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7월의 파리. 오버 깃에 레종도뇌르의 빨간 리본을 단 사내가 독일대사관 문을 들어섰다. 그는 아내가 병으로 앓아누워 돈이 필요하다며 스파이노릇을 자청했다. 프랑스군 장교(소령)라고 밝힌 사내의 이름은 페르디난드 왈신 에스떼라지.

독일대사관 무관 막스 슈바르츠코펜 대령은 베를린 참모본부의 훈령을 받아 에스떼라지에게 들고 온 군사기밀의 무게만큼씩 돈을 지불했다. 어느 날 에스떼라지는 한 뭉치의 서류와 함께 자필로 쓴 서류 뭉치의 명세서를 들고 왔다. 대령은 명세서만은 받지 않고 되돌려주었다.

프랑스 참모본부도 중요한 기밀문서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었다. 독일대사관이 프랑스 참모본부 내에 첩자를 두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챘다. 참모본부 정보국은 대사관 주변 아파트를 얻어 도청을 시도했다. 대사관 우편물을 가로채고 휴지통에 들어간 문서들을 잡역부의 앞주머니에 담아내 훔쳐보았다. 그리고 없어진 변경의 작전지도 배후에 독일대사관 무관 슈바르츠코펜이 있음을 확인했다.

때는 프랑스가 보불전쟁에서 참패해 알자스-로렌 지방을 독일에게 할양한 직후. 프랑스는 절치부심, 러시아와 동맹을 체결하고 국방 강화에 힘을 쏟고 있었다. 프랑스도 독일도 적정 탐색에 눈이 빨개져 있었다. 도처에 첩자들이 뿌리를 박고 있었다.

프랑스 참모본부 정보국은 독일 무관 슈바르츠코펜이 쓴 통신문 하나를 손에 넣었다. 통신문은 “무뢰한 D가 귀하에게 전하라고 내게 준 12장의 니스지방 지도가 여기 동봉되어 있습니다” 라고 시작되어 있었다.

‘무뢰한 D’가 누구인가. 용의자는 참모본부 내에 있거나 아니면 끈을 달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통신문이 공공연히 첩자의 본명을 밝힐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달리 뾰죽한 방안이 없어 정보국은 참모본부 내 ‘D’ 자로 시작되는 이름을 뒤지기 시작했다.

첩보원 하나가 독일대사관을 침입, 우편함에서 문서 하나를 훔쳐냈다. 바로 에스떼라지가 슈바르츠코펜에게 넘겨주려던 명세서였다. 참모본부는 문제의 명세서를 ‘무뢰한 D’의 짓으로 결론지었다. 군의 다양한 기밀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반역자는 각 부서를 돌고 있는 수습참모로 판단됐다. 기록카드철을 훑어 내려가던 시선이 드레퓌스(Dreyfus)란 이름에서 멈췄다. 마침 유태인 포병 대위였다. 참모들은 안도의 눈길을 주고받았다.

프랑스군 참모본부 내에 독일 첩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내각을 붕괴시킬 수도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밖에 알려지기 전에 반역자를 잡아 처단하는 것이 수습의 첩경이었다. 그러나 증거는 달랑 기밀문서 명세서 하나 뿐. 그것도 드레퓌스의 것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었다.

사건의 조기 종결을 꾀해 참모본부의 장교 하나가 이 정보를 반유태 애국주의 신문에 흘렸다. 신문은 즉각 널을 뛰기 시작했다. ‘군이 대반역 혐의자를 은닉하고 있다. 이에 대한 즉각적인 해명을 요구한다.’ 군은 어쩔 수 없이 ‘사실을 수사 중’임을 밝혔다.

나머지 신문들도 최대한 정보력과 추리력을 동원해 보도경쟁에 뛰어들었다. ‘드레퓌스가 군사기밀들을 적에게 팔아넘겼다.’ ‘유태인 조직이 드레퓌스를 빼돌리려 음모를 꾸미고 있다.’

