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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라, 이청준
임철순 2008년 08월 04일 (월) 02:03:38
1995년 6월 17일 소설가 김동리(1913~1995)가 타계했을 때, 그의 평생 지기였던 미당 서정주(1915~2000)는 아주 독특한 조사(弔辭)를 썼습니다. 미당의 말투를 빌리면 ‘아조’ 독특하고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조사입니다.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김동리가 우리의 이승을 떠나다니? 아무래도 이 기별이 잘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욕심꾸러기 중에서도 둘째가 되라면 단호히 거부했을 이 큰 욕심꾸러기가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저승으로 옮겨가다니? 나는 아직도 내 듣는 귀를 의심할 따름이다. 의식불명의 뇌사자가 되어서도 5년간이나 식물인간으로서까지 버티어온 그가 마침내는 이렇게 떠나가다니? 참 서글픈 일이다. 그의 넋이 가는 길에 명복이 있기만을 빌 따름이다. 더구나 나는 그의 큰 아들과 셋째 아들 둘의 결혼 주례까지 맡아 했던 사이인지라 그의 죽음은 남의 일같이 생각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운을 뗀 미당은 그의 휴머니즘과 철저한 반공정신을 언급하고, <詩人部落(시인부락)>의 창간(1936년) 동인이었던 시인 동리의 모습을 회고했습니다. 그러더니 1934년 봄 미당의 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동리가 다음 날 아침 전차운임 5전을 쥐어 주자 몇 걸음 걸어가서는 미당에게 휙 던져 버리고 달아났다는, 다소 뜬금없는 회고를 덧붙였습니다. 동리의 오기를 설명하려고 쓴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20세 무렵의 그 일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사의 압권은 마지막 문장입니다.

“동리야! 저승에서 부디 잘 지내다가 또 오너라!”

이것이 친구 미당의 ‘아조’ 독특하고 멋진 작별인사입니다. 시인 고은은 미당을 가리켜 하나의 정부라고 말했지만, 자기만의 ‘정부’와 정신의 아득한 높이를 성취하지 못한 사람은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동리가 그렇게 저승에서 잘 지내다가 또 오는 동안에 미당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겠다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미당의 조사에 대해 평론가 김윤식 씨(현재 명지대 석좌교수)도 언젠가 사석에서 “참 미당다운 조사”라고 평하며 재미있어 했습니다. 김씨는 대체 읽지 않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온갖 것을 다 읽고 남김없이 평가하고 골라 내는, 우리 시대 고도의 기억장치ㆍ해독시스템이며 최고급 지적 회로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런 그가 7월 31일 타계한 작가 이청준씨의 조사를 썼습니다.

이청준, 이름 그대로 맑고 깨끗했던 사람. 1939년 생이니 우리나이로 올해 겨우 칠십인데 폐암이 끝내 그를 불러갔습니다. 5월에 박경리씨가 폐암으로 떠난 지 두 달 여만의 가슴 아픈 부음입니다. 투병을 하면서 “10년만 더 있으면 자기 정립을 마치고 좀 더 깊게 영근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시간이 너무 없다”고 했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의 말대로 이청준은 “김승옥과 더불어 때묻지 않은 모국어로 작품활동을 한 제3세대 문학의 대표 주자”였습니다. 이씨는 존재의 세계를 그린 이청준의 소설은 잊혀지지 않는 생명력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윤식씨의 조사는 소설처럼 시작됩니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쉬엄쉬엄 왔는데도 숨차고 다리 후들거려 ㅅ의료원 영안실 빈 의자에 잠시 앉아 있자니 뒤에서 들리는 소리.
-김선생님, 여기 웬일이세요.
돌아보니 그대가 아니겠는가.
-웬일이라니, 그대 장례식에 오지 않았겠소. 그런데 그대야말로 웬일이오? 이렇게 나와 있어도 괜찮겠소?
-잠시 나왔을 뿐이외다. 뭐 별일 있겠어요?
그렇다. 무슨 별일이 따로 있겠는가. 우리는 평소처럼 낮은 소리로 또 눈짓으로 이런저런 말을 나눴소. (중략) 그대의 손에 이끌려 영안실 안으로 들어서자 놀라워라, 그대는 어느덧, 거짓말처럼 순백의 꽃밭 속 검은 사진 속으로 가물가물 사라지고 있었소. 또 놀라워라, 내가 향을 피워도 아무 말 없었소. 다시 또 놀라워라, 절을 두 번씩이나 해도 모른 척 하지 않겠는가. 그대 이래도 되는 일인가.

