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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3)
방석순 2008년 06월 30일 (월) 01:26:09
출근시간, 손님 10여명을 태운 버스가 1차선에서 직진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 2차선에서는 트럭이 역시 신호대기 중이었습니다.

마침내 신호가 떨어져 차들이 움직이는 순간 버스가 비명처럼 경적을 울리며 급정거했습니다. 옆 차선의 트럭이 차선을 바꿔 앞질러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아슬아슬 충돌을 면했습니다. 그러나 놀란 건 버스 기사나 손님뿐만이 아니었던가 봅니다. 트럭 운전사도 대각선으로 차를 들이댄 채 운전석에서 내려왔습니다. 버스 기사도 따라 내렸습니다.

“차를 어떻게 운전하는 거요?” “뭐가 어쨌다는 거야?” “뭐라고? 이 새끼가...”
삿대질하며 몇 마디 오가는 듯하더니 둘은 곧바로 멱살을 잡고 흔들다가 땅바닥을 굴렀습니다. 기다리는 손님들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손님 몇 사람이 달려들어 간신히 둘을 떼어놓았습니다. 차량번호를 적어주며 따질 게 있으면 나중 따지고 어서 가자고 다그쳤습니다. 분이 덜 풀린 트럭 운전사는 한참이나 차로를 가로막고 섰더니 이윽고 앞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순간 트럭은 다시 한 번 휙 하고 버스 앞으로 끼어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도리없이 두 차가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버스의 급정거로 손님들은 또 한 번 으악 소리를 질렀습니다. 소지품들이 어지럽게 날아갔습니다. 그런 가운데 파리한 얼굴의 처녀 하나가 몸을 웅크린 채 떨어진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집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다른 손님이 얼른 주워 입에 물려주자 처녀는 말도 못한 채 눈물방울만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구급차를 부르고 경찰을 부르고 부산스런 가운데 손님들은 출근을 위해 다른 버스로 옮겨 타야 했습니다.

두어 주일 후 같은 노선 버스를 탔더니 마침 사고 당시의 기사가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기사 양반, 그때 어떻게 됐어요?”
“트럭이 고의로 한 짓이니 더 큰 처벌을 받게 돼 있었지요. 같은 운전사끼리 그건 너무하다 싶어서 단순과실로 처리되도록 했어요. 그래도 차 수리비에 치료비에 피해막심이죠. 나도 덕본 거 하나 없고. 에이, 거 욱하는 성미 땜에...”

지난 2일자 자유칼럼에 ‘진실(1)’ 이라는 제목으로 우선 쇠고기의 위험이나 안전성에 대해 전문가들의 진실된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보자고 썼습니다. 공개적으로 수긍하는 분도 있었고 ‘사태를 잘 못 파악하고 있다’고 지적한 분도 있었습니다. 개별 메일로 의견을 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북미에서 산다는 한 분의 메일 내용에 이런 게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대대로 내려오는 매국노의 집안 자손으로 요리조리 병역은 물론 면제받고 당신 자식마저도 면제된 신의 아들의 가족 같습니다--- 미국에서 팔리는 고기와 한국에 들어갈 고기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흥분하기 전에 좀 더 진지하게 진실을 알아보자는 몇 마디에 벌써 ‘애국’이니 ‘매국노’ 얘기가 튀어나왔습니다. 원래 국민성이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언젠가 ‘영어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것’이라는 글을 썼던 기억이 나서 씁쓸합니다.

이렇게 다소 험하게라도 자유칼럼이 토론의 장이 된다면 반가운 일입니다. 공연히 말싸움 벌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그 주장의 근거만은 꼭 알아보고 싶습니다. 그 말에 충분한 근거가 있고 일리 있는 반박이라면, ‘내가 매국노는 아니지만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일 가운데 미처 모르는 대목이 있었노라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인사할 참입니다.

솔직히 저는 크게 애국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저도 아들도 그저 평범한 사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전 집안 어른들 몇 분은 일제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사 하셨다니 대대로 매국노 집안은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못난 후손 때문에 앞서 간 어른들 욕을 듣게 한 것이 죄스러울 따름입니다.

다른 일보다 우리 사회는 먹을거리에 대해 비상한 관심과 유별나게 예민한 반응을 보여 왔습니다. 연례행사처럼 여러 가지 불량식품이나 부정한 식품에 대한 고발과 항의가 잇따랐습니다. 물론 먹을거리 만큼은 절대 안전해야 한다는 소망과 염려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외없이 언론의 보도경쟁이 실제보다 더 큰 위험으로 사태를 확대 재생산합니다. 시청자·독자들의 신경을 자극해 시청률·구독률을 올리겠다는 얄팍한 상혼 때문입니다. ‘불량 만두소 파동’이나 ‘기생충 알 김치 사건’, ‘우지 라면 소동’은 실제보다 과대포장된 보도로 인해 국민을 분노케 하고 기업을 도산시키거나 해외교역의 길을 막아버린 사례들입니다.

