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 탱자 한다”는 말은 하릴없이 빈둥댄다는 뜻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며 우긴다는 뜻입니다. 탱자의 모양이나 속성을 잘 나타낸 속담 중엔 “불알을 만지면서 탱자 탱자 한다”는 것도 있죠. 

탱자나무는 귤과 함께 운향과(芸香科) 식물로 진한 향기를 지닌 식물이나, 과일 대접을 받기엔 열매의 맛이 너무 시고 떫고 씁니다. 과일이 귀하던 시절 탱자의 압도적 신맛 속에 숨어 있는 적은 단맛을 보려고 “어이구 셔라!” 진저리를 치며 과즙을 빨아먹던 어렸을 적 추억이 떠오릅니다.

나무로서도 크거나 오래 살거나 잎이 무성하지도 않지요. 소나무나 전나무처럼 깊은 산중에서 궁궐의 기둥목재로 쓰일 우람한 기품이 느껴지는 나무는 아닙니다. 사람 곁에서 집의 울타리가 되어 도둑을 막고 찬바람을 막아주는 인가(人家) 친화적인 나무입니다. 

	탱자나무 화가 정혜자 씨(오른쪽)와 서달원 씨가 탱자나무 가시를 구원의 상징으로 삼은 전시 작품 앞에 서 있다.

어린 시절 고향에 더러 탱자나무 울타리집이 있었지요. 그 집은 대개 마당이 넓고 기와지붕의 부잣집이었죠. 탱자나무의 억세고 날카로운 가시가 액운이 들어오지 않게 막아준다 해서 울타리 목으로 썼다고 하죠. 그와는 반대로 왕조시대 중죄인을 귀양을 보내 위리안치(圍籬安置)시킬 때 울 밖으로 도망하지 못하도록 탱자나무 울타리 집에 가두었지요.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에서는 남쪽에 심으면 귤이 될 것을 북쪽에 심어서 탱자가 됐다고 탱자의 오죽잖음을 변명했지요. 1990년대엔 코미디언 고 김형곤 주연의 ‘탱자 가라사대’란 난센스 유머로도 소비됐었구요. 비교적 우아하고 유용하게 쓰인 것은 소쿠리에 탱자를 담아 방이나 차 안에 놓아 그윽한 향이 오래 머물게 한 것이죠.

자주 쓰이지는 않았으나 고둥이나 소라를 삶아 알갱이를 빼먹을 때도 탱자나무 가시가 그만이었고, 종기로 피부가 곪았을 때 곪은 자리를 따는 데도 탱자나무 가시는 소독이 필요없는 천연의 의료기기가 되었죠. 목질이 단단하여 도끼자루로도 쓰였고, 꽹과리채의 끝부분인 뽕으로 쓰면 소리가 영롱하다 했죠.

설익은 푸른 탱자를 말려서 약용으로 쓰기도 하고 노랗게 잘 익은 탱자를 설탕으로 발효시켜 차로 마시거나, 술을 담그는 사람도 있죠. 입에 쓰거나 떫거나 신 것은 사람 몸에 좋다고 하는데, 탱자 열매는 그 점에서 익었건 설었건 사람 몸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되죠. 

지금 우리 주변에서 탱자나무는 보기 어려운 나무가 되었습니다. 탱자나무 울타리 집은 더욱 그렇죠. 폭 몇cm짜리 시멘트 담벼락을 쳐서 한 뼘의 땅이라도 넓게 쓰려는 인간의 탐욕이 탱자나무 울타리를 걷어낸 것이지요.

썩은 탱자 곰팡이가 과일 탄저병의 모체가 된다니 과수농가로부터 괄시가 갈수록 심해질 것 같군요. 젊은 층에선 탱자나무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터인데, 인간으로부터 배척까지 당하는 나무가 된다면 머지않아 멸종위기종 식물에 들어갈지도 모르죠.