김씨의 조사는 “…고집스러운 소설쟁이 이청준이여, 우리의 국민작가 이청준 사백이여”라는 말로 끝납니다. 제자나 후배들이 쓰는 조사와 달리 친구나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 쓴 조사는 담담한 듯 하면서도 세련된 슬픔과 안타까움을 담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이청준보다 세 살 많은 김씨의 조사도 여느 조사와는 사뭇 다릅니다.

언어를 통한 관념과 지성의 깊이, 한의 정서를 오롯이 보여준 이청준의 작품이 뛰어난 것은 여기에서 새삼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이청준문학의 주요 자양분은 어머니와 고향이었고, 그의 작품은 맑은 영혼의 내시경과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의 문학보다 인간 됨됨이입니다. 수많은 책을 냈지만 책이 나오면 출판사의 막내 편집자까지 꼭 밥상에 초대했고 자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 앞에서 늘 겸손했습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의 아호 未白(미백)에는 어머니보다 먼저 머리가 허옇게 쇤 아들의 죄송스러운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10여 년 기르던 동백 화분을 이 봄에 고향으로 보내 심게 하고 자신의 묏자리 정돈도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가 숨지자 전남 장흥의 생가 앞에 분향소가 차려지고 노제가 진행됐지만, 그는 죽기 전에 분향소는 차리지 말고 노제만 지내 달라고 했답니다. 고향에 갈 때마다 봉투를 여러 개 장만해 가지고 가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영화 <서편제>를 통해 전라도의 멋과 신명, 자연경관을 널리 알렸다고 광주의 기관장들이 그를 일류 요릿집에 초청해 한 턱을 낼 때, 어느 기관장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존경을 표시하며 술을 따르자 그도 같이 무릎을 꿇고 술잔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은 그가 의연하고 겸허하고 당당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신사”(박완서), “신실하고 착하고 예의 바른, 천상 한국의 선비”(김원일) "겸허를 가르쳐준 삶의 스승"(정민 한양대 교수), 이런 말은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의 장례는 8월 2일 문인장으로 치러졌고, 그는 고향에 묻혔습니다. 이 며칠 이청준을 언급한 기사와 글들은 그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고 아쉬워하는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文質彬彬(문질빈빈)이라고 합니다. 겉모양의 아름다움과 속내가 서로 잘 어울리는 경우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것은 예부터 참된 선비들이 다다르고 싶어 했던 경지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자신을 가다듬고 가꾸는 것이 선비들의 자세였지만, 이청준에게 딱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 깨나 쓴다고 깝치고 자기밖에 모르고 괴팍하고 되바라진 것이 당연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청준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것입니다. 그를 잃은 것은 참으로 분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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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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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실 (121.XXX.XXX.35)
이청준에 대한 임주필님의 감동적인 글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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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9 06: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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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211.XXX.XXX.129)
2008-08-05 20:53:49
참 독특한 글을 썼군요.30여년전 기사 제목 기발하게 달던 생각나네요 또 존글 마니 보내주셔요이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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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09: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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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211.XXX.XXX.129)
아직도 막막한 이 세상 미움에서 용서할 수 있게 구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선생님의 언어 선생님의 사유 선생님의 그 찬찬한 눈빛이라도 남겨주소서
2008년 7월 31일 김 종 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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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5 08:3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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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211.XXX.XXX.129)
하늘 말고 땅 말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무너진 듯 다시 어디서 정교하게 짜인 위안의 둥지를 찾아 지친 기력 회복할 수 있으리까/ 남기신 글만이 흩어진 책들만이 선생님과 부빌 수 있을 터 안경테 하나 납작모자 하나처럼 부디 손때라도 남겨두소서 미치게 외로울 때 부여잡고 울 수 있게 통곡이라도 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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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5 08: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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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211.XXX.XXX.129)
오늘 아침도 눈뜨자 일용할 시간 얻으셨겠거니 했더니 더 이상은 거절치 못하시겠더이까 인생사 세상사 다 우러나와 더는 하실 말씀이 없으시겠더이까 그냥 글 안쓰시고 지금껏 썼던 글 여쭐 수 있게 누워만 계셔도 허황한 이 세상 부질 없는 인간사 툭툭 털고 다시 서게 해주시련만 당신이 몸소 우리를 털고 가실 연유가 무엇이더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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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5 08: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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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211.XXX.XXX.129)
