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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를 떠날 수 없을 때 - 『내 방 여행』『밤에 떠나는 내 방 여행』
김이경 2008년 07월 08일 (화) 01:50:25
휴가의 계절입니다. 서점에 나갔더니 새로 나온 여행서들이 흘러넘칩니다. 유럽의 뒷골목부터 이름도 낯선 숨은 오지까지, 전 세계를 구석구석 누빈 부지런한 자취들을 보는데 왜 슬슬 배가 아픈지…. 겁 많고 게으른 제가 이들의 발길을 좇을 가능성은 적고, 다른 사람의 자유에 질투가 납니다.

휴가철, 사방에서 떠난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것도 태반은 바다 건너 외국으로 간다는데, 저만 여기, 마른장마 젖은 장마 주야장천 장마중인 서울에 남는 것 같습니다. 왠지 울적해지려는 스스로를 달래며 도나 닦을 양으로 책장을 뒤적이는데 마침 구미에 딱 맞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과 『밤에 떠나는 내 방 여행』입니다.
직업군인인 자비에르가 『내 방 여행』을 쓴 것은 스물여덟 살 때. 결투를 벌인 죄로 가택연금을 당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42일간 집안에 갇혀 있으면서 쓴 이 책은 1795년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8년 뒤 그는 자매편 격인 『밤에 떠나는 내 방 여행』을 썼습니다. 두 책 다 160쪽 안팎의 짧은 에세이지만 이 작품들로 자비에르는 프루스트와 카뮈는 물론 도스토예프스키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의 비평가 수잔 손탁으로부터 “문학사상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거침없는 문체”라는 찬사를 받습니다.

책상 둘, 탁자 하나, 의자 여섯, 침대 하나, 작은 책꽂이와 몇 점의 그림. 자비에르가 연금당한 방 안 풍경입니다. 책상이 두 개나 되는 걸 보면 꽤 넓은 방이었던 듯합니다. 하지만 40일 넘게 갇혀 있자면 역시 답답했겠지요. 다행히 자비에르는 상상력이 풍부해서 무료함을 느낄 새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연금을 당하자마자 이참에 “돈 한 푼 들지 않는 여행”을 떠나자고 신나게 짐을 꾸리는 낙천성도 상황을 견디는 데 한몫 합니다.

자비에르의 글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유머를 동반한 깊은 통찰입니다. 벽에 걸린 그림들을 감상하던 그는 라파엘로와 코레조(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도 감히 견줄 수 없는 최고의 작품에 경이를 표합니다. 그 작품은 바로 거울입니다. 젊으면 젊은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언제나 진실만을 비추는 거울을 보면서, 그는 겉모습만이 아니라 도덕을 비추는 거울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건 아무 쓸모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빛이 우리 눈에 들어와 우리가 생긴 모습 그대로 우리의 영상을 그려낼 때, 자기애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이미지 사이에 신뢰할 수 없는 프리즘을 끼워 넣고 우리에게 신의 모습을 비춰준다.”

자비에르는 자신의 모습에서 신을 발견하는 인간의 허영심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때문에 더 자주 스스로를 돌아보려 애쓸 따름입니다. 시중드는 하인의 속 깊은 배려에 부끄러워하며 참된 인간성을 새기는 대목에선 읽는 이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또 그 “15년 지기”와 헤어진 뒤, “사소한 애정일지라도 시간을 두며 흐르는 하나의 대상에 쏟아서는 안 된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쓸쓸한 공감을 자아냅니다.

“세상 사람들을 피해 은둔할 수 있는 구석방” 하나만 있으면 떠날 수 있는 여행이지만, 거기서 만나는 풍경은 한량이 없습니다. 특히 조국 사르디니아가 외세인 프랑스에 패한 뒤 다락방에 은거하여 쓴 『밤에 떠나는 내 방 여행』에선, 작은 다락방에서도 드넓은 우주를 발견하는 성숙한 영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기보다 바보들과 떠드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이는 불행할지어다. …덧없는 관객인 인간이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순간은 찰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짧은 순간이나마 인간에게 허락되었다는 점이다. 우주 사방에서 인간을 위로하는 빛이 별로부터 날아와 인간의 시선에 닿는다. 그 빛은 우리에게 영원과 인간의 만남은 존재하며 인간은 영원의 한 부분임을 말해준다. …인간을 둘러보면서 나는 너무도 많은 불행이 종국엔 사람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는 여러분이 방금 읽은 새로운 여행법 외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어느새 우스꽝스러운 짓을 태연히 하고 있는 자신을 볼 때, 우리는 여행을 꿈꿉니다. 하지만 큰돈을 들여 먼 길을 떠나야만 자유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밖으로 나가서 안으로 침잠하는 게 여행이라면, 조막만 한 방 안에서도 여행은 가능합니다. 거기에 작은 창이 있어 바깥 풍경을 안으로 들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자비에르는 여행의 목적은 구경이 아니라 발견임을 일깨웁니다. 마음에 다 담을 수 없는 무수한 볼거리들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기막힌 절경을 앞에 두고도 눈으로 보기 전에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 이미지들로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요? 혹 길을 떠나서도 여전히 남의 눈에 얽매인 부자유한 영혼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요? 삶이 무거워 길을 떠났다면 밝은 눈 하나만, 익숙한 것조차 새롭게 볼 줄 아는 활짝 열린 눈 하나만 가져가라고, 한 달 넘게 자기 방을 여행한 사람이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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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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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경 (210.XXX.XXX.253)
저는 두 권 다 시립도서관에서 구했습니다. 별로 팔리지도 않고 꽤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 시중에서 구하기는 쉽지 않지요. 요즘은 타 지역 도서관의 도서도 구할 수 있으니 알아보세요. 그리고 '나그네알바트로스'님, 세심한 배려 감사드려요. 마음 안 아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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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9 15: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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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웅 (211.XXX.XXX.45)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란 책에서 이 책들에 대해 알게 되어 구해봤는데, "밤에 떠나는 내 방여행"은 구해 읽었습니다만, "내 방 여행"은 절판되었다고 하며 출판사에도 없다고 하더군요. 김 선생님께선 어떻게 구하셨는지 궁금하군요. 혹시 지금도 구할 수 있는 곳을 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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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8 19: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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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알바트로스 (210.XXX.XXX.253)
아까 이상하게 컴이 말을 안들어서 엉뚱하게 짜증..지금도 여전히..무책임한 댓글에 가슴 아파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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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8 1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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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알바트로스 (210.XXX.XXX.253)
에효오....뭣이 그리 복잡합니까? 그냥 떠나면 되죠..뒷 산도 좋고...여행이나 인생이나 그리 복잡한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만사가 그렇죠...이럴 땐 글 쓰는 분이 가련해 보입니다.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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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8 17:5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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