이런 세태를 아쉬워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식물학자도, 생물학자도 아닌 화가입니다. 그들은 지난 8년간 오로지 탱자나무만 그렸습니다. 동양화가 정혜자 씨(58)와 화가 디자이너 서달원 씨(61)가 그들입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더스타 갤러리에서 탱자나무 전시회를 열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나 탱자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고 많은 나무 중에 왜 하필 탱자를 그리게 됐습니까?
*정혜자=어렸을 적 고향집에 탱자나무가 있어 추억이 많았죠. 나이 들어 문득 주변에서 탱자나무가 사라지고 있음을 느끼게 됐어요.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는데, 인물과 풍경을 그려오다 8년전 새로운 그림을 그려보자고 고민하던 때 떠오른 게 사라지는 추억의 나무였죠.
*서달원=디자인이 전공인데 탱자나무에서 고유한 디자인의 구도를 보았다고 할까요. 멀리서 보면 잡목에 불과한데, 가까이 들여다보니 줄기에서 가시가 나오는 여느 가시나무와 달리 줄기와 잎과 가시가 동시에 나와서 구도를 만들어 가더라구요. 그게 너무 신비했어요. 상상이나 사진으로는 그런 구도를 표현할 수 없어 모든 작품을 나무 앞으로 가서 그려야 했죠. 한 나무를 그리기 위해 열 번도 넘게 가기도 했죠.

	탱자나무 가시는 잘 익어 주렁주렁 매달린 탱자 열매를 감쌀 뿐 찌르는 일이 없다.

-탱자나무는 어떤 나무인가요?
*정=생명력이 강한 원시적인 나무죠. 씨가 많고 어디서나 잘 자라죠. 민초를 닮은 짠한 나무라고 할까요? 감을 그 원형인 고염에 접을 붙이듯, 귤도 어미 나무인 탱자나무에 접을 붙이죠. 가시가 날카로운 것은 잎과 열매를 보호하겠다는 강렬한 생존본능이라고 해야겠죠.

-탱자나무를 찾기가 어려웠지 않았나요? 전국에 몇 그루나 남아 있나요?
*서=지난 8년간 1년에 최소 100일 이상, 강화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을 수소문하며 찾아다닌 곳이 70여 곳쯤 되죠. 작품은 500여 점쯤 되고요. 천안의 570년 된 최고령 탱자나무와, 강화도 갑곶 돈대의 470년 된 두 그루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죠. 갑곶 돈대의 탱자나무는 요새 말로는 군사용 철조망이라고 하겠죠. 북한에도 보호수 지정된 탱자나무가 한 그루 있다는데 언젠가 그 나무를 그리는 게 꿈이에요.

	탱자나무 가시를 둥그렇게 엮으니 예수가 쓴 가시면류관의 형상이 된다.

-탱자나무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서=대부분 고향이 생각나나 봐요. 작가에게 아픈 상처가 있었냐고 물어보는 분도 있어요. 여행 다니다 발견한 탱자나무의 위치를 알려주는 분도 있는데 그곳은 반드시 찾아가죠. 그림을 보고 50년생 탱자나무를 조경수로 심었다고 알려온 친구도 있었죠. 조경원에서 탱자나무도 더러 팔린다니 다행이죠. 

-전시작 중에는 탱자나무에 기독교를 접목시키려 시도한 듯한
작품도 보이던데요.
*정=맞아요. 지극히 사적인 예수에 대한 저의 서사이죠. 관객들도 탱자나무의 가시에서 그런 인상을 받는 듯해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쓴 면류관이 탱자나무 가시가 아니라 다른 비슷한 나무였다고 하나, 가시가 예수의 고통, 인간의 원죄의 상징일 수는 있죠. 외국인 관람객들도 '가시(Thorn)'에 비슷한 반응을 보이더군요.

-앞으로의 계획은?
*정=탱자를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탱자나무를 알리고 싶어요. 그동안 찾아다닌 탱자나무 위치 지도를 만들고 거기에 얽힌 사람과 역사에 대한 얘기를 책으로 남길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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