그저 막막하고 외로울 때 아니면 힘겨워 허덕일 때 선생님의 단정한 글 한 줄 단편 하나, 장편 한 대목 받치고 당겨 일어서게 해주시더니/ 어느 날 갑자기 고약한 손님이 찾아왔다며 오늘도 일용할 시간을 주시어 감사하다고 하시더니 그리고나서 쓰신 글에는 미안하고 부끄럽단 말 유난히 되뇌이시더니 마음 약해진 선생님 마음 애써 잊으려고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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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5 08: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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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211.XXX.XXX.129)
선생님 아, 이청준선생님/ 선생님, 문인들의 어른이신들 지성인의 표상이신들 저는 감히 알 길이 없습니다 한 가락 한 물떼 인연을 같이 한 선배이신들 그것 또한 알 바가 아닙니다/ 다만, 그 겨울날요 그 젊은 날요 막막하고 아득하던 나의 인생길 나의 구만리같던 길을 나서던 그 날에요 그 때 선생님이 서있던 그 자리 그 예언 그 위안이자 짐이 된 말씀 마디마디 제게 안겨버린 무심하게 낡아가는 저 책 한 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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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5 08: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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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58.XXX.XXX.168)
미백 선생님의 작품과 인연을 맺은 게 30여년 저 쪽의 일입니다.
<별을 보여드립니다>부터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까지 거의 빠뜨리지 않고 읽어 왔습니다. 그 분의 문학적 위업도 존경스럽지만 인간적인 면모에 더욱 매료되어 마음의 스승으로 모셔왔습니다. 생전에는 못찾아 뵈었으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은 뵙고 왔습니다.
헛헛한 마음 달래기 어려운 차에 선생님의 칼럼을 읽으니 크나큰 위안이 됩니다.
선생님!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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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4 20:3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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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남 (211.XXX.XXX.129)
2008-08-04 15:28:47
형님이야 말로 文質彬彬합니다. 더위에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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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4 16:5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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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현 (211.XXX.XXX.129)
2008-08-04 12:02:16
요즈음 세상에 더욱 그리워할 만한 한 인간의 뒷자리를 봅니다. 숙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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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4 14: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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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211.XXX.XXX.129)
2008-08-04 12:01:44
저승에서 부디 잘 지내다가 또 오너라...세상에 이런 기막힌 조사가 있었습니다! 미당 동리선생, 두 분 다 생전에 뵈온 적이 있었던 저에게 벼락같이 울림이 큽니다. 김윤식선생의, 생자와 사자로 나타나는 이청준에 대한 영결도 역시 그 분답다는 감동이 옵니다. 이청준 선생은 면식이 없고, 김윤식 교수는 교향도 같은 분으로 조금 압니다. 이런 이야기, 새겨주신 임철순 선생께 다시 한번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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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4 14:4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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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기 (211.XXX.XXX.129)
2008-08-04 10:29:20
저도 이청준님을 몹시 좋아하는데 선생께서 좋은 글로 추모하여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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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4 14: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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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순 (211.XXX.XXX.129)
2008년 8월 04일 [월요일] 오전 10:25
임주필님의 글 읽는 즐거움이 한여름 더위를 잊게 하는군요. 휴가는 다녀오셨는지요? 저는 8월 9일과 10일 마산 문학행사 다녀오고 11일부터 14일까지 백담사 만해마을 문학행사에 다녀오는 것으로 휴가를 대신할 예정입니다. 백수가 따로 휴가 보낼 일도 없지만 집안에서의 더위를 밖에서 잊으려 합니다. 건강하시고 언제나 유쾌한 말씨와 좋은 글 읽는 재미 계속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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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4 14: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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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근 (211.XXX.XXX.129)
2008년 8월 4일 [월요일] 오전 09:53
향토색 짙은분을 멀리보내고정말 아쉽습니다..몇분안되는 독야청청 했든분이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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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4 14: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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