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운전을 더 자주 하며 차나 도로에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승용차들의 덩치가 눈에 띄게 커졌습니다. 특히 차의 앞부분이 높고 각이 져 있어 대형 트럭을 연상시킵니다. 비싼 기름 값, 주차난, 교통체증, 그리고 보행자 사망률이 높은 우리의 사정을 감안하면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자동차의 나라는 미국입니다. 땅이 커 거주 지역이 넓게 흩어져 있어 운송수단 관련 산업과 제도가 잘 발달했습니다. 시장도 세계에서 제일 커 세계 자동차 수입 전체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산업에 크게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1970년대 석유파동에 따른 자동차 산업의 판도 변화였지요. 연비가 낮은 기름을 먹는 하마 격인 대형차를 만들던 미국은 쇠락하고, 연비가 높은 중소형 차를 만들던 일본이 짧은 기간 내에 미국 자동차 시장을 장악합니다. 아직도 일본은 미국의 최대 자동차 수입국입니다. 

미 연방정부는 1970년대 중반 연비를 정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 평균 연비를 높여오고 있습니다. 1975년 리터당 6km에도 못 미치던 평균 연비를 1985년 신차의 경우 11.7km로 높였고, 현재는 17km입니다. 엔진 효율성 증진을 통한 연비 향상은 비용이 많이 들어 차 가격을 올립니다.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커지는 것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는 무게가 일정 기준 이하인 경(輕)트럭에 연비규정 예외를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도 경트럭으로 분류되며 엄격한 연비 규제를 벗어납니다. 

1980년대부터 유가가 안정세를 유지하면서 낮은 연비의 경제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줄었지요. 1990년대 들어 SUV의 생산과 판매가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필자도 90년대 중반 미국에서 SUV 차주였는데, 긴 주말에 캘리포니아 동쪽 시에라 네바다 산맥 지역으로 송어 낚시를 갈 때 주로 운행했습니다. 자동차사들은 SUV를 도시 지역 거주 운전자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당시 여피(yuppie, 도시거주 전문직 젊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쳤습니다. 일이 바빠 여가 시간이 없었던 여피들에게 로망을 심어주는 TV 광고가 흔했죠. 대당 마진이 높은 SUV 호황은 그동안 입지가 어려워졌던 미국 자동차 업체들의 사정을 개선하는 데 중요하게 기여했고, 연이어 일본산 SUV도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차도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는데 한국산 SUV는 크기가 작은 편이었습니다. 

원래 큰 차를 선호하는 미국 운전자들의 취향은 세월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아직도 미국 차는 덩치가 큽니다. 최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기사에 따르면 유럽의 차들도 커지고 있지만 2022년 미국에서 팔린 차의 무게가 유럽보다 평균 약 20% 더 무겁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중대형 SUV와 경트럭이 2023년 870만 대 팔려 전체 신차의 반을 넘었다고 합니다. 근래 유럽에서도 SUV 판매 비중이 비슷하게 높은데, 유럽에 비해 미국차들이 더 크고 연비도 낮다고 합니다. 

여건이 미국보다 뚜렷이 나빠 보이는데도 한국의 차들도 커지고 있습니다. “국내 등록된 승용차 중 경차를 제외한 모든 차급의 차량 크기가 11년 전보다 커진 것으로 집계돼 한국인의 '큰 차 선호' 현상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 올해 1∼5월 국내에 등록된 승용차 중 경형(경차)을 제외하고 소형부터 대형에 이르는 모든 차급에서 전장은 2012년과 비교해 17∼150㎜, 전폭은 31∼92㎜ 각각 커졌다” (연합뉴스, 2023. 06. 29, ‘큰차 선호’에 덩치 커진 자동차···전장·전폭 증가세 뚜렷‘). 이 기사에 따르면 2012년 신차등록 차종 10위권에 준중형 아반떼 외에도 모닝, 스파크, 레이 등 경형 3개가 포함되었습니다. 이에 비해 2023년(1~5월) 10위권에는 대형 및 준대형 일색이고, 레이가 유일한 경형(8위)이었습니다.

매일경제 2023.03.05 기사(한국인 '대형차 사랑'에···20년간 24cm 길어진 쏘렌토)에서 캡처

다른 기사에 따르면 SUV 한 차종인 쏘렌토의 전장이 2002년 이후 20년 사이에 24cm나 길어졌고, 준중형급 이상 차량의 2020년 공차중량이 1,697kg로 20년 사이 13.4%나 더 무거워졌다고 합니다(매일경제, 2023. 03, 05, ‘한국인 '대형차 사랑'에···20년간 24㎝길어진 쏘렌토’). 수출 비중이 큰 우리의 사정을 감안하면 미국의 추세가 부분적으로 한국차의 대형화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국내 판매 추이는 한국 운전자들의 ‘대형차 사랑’이 깊어지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교통체증과 주차난, 수입되는 화석연료의 소비를 늘리는 것(전기차의 경우도 발전을 위해 석탄과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 사용) 등을 감안하면 이런 추세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이유가 보행자 사망사고입니다. 도로교통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인구 대비 자동차 보유대수가 2020년 기준 OECD 평균보다 낮지만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자가 많은 것은 잘 알려졌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건수가 제일 많고,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5.9명으로 평균인 4.7명보다 높지만 비교대상국 중 8번째입니다. 그런데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가 사망한 비중이 비교 대상 29개국 중 단연 제일 높습니다. 차가 크면 클수록 차와 충돌하는 보행자의 부상 위험이 높아집니다. 충격은 속도와 무게에 비례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점점 더 큰 승용차와 SUV를 선호하는 것이 보행자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추세이지요. 

어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스쿨존, 노인 보호구역 등이 곳곳에 설치되었습니다. 심야나 새벽에도 속도제한이 바뀌지 않아 투덜거리는 운전자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보행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방안이 없어 보이니, 안타깝게도 앞으로도 보행자 사고 발생과 피해가 이어질 전망입니다. 자연히 보행자 보호 요구가 더 높아질 것이고, 그러면 강제로 자동차 운행 속도를 제한하는 조치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운전자의 주의를 높이고 보행자와 차량을 분리하는 시설물 구축 등 개선책이 필요합니다. 

자동차 대형화 추세도 바뀌면 좋겠습니다. 앞서 인용한 기사에 따르면 “실용성 따지는 외국과 달리 타인 시선 의식하는 영향”이 크다고 보입니다. 자동차 사고 시 운전자를 보호하는 데 큰 차가 유리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자동차 사고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차가 많은 유럽이나 일본과 같은, 삶의 질이 괜찮은 선진국들을 보면 왜 우리가 굳이 큰 차를 타야 하는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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