소위 말하는 공영방송이 오히려 더 심하게 널을 뜁니다. ‘과자의 공포, 우리 아이가 위험하다’는 끔찍한 제목을 붙인 어느 공영방송 보도가 숱한 부모들을 그야말로 공포에 떨게 했던 적이 있습니다. 과자의 식품첨가물이 아토피성 피부염을 유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사실과 다르고 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보도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업계는 물론 어린아이들 코 묻은 돈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영세한 가게들이 이미 큰 타격을 받은 다음이었습니다.

쉬 끓고 쉬 식는 냄비와도 같은 근성 탓인지 그렇게 요란하게 떠들던 사안에 대해서 잊는 시간도 잠깐입니다. 돼지 콜레라, 조류 인플루엔자, 어패류의 비브리오 패혈균 발생에 대한 떠들썩한 뉴스보도, 낭패한 축산농가나 어민들의 아우성, 정부의 때늦은 처방, 신문 방송의 진정 호소, 일상으로의 복귀. 짧을 때는 두어 달 사이에 완료되는 사건의 진행순서입니다.

여전히 문제는 진실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떠들지 말고, 무조건 지지하거나 반대하지도 말고 옳게 알고 나서 제대로 판단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허무맹랑한 뜬소문을 확대 재생산해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가거나, 전혀 엉뚱한 목적을 위해 사태를 악용하지는 못하게 하자는 겁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로 안타깝게도 진실 공방은 까맣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효순 미선양 추모, 공기업 민영화 반대, 대운하 반대,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에 공영방송 수호가 잇달아 시위대의 구호에 포함되었습니다. 이젠 쇠고기는 둘째 치고,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정부의 오만이 더 문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답니다.

촛불은 스스로 그 순수성을 잃어 진심을 의심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정치목적에 의한 본격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말없는 다수 시민들의 불편과 불안은 나날이 증폭되어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지경입니다.

시위대 가운데 더러는 경찰버스에 기어올라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을 자초합니다. 더러는 쇠막대기로 공격하고 더러는 로프로 버스를 넘어뜨리기도 합니다. 경찰 가운데는 대열에서 끌려나와 시위대에게 몰매를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경찰의 구둣발에 차이는 시위 군중도 있습니다. 책임공방을 벌이지만 누가 먼저라고 분간하기도 힘든 이전투구의 현장이 돼버렸습니다.

이게 법치국가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현실입니다. 이게 민주주의를 꽃피웠다고 자부하던 나라의 모습입니다.

그런 혼란과 혼돈의 현장에 얼빠진 국회의원들이 들러리까지 서는 나라입니다. 저들이 제 구실을 옳게 하지 못하여,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여 벌이는 시위에 함께 나와 앉은 국회의원, 그 꼴이 너무 코믹하지 않습니까. 그자들에게 세비를 주고 연간 국회운영을 위해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해야 합니까. 노동자들의 쟁의에서도 무노동 무임금이 원칙이라는데. 후안무치한 국회의원, 무능한 국회로 인해 대의정치를 포기해야 할 나라가 돼버렸습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시도해보면 어떨까요. 2천여년 전으로 돌아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처럼 서울광장과 같은 각 지방 주요 도시 광장에 촛불시위 상설무대를 만들어 민의를 듣는 방법은 어떨까요. 크고 작은 일에 대해 촛불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공중파와 케이블, 위성방송의 적극적인 중계방송이 혹시라도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현장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해 줄 것입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심심찮은 볼거리가 되어 관광효과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여론이 분열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양심의 소리를 찾게 됩니다. 전문 학자들의 양식에 의한 진지한 토론과 언론의 올바르고 성의있는 전달을 바라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시위의 위세에 눌려 쇠고기에 대한 진실을 논하는 소리는 들어보기 어렵습니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거나 의도를 숨긴 일부 사회단체, 그리고 제 잘난 멋에 들떠 있는 못난 언론이 병주고 약주는 선동, 양동이 두들기는 소리만 요란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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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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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인 (218.XXX.XXX.125)
자유칼럼을 즐겨 읽는 독자입니다. 사실이나 진실에 근거하지 않고 무턱대고 감정에 치우쳐 말하고 행동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속도 상하시고 화도 나시겠지만 힘내시고 그래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신 분들이 많다는 데에 위안을 삼으셨으면 합니다.
선생님의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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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30 22:3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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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49)
말하고 글쓴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라고 요즘 생각이 듭니다. 지인에게 " 한국사람은..." 하고 말하자마자 " you 는 한국 사람 아니야?" 라고 무섭게 저를 비판하려 했습니다. 말의 뜻도 들어 보지 않고 진실이 무언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몰아부치는 것입니다.
제가 매국노이기나 한 것처럼, 입을 다물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실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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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30 12: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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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 (118.XXX.XXX.68)
선생님의 좋은 글, 소신있는 글을 잘 읽고있는 사람입니다.황당한 리플로 인하여 마음이 얼마나 상하셨습니까? 우리 모두의 아픔이고 이 사회, 이 나라의 아픔이라고 생각합니다.그래도 앞서가는 지식인이 참고 인내하여야 사회가 하나 둘 씩 진실을 파악하려는 질서를 회복하리라 생각합니다. 스쳐가는 광풍에 굴하지 마시고, 대도무문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용기내십시요. 양식있는 독자가 있습니다.
답변달기
2008-06-30 10: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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