마음들을 엮은 글이었는데,누나가 동생들을 그리는 마음을 엮은 글도 한편 쓰시면 어떨까요.선생님 글을 읽으면서,우리 모두 사람이기에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사람의 마음을 사는 정치가 되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자연히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독자 백학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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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15:17:42
0 0
채길순 (211.XXX.XXX.129)
임 국장님! 이모작, 소설을 쓰시는 게 어때요? 배신 당해 돌아온 누나 이야기면 충분한 소설이 됩니다. 저, 다시 중국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은 여전히 낮에는 덥지만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기운이 돕니다. 건필과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베이징 채길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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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15: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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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구` (122.XXX.XXX.15)
임선생님 글을 읽으며 늘 느끼는 것이지만 오늘 글은 더욱 그렇네요. 저의 속 깊숙한 곳 어디에선가 숨어 있던 느낌이 느닷없이 햇볕 아래로 끌어 올려지는 그런 느낌 말입니다.
임선생님만이 쓰실 수 있는 글, 늘 감사하고 소중하게 읽고 있습니다. 마지막 무더위 잘 견뎌 내시기 빕니다. 정범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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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12: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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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영 (124.XXX.XXX.18)
소풍가는 날이면 용하게 미리 알고 새벽에 달려와 노란 참외를 가방에 넣어주던 누나가 생각납니다. "웬 근본도 없는 놈을 데려와 그 좋은 문전옥답을 다 팔아먹었다"고 어머니가 누나의 남편을 욕할 때, 그 재산을 마련하는 동안 티끌 하나 보탠 것이 없으면서도 속으로 식식거리던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내 것이 아닌 것에도 집착하는 속물이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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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11:32:0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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