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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 빨리 가실게요”
임철순 2008년 06월 23일 (월) 00:28:04
요즘 음식점에서든 어디에서든 이상한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색하지 않고 어법에 맞게 말을 하는 것은 맞춤법에 맞게 글을 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얼마 전 동네 양식집에 갔을 때입니다. 문간의 접수대에 있던 종업원이 “예약 주셨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말부터 귀에 거슬려 ‘예약이 무슨 약인가 주고 받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주셨을 겁니다”하고 예약자의 이름을 댔습니다.

자리에 앉은 뒤에는 여종업원이 다가와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하더니 발치에 무릎을 꺾고 강아지처럼 내려 앉아 우러러 보면서 주문을 받았습니다. “스테이크로 도와 드릴까요? 치킨으로 도와 드릴까요?” 하고 묻고는 곁들이는 메뉴에 대해서도 “고구마로 도와 드릴까요? 감자 칩으로 도와 드릴까요?”, “음료수는 뭘로 도와 드릴까요?”하고 계속 도와 주지 못해 안달이었습니다. 그 표정과 말투에 닭살이 돋는 기분이었습니다. 심하게 말해, 달라고 하면 음식은 물론 몸까지 줄 것처럼 척척 감겨서 성가셨습니다.

주문이 끝나자 그 종업원은 “이런 거 저런 거로 도와 드리겠습니다”하고 복창하듯 확인하며 도와준다는 말을 기어코 한 번 더 했습니다. 음식을 가져왔을 때는 “실례합니다” 하고 우리의 대화를 끊더니 “식사 나왔습니다” 했습니다. 식사는 내가 하는 거지, 어떻게 나오니? 속으로 또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먹었습니다.

이상하고 어색한 모습은 최고급 호텔 중국음식점에서도 더러 보게 됩니다. 손님이 여러 명인데도 남녀가 단 둘이서 무슨 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방에 들어올 때마다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고, 음식을 나눠 줄 때마다 “실례합니다” 그럽니다. 나는 밥 먹으러 왔고 그래서 저는 먹을 걸 주는 건데, 그게 왜 실례인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손님들의 대화를 방해하면서 들고 온 요리에 대해 설명하는 경우도 여러 번 보았는데, 사실은 그게 진짜 실례입니다.

종업원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지 몰라도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을 최상의 친절과 서비스로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손님들을 편하게 해 주면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서비스하는 교육을 시켜야 할 것입니다. 손님들이 종업원을 의식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서비스가 아닙니다.

우스운 말은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깎으러 가는 미용실에서도 듣게 됩니다. 나는 처음엔 창피해서 미용실에 혼자 가지 못하다가 요즘은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다닙니다. 그런데 이발이 끝나면 미용사가 꼭 “수고하셨습니다”하고 인사를 합니다. 나는 속으로 ‘내가 뭘 수고를 했지? 수고는 지가 하구서’ 그럽니다. 미용실에 가는 토요일 오후에 나는 대개 술에 잘 익어 있는 상태입니다. 골프를 치고 왔든 등산을 다녀왔든 한 잔 걸쳐서 머리를 깎는 동안 자꾸 조는데, 미용사는 “고개 좀 드세요. 정신 차리세요” 이런 말을 자꾸 하다 보니 내가 정말 수고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각종 업체에서 걸어오는 전화는 왜 그렇게 다 녹음된 것처럼 코맹맹이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연스럽고 편하게 해도 될 텐데 판에 박힌 듯 114안내원이 “XXX 말씀이십니까, 고객님?”이라고 할 때의 억양과 음색과 호흡으로 말을 합니다. 되게 친절하고 사근사근한 것 같지만 사실은 되게 형식적이고 진정성이 하나도 없는 말투입니다.

요즘 가장 크게 이상하고 귀에 거슬리는 말은 골프장에서 주로 듣게 됩니다. 오나가나 캐디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자, 이제 우리 티샷 하실게요”, “티 박스에는 한 분만 올라 가실게요”, “우리 조금만 빨리 가실게요”, “오르막에 왼쪽으로 홀컵 두 개만 보실게요”….