그해 12월 군사재판이 열렸다. 국방상 오귀스뜨 메르시에 장군의 지휘 아래 군은 확인되지 않은 온갖 혐의를 합친 허위서류 다발로 드레퓌스를 옭아 넣을 그물을 짰다. 심판관들은 공개되지도 않은 서류를 증거로 드레퓌스의 반역죄를 인정, 불명예제대와 종신유폐형을 내렸다. 드레퓌스는 한밤중 기차와 선박을 갈아타며 호송돼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의 고도 악마섬에 갇혔다.

방탕한 에스떼라지는 더 많은 돈을 위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참모본부 배속을 원한다는 그의 신청서가 새 정보국장 마리 조르쥬 삐까르 중령의 책상에 올라왔다. 드레퓌스 유죄 판결의 증거가 부실한 데 의심을 품고 있던 삐까르는 신청서의 주인이야말로 명세서의 주인공임을 알아차렸다. 군 수뇌부는 그에게 함구를 명했다. 그러나 삐까르는 진실만이 군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진실을 추구한 삐까르의 신념, 드레퓌스의 군에 대한 충성심을 믿은 형 마따외와 아내 루시의 사랑이 꺼졌던 드레퓌스 논란의 불씨를 되살려냈다. 마따외는 명세서 사본과 끈질긴 노력 끝에 입수한 에스떼라지의 다른 서류들을 근거로 그를 반역의 진범으로 고발했다.

알자스 출신 상원 부의장 오귀스뜨 쉐러 케스트너, 진보 정치가 조르쥬 끌레망소와 장 조레스, 당대 최고의 작가 에밀 졸라와 아나톨 프랑스, 이렇게 몇몇 인사들과 소수의 신문이 마따외와 삐까르의 개미소리같은 이의제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들은 잘못된 증거, 잘못된 재판절차를 지적하며 드레퓌스의 재심을 요구했다.

대부분의 신문과 국민들은 유태인들의 새로운 음모가 시작됐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다수의 신문들은 어디서 찾아냈는지 드레퓌스의 죄목 10여 가지를 나열하기도 했다. 정작 프랑스를 오욕에 빠뜨린 에스떼라지의 고소가 기각되던 날 군중들은 “순교자에게 경배하자. 유태인을 죽여라. 에스떼라지 만세! 군부 만세!”를 외치며 열광했다. 유럽 각국이 자유와 정의의 나라 프랑스의 안타까운 현실을 개탄했다.

진실 규명의 불씨가 꺼져가던 1898년 1월 13일 에밀 졸라가 대통령을 향해 펜을 들었다.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 라고 제목을 붙인 공개 고발장에서 드레퓌스 사건의 조작과 잘못된 재판, 허위 드라마를 연출해 여론을 오도한 국방성과 참모본부의 범죄자들을 고발했다.

세계 곳곳에서 지지서한이 날아왔지만 프랑스 국민들은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켰다. “졸라를 죽여라. 유태인을 죽여라. 군 만세!” 전국 각지에서 군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졸라의 글이 게재된 신문을 불태우고 초상을 목매달고 유태인들을 학살했다. 국민들은 프랑스를 파괴하려는 국제적인 음모가 있다며 반발했다.

새로운 내각과 군부 지도자들은 재판 기록의 재점검을 지시했다. 드레퓌스의 구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끄러운 사건을 확실히 잠재우기 위해서.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날조된 문서들이 드러나고 문책받던 장교가 자살했다. 일반대중을 진실로부터 갈라놓고 있던 벽에 서서히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군의 진실성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패전 후 프랑스 국민들은 강대국 독일에 대한 적개심과 공포심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웃 국가들에 대한 의구심, 맹목적인 애국심과 민족주의, 타 민족에 대한 편견과 배타주의가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편견과 선입관이 현실을 왜곡시켜 정직한 사람들조차 아무런 성찰없이 부정직한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다. 혁명을 통해 그들 자신이 쟁취했던 자유, 정의의 사상조차도 부정되고 있었다.

