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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만든 나라, 스위스
김홍묵 2008년 07월 09일 (수) 06:55:33
저 푸른 초원 위에 / 그림 같은 집을 짓고...
60년대 유행했던 노래 가사가 현실로 펼쳐진 나라. 스위스의 인상입니다. 그 스위스를 지난 달 20여 일간 둘러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영세 중립국, 국민소득 세계 최고,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시계의 나라 - 누구나 알고 있는 스위스의 위상입니다. 그 밖에도 세금이 적어 기업하기 좋은 나라, 실업자가 없는 나라, 교육과 복지가 가장 잘 보장된 나라입니다. 우리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는 참으로 '좋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속내를 속속들이 둘러보고 확인할 수는 없고, 주마간산 격으로 눈에 비치는 사안과 행태 경관을 보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그 사소한 몇 가지만으로도 왜 이 나라가 강소국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는지 짐작할 만했습니다.

취리히 인근 투르기 마을의 아들 집에서는 역이 바로 앞에 있어 아침저녁 오가는 사람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첫 날부터 의아하게 느낀 것은 출근 시간이 무척 빠른 것이었습니다. 새벽 6시 반이면 역 앞 주차장이 꽉 차고 승객들 발걸음이 뜸해지는 형편이니 무척 부지런한 국민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일터로 가는 사람들의 차림새들도 뜻밖이었습니다.
열에 아홉은 검정색 캐주얼 옷에 배낭을 등에 멘 모습이었습니다. 자국산 명품인 ‘발리’ 구두를 신거나 핸드백을 들고 종아리를 내 놓은 여성을 구경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넥타이에 정장을 한 남성도 출근 시간 내내 다섯 명도 안 됐습니다.
멋을 내거나 겉치레로 과시하려는 생각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변두리 지역만 그러려니 했는데 도심 지역에서조차 네댓 명씩 몰려다니는 젊은이들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팝이나 피자집에서 기껏 두세 명이 음료수나 맥주를 마시고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지곤 했습니다. 촛불 시위 거리도 없지만 할 일 없이 모여 희희닥거리는 시간마저 아까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부자 나라답지 않게 근면 검소하고 반듯한 국민성이 바로 스위스를 이끌어 가는 힘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면서도 각종 법규와 질서ㆍ근무시간ㆍ공중도덕을 철저하게 지키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습니다.

오늘날 지상낙원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스위스의 역사는 돌이켜 보면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게르만족의 잦은 침공에 알프스 산록에 살던 헬베티족은 집과 근거지를 모두 불태우고 땅 넓은 프랑스 쪽으로 이동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57년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 군에 밀려 고향으로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헬베티족 36만 8천여명 가운데 전사자를 제외한 11만여 명 만이 고향인 레만호 동쪽으로 쫓겨 가는 참극을 겪었습니다. 헬베티아(스위스의 옛 이름)는 이때부터 불모의 땅을 일궈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로마의 지배 이후로도 스위스는 프랑크 왕국령, 신성 로마 제국령, 합스부르크 가의 무력 개입, 프랑스 군의 침입 등 신고의 세월이 이어졌습니다.

석유 석탄은 물론, 암염 외에는 광물도 거의 없는 스위스는 고산지대인 데다 농지도 좁고 기후 변덕도 심한 작은 나라입니다. 더구나 독일인 프랑스인 이탈리아인의 3개 인종으로 구성된 스위스는 15세기 도시주와 농촌주의 대립, 16세기 종교개혁 갈등도 겪어야 했습니다.

현재 스위스는 국제기구의 본부가 가장 많은 중립국으로 민족간 갈등이라곤 없는 완벽한 지방자치, 장갑차를 수출할 정도로 부가가치가 높은 공업 발전, ‘유럽의 지붕’이라 일컫는 알프스 산악과 바다(see)라고 이름 붙은 수많은 호수와 도시를 갖춘 관광 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유사시에는 700만 인구 중 60만 명의 병력을 일거에 소집할 수 있는 국방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6월의 스위스는 들판의 누렇게 익은 보리와 밀, 초지를 거니는 소떼, 아스라이 보이는 알프스의 만년설로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좋은 나라’ 스위스는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좋게 만든 나라’라는 상념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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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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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진 (203.XXX.XXX.151)
융프라우 올라가는 톱니열차에서 들은 가이드의 얘기가 생각 납니다. 하도 못 살아서 남여 모두 몸 팔아 먹고 살면서 후손들을 위해 곡괭이로 굴을 뚫어 이 기차길을 열었다는. 우리도 생각하며 살아가는 백성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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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3 15:4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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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49)
스위스를 다녀오셨군요. 지상의 낙원 같은 곳이엇다고 기억합니다.
어디를 가던 청결함과 아름다움 또 건강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이 넘치던 곳이었습니다.
가장 부러운 나라였습니다.
답변달기
2008-07-09 10: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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