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편의점에 초대형 크림빵이 들어왔다길래 딸아이와 구경을 갔습니다. “아빠 이거 봐!” 아빠 머리보다 큰 빵은 처음 보는 것 같다 ㅋㅋㅋ?”라며 딸아이가 빵봉투를 들어 보여줍니다. “와~ 아빠 어렸을 때 많이 먹던 건데 이 정도 크기면 온 가족이 사흘은 먹어야 해치울 수 있겠는데?” 크림빵 탄생 60주년을 기념해서 한정판으로 만든 ‘대짜’ 크림빵이었습니다. 일반 크림빵의 6배 크기로 만든 거대한 크림빵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와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개봉식을 했습니다. 어차피 한 번에 다 먹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봉투가 지퍼백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크림빵을 꺼내서 반으로 잘랐는데, 생각보다 꽉차게 들어있는 크림을 보며 “크림빵에 크림이 이렇게 많이 들어 있었나?”라고 아내에게 물으니 이미 한입 크게 베어 문 아내가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으면서 한마디 거듭니다. “이렇게 크림을 많이 넣을 줄 알았으면서 왜 그 시절에는 코딱지만큼만 넣었던 거지? 그런데 크림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러네. 옛날에는 크림이 딱딱했는데.” 이렇게 아내와 옛추억에 잠겨 이야기를 하는데, “근데 크림빵에서 살짝 세제향이 나지 않아?”하고 딸아이가 말합니다. 아내와 필자는 이구동성으로 “크림빵 크림 맛이 원래 이런 거야.”라고 얘기하면서 반쪽을 순식간에 먹어치웠습니다. 

그런데 50년 전에는 20원을 주고 사먹은 크림빵이 지금은 8,800원이 됐으니 그동안 몇 배가 오른 건가요? 6배라는 크기를 감안해서 계산을 하면 대충 70배는 넘게 오른 겁니다. 하긴 50년 세월 동안 빵값만 오른 게 아니라 라면, 짜장면, 채소, 생선, 땅값, 집값, 근로자의 임금, 임대료 등등 어떤 것은 더 많이 오른 것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유독 빵값에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말 그대로 ‘빵값’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빵의 위치는 오랫동안 주식이 아닌 간식이었습니다. 그러니 간식에 맞는 합당한 가격 저항선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가격 저항선을 훌쩍 넘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 되었고 그 결과 빵값이 언제부터인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빵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빵값은 GDP 대비 너무 높아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단적으로 일본에서는 1,000원 정도 하는 소금빵이 우리나라에서는 3,000원 가까이 한다고 하니 정부가 발벗고 빵값에 대해 분석을 해보겠다고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무작정 가격을 쥐어짜는 것보다는 제대로 장사를 하는 곳의 노하우를 참고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개성과 품질로 승부를 거는 빵집 중에서도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빵을 만들어 파는 곳이 있습니다. 이태원에 ‘오월의 종’이라는 빵집은 바게트로 유명합니다. 이 집은 바게트뿐만 아니라 호밀빵, 통밀빵 같은 건강한 식빵들을 만들어서 파는데 20년 단골 필자의 입맛에는 아직 이 집 빵보다 맛있는 빵을 만드는 곳이 국내에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합리적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견과류와 건베리류가 들어간 주먹만 한 빵들이 만 원을 훌쩍 넘기는데 이 집은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재료를 쓰면서도 비싸지 않고 건강하고 맛있게 빵을 만드는 곳입니다. 

대형 프랜차이즈는 아니지만 프랜차이즈 중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빵집이 있는데 신사동 사거리에 있는 ‘빽다방 빵연구소’입니다. 이곳은 보통 주말 오전에 순례하듯이 들르는데 빵을 통해서 주인장인 백종원 사장의 철학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맛있고, 푸짐하고, 가능하면 싸게’ – 방송을 통해서 항상 하던 말을 그대로 자신의 가게에서 실현하고 있습니다. 가게 이름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이곳의 빵은 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고 점점 더 빵맛이 좋아지고 있어서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특히 여기서 파는 비프카레 고로케는 2,800원이라는 가격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성비가 뛰어나서 나오는 시간에 오픈런을 해야 맛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옛날에 초코 소라빵을 좀 드셨던 분은 여기 소라빵을 드시면 시간여행을 제대로 다녀오실 수 있을 겁니다. 백종원 사장은 빵값에 대해서 소비자가 견딜만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강남 한복판에서 장사를 하면서도 체감하는 빵값이 다른 곳의 절반인데 그래도 남으니까 장사를 하는 거겠지요? 정말 빵값을 잡고 싶으면 백종원 사장 같은 분의 노하우를 경청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빵값이 비싼 이유를 분석한 기사를 보면 임차료와 인건비가 높은 데다 제빵 원재료 유통 과정도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국내 제빵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어서 원재료를 저렴하게 납품 받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의 빵값은 왜 비싼 걸까요? 그리고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품질과 가격을 모두 만족시키는 동네 빵집이 존재하는 건 또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요? 과거와는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 점점 더 각박해지는 느낌입니다. 더 많이 벌려고 하고, 더 많이 남기려 하고, 더 많이 가지려 하다 보니 점점 더 염치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월급만 염치있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모든 게 염치없이 올랐습니다. 그러니 빵값만 가지고 뭐라고 하기도 참 애매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필자가 소개한 빵집 두 곳은 염치있는 빵값으로 장사를 하면서 한 곳은 건물을 새로 지었고 또 한 곳은 손대는 사업마다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내 봇짐이 가벼워야 남의 짐도 들어줄 수 있고 함께 더 멀리 더 오래 걸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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