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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함께 살기
황경춘 2008년 08월 02일 (토) 01:08:48
어떤 개그맨이 이런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느님, 하느님도 못 고치시는 병이 있나요?
-아암, 있지. 암.

인류의 피눈물 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암은 여전히 최대의 공포 대상이며 암을 정복할 수 있는 결정타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사망자 중 4분의 1은 암에 의한 것이고,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는 더 심각해 전체 사망자 약 3분의 1의 사인이 암이라고 합니다.

의술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암 환자 발생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공업국가로 각광을 받기 전인 1950~60년대에는 먹고 살기에 바빠서였는지, 아니면 일반 국민의 의학지식이 부족한 탓이었는지 암에 대한 관심이나 공포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낮았습니다.

그 당시에 암이 지금처럼 세인의 관심 대상이 되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의 신문 부고란에는 거의 모든 분의 사인이 지병이거나 노환 숙환이었고, 교통사고나 그 밖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병명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부고란에 이름을 올리는 사회명사의 경우가 이렇고 일반인의 경우도 구태여 사인을 밝히지 않는 것이 통례였으니 보건당국에 정확한 통계가 있을 수 없겠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당시의 의학수준으로는 지금같이 속속들이 암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어리석은 추측을 해보기도 합니다.

암에 관한 세상 분위기가 그런 시기였던 30대 중반에 저는 뜻하지 않게 온 가족이 암과 처참한 싸움을 벌이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시고 살던 아버지가 구강암(口腔癌)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1960년대 초 어느 겨울, 가벼운 감기를 앓으신 뒤 입안에 좀 위화감을 느낀다 하셔 당시 서울역전에 있던 모 종합병원에 가 조직검사를 받은 후의 진단이 이것이었습니다.

암에 관해선 극히 상식적인 지식밖에 없었던 저는 매우 당황했고, 오늘날에는 거의 상식이 되어 있는, 환자 본인에 대한 고지(告知)를 어떻게 하나부터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암 발병 곧 죽음이라는 등식이 상식적으로 통용하던 때입니다. 담당 의사는 노령을 이유로 수술은 피하고 그 대신 방사선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습니다. 추천하는 대학병원 방사선 치료실에 몇 번 다녀오신 아버지는 곧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를 아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항암제는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고 담당 의사도 권하질 않기에 답답한 저는 도쿄 사무실의 친구를 통해 일본 어느 유명 대학교수가 개발한 학계 비공인 항암주사를 구입해 일 년 후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맞게 해 드리고 그밖에 민간요법도 겸해 시도했습니다. 암 투병으로 인한 상당한 경제적 손실보다는 환자 자신이 겪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 그리고 가족이 받은 충격과 고민이 이를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무렵을 전후하여 가까운 친척 중 암으로 의심되는 병으로 돌아가신 분이 몇 분 계셨습니다. 이런 연유로 암에 대한 공포가 갑자기 저 자신을 휘감아 나날의 바쁜 직장 일 틈 사이에 암에 관한 서적을 탐독하고 지식을 흡수했습니다.

얼마 있다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암 보험이 판매되자 재빨리 가입했습니다. 당시의 암 보험은 지금과 같은 저축성 보험이 아니라 3년 또는 5년을 만기로 하여 그 동안에 암이 발생하지 않으면 불입한 돈을 한 푼도 못 찾는 제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당시 저는 아내 몰래 이 암보험에 가입했습니다. 아내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도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꽤 많은 돈을 매달 지출하는 것을 감추려는 뜻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10년간을 무사히 지낸 저는 암에 대한 공포가 괜한 거라 생각돼 만기가 됐을 때 보험 연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번에는 아내가 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위 전체를 들어내는 대수술과 입원비 등으로 상당한 경비가 들었지만, 이번에는 아내가 몰래 들었던 암 보험 덕택에 완전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아내 친구의 권유로 마지못해 들었던 보험의 도움을 톡톡히 본 셈이지요. 아내는 건강도 되찾았습니다.

아내가 그 일을 겪은 후 저는 다시 암의 공포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한 경제적 걱정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보험에 들어 있지 않으니 당연한 걱정이었지요. 그리고 보험 문제로도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여태껏 사고 없이 지내왔는데 보험에 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낙관적 생각과 그렇지 않을 경우의 두 가지 선택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던 어느 날 신문광고를 보니 제 나이에 가입할 수 있는 암보험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암 발생률이 가장 높아 보험회사까지 포기한 세대의 인생인데 그것도 모르고 고민하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이 나이에 새로 가입할 수 있는 일반 보험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뒤 늦게 안 저는 자기의 건강만을 믿고 보험에 무관심했던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여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병에 대하여 긍정적인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자고 다짐했습니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학도 아직껏 100% 암을 예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암에 걸리는 것은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과 같다고도 했고. 어느 일본인 암 전문의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즉, 다행히도 암 환자의 대부분은 임종 때까지 비교적 맑은 의식을 유지하며, 또 현대의학은 과거에 모두가 두려워했던 말기 암 환자의 감당하기 힘든 육체적 고통을 완화하는 획기적 의술을 개발했기 때문에 일부 다른 노인성 질환 환자보다는 오히려 나은 삶의 질(better quality of life)을 유지하다가 떠난다는 것입니다.

근년에도 친한 친구 두 사람이 암으로 희생되었고, 다른 두 사람은 투병 중입니다. 일본의 최근 통계에 의하면 70세 남성의 암 발병률은 18%이지만 84세가 되면 46%로 뛴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암의 검은 그림자를 저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암 전문의가 권유하듯 만일의 경우에 노인, 그것도 80대 중반의 노인으로서 배를 째는 등 사생결단의 투쟁을 벌이기보다 그 대신 암과 공생하는 소위 win-win의 조용한 길을 택해 여생을 마감할까 합니다.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주한 미국 대사관 신문과 번역사, 과장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TIME 서울지국 기자
-Fortune 등 미국 잡지 프리 랜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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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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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복 (118.XXX.XXX.12)
좋은 글 잘 읽었읍니다. 많은 분들이 암으로 고생하시다가 이생에서 저승으로 가시지요.
의학과 통계가 발달되어 사망자중 암판정비율은 높아져가니 자연히 공포도 커지겠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이 죽는 것은 사고사 아니면 장기탈로 인한 사망 아닌가 합니다. 장기탈사망은 의학적으로는 무슨 암이든지간에 결국 암의 일종이겠지요.
우리들이 더불어사는 마음으로 절제하는 모습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답변달기
2008-08-04 09: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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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익 (211.XXX.XXX.129)
2008-08-02 16:30:47
역시 존경스러운 선생님이십니다.
답변달기
2008-08-03 10: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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