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사람의 몸을 이루는 60조 개나 되는 세포의 핵 내에 들어있는 염색체 수가 48개로 알려진 이후 오랫동안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오다가 33년이 지난 1956년에 치오(Joe Hin Tjio)와 레반(Albert Levan)이 발표한 ‘사람의 염색체 수(THE CHROMOSOME OF MAN)' 논문을 통해 46개(2n=46)로 확정되었습니다. 46개의 염색체는 44개(22쌍)의 상염색체(常染色體; Autosome)와 남녀의 성을 결정하는 2개(1쌍)의 성염색체(性染色體; Sex chromosome)로 구분이 됩니다. 

성(性) 결정에 관여하지 않으며 인체의 여러 가지 형질 발현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22쌍의 상염색체는 모양과 크기가 같은 염색체가 2개씩 짝을 이루기 때문에 상동(相同)염색체라고 부릅니다.

성을 결정해주는 유전정보를 지니고 있으며 X염색체와 Y염색체로 구분이 되는 성염색체는 성의 결정 역할뿐만 아니라 사람의 모습과 특징에도 관여하는 주요 구조물입니다. 상염색체 22쌍은 남녀 모두 동일하지만 성염색체의 경우 여자는 2개의 X염색체(XX)를 지니고 있으며, 남자는 모양과 크기가 다른 X염색체와 Y염색체(XY)를 가지고 있어 성적으로 구별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 염색체의 수와 형태를 표현하는 핵형(核型)을 남성은 2n=44+XY, 여성은 2n=44+XX로 표기하는 것입니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사람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감수분열을 통해 만들어지는 정자(精子)와 난자(卵子)가 만나는 수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감수분열에 의해 상동염색체가 분리되어 생성되는 남자의 정자는 22개의 상염색체와 X염색체를 가진 정자(n=22+X)와 Y염색체를 가진 정자(n=22+Y)로 구분이 됩니다. 그에 비해 난자에는 22개의 상염색체와 하나의 X염색체가 들어있어 n=22+X로 표기합니다. 그래서 X염색체를 지닌 정자가 난자에 수정이 되면 딸(2n=44+XX)로 태어나고, Y염색체를 지닌 정자가 난자에 수정이 되면 아들(2n=44+XY)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특정 유전자가 성염색체인 X염색체나 Y염색체 상에 놓여 나타나는 유전현상은 성연관(性聯關) 유전이라 부릅니다. 그 실례로 다양한 성염색체 연관 유전 중 X염색체에 연관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색채를 식별하는 감각이 불완전하여 빛깔을 가리지 못하거나 다른 빛깔로 잘못 보는 증상인 색맹(色盲)과 상처가 났을 때 혈액응고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해 출혈이 멈추지 않는 질환인 혈우병(血友病)의 유전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X염색체에 놓인 열성 유전자에 의해 나타나는 유전 양상인 색맹(色盲)에는 선천적 유전자 결함으로 명암만을 분간할 수 있는 전색맹과 특정한 빛깔을 식별하지 못하는 부분 색맹으로 붉은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적록(赤綠) 색맹과 청색과 황색을 혼동하는 청황(靑黃) 색맹이 있습니다.

정상인 X염색체에 대비해 열성의 색맹 유전자를 지닌 염색체를 X’로 표기할 때 여성의 경우 XX는 정상이고, 하나의 염색체가 열성유전자를 지닌 XX’는 외형으로는 정상이지만 색맹 보인자이며, X’X’의 경우 색맹으로 나타납니다. 남성의 경우에는 X염색체를 하나만 지니고 있기 때문에 XY는 정상이지만 X’Y는 색맹입니다. 

색맹(X’Y)인 아버지와 정상(XX) 어머니 가계에서 태어나는 자손의 유전 현상은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요. 이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 중 아들의 유전자형은 아버지로부터 Y염색체만을 받고 어머니로부터는 정상인 X염색체를 받아 태어나기 때문에 모두 정상(XY)으로 태어납니다. 그에 비해 딸들의 유전자형은 어머니로부터 정상인 X염색체를 받지만 아버지로부터는 색맹유전자를 지닌 X'를 받아 색맹 보인자(XX')로 태어나게 됩니다. 

혈우병도 색맹과 마찬가지로 X염색체에 간직되어 있는 열성유전자에 의해 유발되는 성연관 유전병입니다. 1823년 스위스의 의사 호프(Hopff)가 처음 사용한 혈우병(Hemophilia)이라는 용어는 '피(Hemo)'와 '사랑하다(Philia)'라는 그리스어의 합성어로 ‘피를 사랑하는 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혈우병의 대표적인 사례로 19세기 중반에 영국의 경제적 번영을 일구어낸 빅토리아(Victoria; 1819. 5. 24 ~ 1901. 1. 22) 여왕가의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부모 중 한 쪽의 유전자 변이로 혈우병 유전자를 지닌 보인자(XX')로 태어났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자녀는 4남 5녀로 그중 아들 하나가 혈우병 인자(X'Y)를 지니고 태어났고 두 딸이 보인자(XX')로 태어났는데, 이는 아버지는 정상(XY)이지만 빅토리아 여왕이 보인자(XX')이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혈우병이 유명해진 것은 빅토리아 여왕의 4남이자 여덟 번째 아이인 레오폴드(Leopold)의 혈우병이 밝혀지면서부터입니다. 레오폴드 왕자는 심한 혈우병 증상을 보였으나 신하들의 완벽한 보호와 철저한 시중으로 31세까지 살 수 있었고, 결혼해서 자녀까지 두었다고 합니다. 

당시 국가 간 동맹관계 강화를 위한 혼인 관례에 따라 보인자로 태어난 두 딸 중 하나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의 황제 니콜라스 2세와 결혼했고, 다른 딸은 스페인의 부르봉 왕가로 시집을 갔는데, 이들이 지닌 혈우병 인자가 손자, 손녀들에게 전달되어 혈우병이 유럽의 여러 왕가로 퍼지며 혈우병이 ‘왕가의 병’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성염색체인 X염색체나 Y염색체에 간직되어 있는 돌연변이 유전자의 발현에 의해 나타나는 성연관 유전병의 발병 빈도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여성의 경우 2개의 X염색체 중 1개에 결함이 있어도 다른 1개가 보완해주는 보인자가 되어 유전병 발현이 억제될 수 있지만, 남성의 경우에는 X염색체가 1개뿐이라 X염색체에 유전적 결함이 유발되면 그 발현을 억제될 수 없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또한 X염색체에는 형질 발현 유전자들이 간직되어 있지만, Y염색체에는 남성을 결정하는 성결정인자로 불리는 SRY(Sex-determining region Y) 유전자 외에는 특정 형질 발현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