여론은 진실이라는 근거를 확보하지 못 했을 때 엄청난 오류의 위험을 안게 된다. 그럼에도 여론은 다수를 점함으로써 물리적인 힘보다 강해지고 때로 포악해지기까지 한다. 다수의 편에 서서 소수를 위협하는 일은 항상 손쉬운 법이다.

사악한 세력들이 이러한 상황을 자신의 목적에 이용하려 들었다. 교묘한 선전과 책동,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진 매스컴을 악용해 사무실과 공장, 학교까지 들쑤셔놓았다.

1899년 6월 고등법원의 결정에 따라 열리게 된 드레퓌스의 재심 군사법정은 딜레마에 빠졌다. 군의 명예냐, 드레퓌스의 구명이냐? 비공개 재판은 또 다시 진실을 외면하고 드레퓌스에 유죄 판결을 내렸다. 정상을 참작해 장교 신분을 유지한 채 금고 10년형. 세계는 또 한번 경악했다.

내각은 위기를 느꼈다. 유죄라 해도, 무죄라 해도 사태가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9월 내각은 드레퓌스에 대한 특사를 결정했다. 불만스런 결과였지만 지칠대로 지친 드레퓌스 일가는 이를 받아들였다. 드레퓌스의 구원과 함께 진실의 승리를 위해, 프랑스의 자유와 정의를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여온 사람들 모두가 이에 분개했다. 그러나 비로소 드레퓌스는 자유를, 군은 체면을, 국민들은 평온을 되찾았다.

진실을 위한 투쟁의 마지막 바톤은 마따외와 조레스의 몫이었다. 이들은 끈질기게 증인을 찾아 나섰고 증거자료들을 모았다. 조레스가 국회에서 국방성 감사의 결의를 얻어냈다. 최초의 거짓을 덮기 위한 날조, 이를 감추기 위한 변조 문서들이 또 다시 참모본부에서 쏟아져 나왔다. 드레퓌스는 새 증거자료를 모아 최고재판소에 재심을 청구했다.

1904년 3월 첫 재판 이후 10년 만에 다시 드레퓌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다. 대통령, 수상, 장관과 수많은 장성, 장교들이 이미 노쇠한 모습으로 증언대에 올랐다. 1906년 7월 마침내 최종 결심이 내려졌다. 과거의 위조문서와 위증, 새로 드러난 증거들을 종합 심리한 최고재판소는 “유죄 증거가 없으므로 재심의 여지도 없이 드레퓌스의 과거 모든 판결을 무효화한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정부는 희생을 치른 대가로 드레퓌스를 소령으로 진급시키고 레종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프랑스 사회를 10년 넘게 혼란의 수렁으로 빠뜨렸던 ‘드레퓌스 사건’[니콜라스 할라즈 지음/ 황의방 번역 'Captain Dreyfus, The Story of A Mass Hysteria' 참조]의 전말입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촛불시위는 오늘도 계속되었습니다. 공기업 민영화 반대, 공영방송 감사 반대, 대운하 반대 운동에 미선·효선양 추모,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의 의미까지 합쳐져 시위의 본래 의도는 오히려 곁가지로 밀려나는 모양새입니다. 쇠고기와 국민건강에 대한 진실 공방도 시위군중과 여론에 파묻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게 돼버렸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진실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진실이 늘 승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진실에 신명을 거는 것은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입니다.

암흑이 프랑스를 지배하던 그때 삐까르는 문서날조 혐의로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어두운 감방에 갇혀야 했습니다. 드레퓌스의 변호인 라보리는 총탄세례를 받았습니다. 졸라는 정부를 중상한 죄로 1년형을 선고받았고 테러의 공포 속에 망명의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1902년 파리로 돌아온 졸라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을 때 끌레망소는 이렇게 그를 기렸습니다.

“가장 강력한 제왕에게 반항해 경배를 거부할 만큼 강한 사람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다수에 저항하고 오도된 대중에 홀로 맞선 사람은 드물다. 갈기갈기 찢긴 프랑스에서 혁명이라 할 만한 정신의 평화로운 반항에 첫 신호를 보낸 영광은 졸라에게 돌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