홀컵이라는 말도 역전 앞처럼 중복된 말이지만, 그보다 더 우스운 건 바로 이런 말들의 이상한 어미입니다. 늘 시간에 쫓기고 진행을 빨리 하지 않으면 혼이 나는 캐디들에게는 골퍼들을 빨리 잘 이끌어가는 게 중요한 일입니다. 명문 골프장에서야 그런 일이 없지만 대부분의 골프장은 손님들을 토끼나 양떼 몰듯 몰아갑니다. 그래서 기분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 빨리빨리 진행을 하려다 보니 이런 말이 고안된 것 같습니다. 그들로서는 그게 극존칭 청유형(請誘形) 어법인 셈입니다.

나는 그런 말이 듣기 싫어서 내가 먼저 “자, 이번엔 내가 퍼팅 하실게요. 이렇게 말해도 되실게요?” 그러면서 비꼬는데, 대부분의 캐디들은 눈치를 채지 못한 채 나를 잘 웃기고 사람 좋은 골퍼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읽는 동안 ‘되게 까탈 부리고 그러네. 이 사람 말꼬리 잡기 선수 아냐?’ 이렇게 생각한 분도 있겠지만, 요즘 유행하는 이 이상한 접객어(接客語)에 대해서는 좀 더 까탈을 부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놀란 것은 젊은 아가씨들만 그런 게 아니라 남자들도 그렇게 말한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불의의 사고로 머리를 다쳐 응급실에 간 적이 있습니다. 머리가 멀쩡한지, 약간 돌지 않았는지 알아 보려고 X레이 촬영을 했습니다. 털복숭이 X레이기사는 나를 “어르신”하고 불렀습니다. 어르신이라는 말만으로도 정말 기분 나빠 죽겠는데 그는 이어 “자, 여기 올라와서 누우실게요” 그랬습니다.

정말 또 한 번 닭살이 확 돋는 느낌이었습니다. 생긴 건 꼭 산도둑놈같은 그 젊은이는 외모와 어울리지도 않게 계속해서 “왼쪽으로 누우실게요. 오른쪽으로 누우실게요” 그러면서 나를 굴리고 놀았습니다. 성질이 못돼 먹은 나는 촬영이 다 끝난 뒤에 “이 결과가 언제쯤 나오실게요?”하고 묻고 나왔습니다.

나는 전화 통화를 끝낼 때 “들어가세요”하고 말하는 사람도 싫어합니다. 전화 앞에 나왔으니 이제 들어가라는 뜻인 것 같은데, 나는 ‘들어가긴 어디로 들어가? 전화통 속으로 쏙 들어가?’ 이렇게 속으로 투덜거립니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샀을 때 점원이 “좋은 선물 되십시오”하고 인사하는 것도 듣기가 싫습니다.

우리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데, 좀 어법에 맞고 주어 술어가 맞게, 정확하게 말을 하는 학습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말 좀 이상하게 만들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이 사회의 실질적 주역은 젊은이들, 아니 10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말을 이상하게 만들어 망칠 권리는 없을 것입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예를 들면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이 말을 “너는 나를 사랑하는데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 분명 다르겠지요? 또 “야, 니 마누라 정말 멋있더라” 하는 것과 “야, 니 마누라 정말 맛있더라”하는 것은 엄청 다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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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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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희 (211.XXX.XXX.129)
게시물 번호 : 551번
게시물 제목 : “자, 우리 빨리 가실게요”
이 글의 댓글을 신고합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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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6 08:02:08
0 0
율부린너 (211.XXX.XXX.129)
좋은 메세지 감사드립니다.
주필님 참 마음에 와 닿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가 조금씩 여유를 갖고 배려하는 마음만 가지면 되는데
그게쉽지 않지요. 7월 2일 국방홍보원 자문회의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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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6 08:00:43
0 0
한분순 (211.XXX.XXX.129)
글 잘 읽었습니다. 이상한 말들을 많이 하는군요. 건강 잘 돌보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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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6 07:59:23
0 0
홍혜련 (211.XXX.XXX.129)
친절을 모토로 베풀어지는 어색한 말들을 뭐랄수도 없지만 정말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기에 특히나 유쾌하게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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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5 16: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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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준 (210.XXX.XXX.46)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잘못 쓰는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말이 병들고 글이 병들면 정신도 병들까 염려됩니다.
아니 이미 정신이 성하지 않아 말과 글이 이상해지는 것이겠지요.
학교에서부터 살아있는 건강한 말과 글을 잘 가르쳐야하는데...
새로운 인터넷용어는 새로운 시대의 언어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우리 말과 글의 기본 틀인 어법,문법까지 비트는 것은 곤란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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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3 16:02:51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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