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동전 줍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봄맞이 대청소를 했더니 주머니에 돈이 들어왔어요. 잘 안 입는 옷을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팔았거든요. 40대 중반까지 입었던 화려하고 앙증맞은 모양의 코트예요. 딸한테 물려주고 싶었는데 체형이 달라 몇 년째 옷장에만 걸려 있던 옷이에요. 딸들은 어미와 달리 팔다리가 길쭉길쭉하거든요. 출근 준비를 하면서 몇 번이고 들었다 놨다 반복했지만 못 입겠더라고요. 분홍색 하트 모양 주머니가 너무 튀어 “나잇값도 못 한다”는 말을 듣는 게 싫어서였죠. 값비싸고 예쁜 옷이 드디어 새 주인을 만났어요. 옷장을 볼 때마다 속이 시원합니다. 부피 큰 코트가 빠지고 나니 옷장도 편히 숨을 쉬는 느낌이에요.
“생각보다 훨씬 예쁘네요. 좋은 물건을 커피 한 잔 가격에 주셔서 고맙습니다.” 코트를 산 이가 거래 후기를 남겼어요. 별것도 아닌데 기분이 참 좋아요. 대한민국 국민이 ‘당근’에 빠지는 이유가 이건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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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겟'의 한 장면. 중고거래의 위험을 알리는 내용이다. 현실에서도 중고거래는 꼼꼼히 따져보고, 판매자와 구매자가 서로 예의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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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이세요?” 혹시 이 말, 해보셨나요? 지금껏 중고거래 방식이 참 많았는데, 2020년 이후엔 당근이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의 대명사가 된 것 같아요. 내 주변에도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우선 이곳에 들어가 찾는다는 이가 많더군요. 운이 좋으면 새 물건을 백화점 가격의 절반 이하에 살 수도 있답니다. 옷, 책, 가방, 신발은 물론 자동차, 아파트에 일자리까지도 나와요. 세상에나!
설을 쇤 지난달 중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명절 선물이 왕창 쏟아져 나왔더군요. 비누, 식용유, 햄과 참치 세트, 곶감, 과일, 화장품과 각종 기프티콘에 전자기기까지 그야말로 만물상이었죠. 선물한 사람이 알면 서운하겠지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집 안 어딘가에서 나뒹구는 것보단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선물받은 물품을 판매할 땐 주의해야 할 게 있어요. 홍삼, 비타민 등 건강기능식품과 술은 거래하면 안 돼요. 현행법상 판매자가 지정돼 있기 때문이에요. 모르고 팔았다가 엄청난 액수의 벌금을 낼 수도 있어요. 참, 구매할 때도 터무니없이 싸게 내놓은 상품들은 꼼꼼히 따져봐야 해요. 개인 간 거래이다 보니 문제가 생길 경우 해결하기 쉽지 않을 테니까요.
“남이 쓰던 물건을 돈 주고 사서 쓴다고? 에이, 더러워.” 중고는 남이 쓰던 물건이라서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나이 든 세대입니다. “얼마나 없이 살면 남이 쓰던 물건을 사!” 중고 물품을 가난의 상징으로 여기나요. 당신도 옛날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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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서적 중고장터를 찾은 대학생들이 선배들이 내놓은 교재를 살펴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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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세대와 구세대를 구별하는 방식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중고 거래’입니다. ‘남이 쓰던 물건은 냄새나고 구질구질해’ 등 중고 물품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면 구세대입니다. 신세대에게 중고시장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가치 있는 소비를 하는, 투자의 수단이거든요.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중고 물품을 대하는 태도가 신·구세대를 가르는 기준인 셈이죠.
특히 엠지세대(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는 여러 사람이 썼던 물품이라도 새 상품과 다름없다고 여깁니다. 심지어 세월의 흔적에도 가치를 담아 더 비싼 가격에 사고팝니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 엠지세대의 새로운 재테크입니다. 그들에게 중고 제품은 새 제품보다 더 가치 있고 매력적입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N차 신상’이에요.
이 같은 거센 바람을 타고 지난해 당근 누적 가입자 수가 12월 기준 3,600만 명을 기록했대요. 국민 3명 중 1명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당근’을 이용한다(2023년 12월 21일 당근 발표)고 해요. 물건을 사고팔고, 서로 필요한 물건으로 바꾸기도 하고, 무료로 나눔도 합니다. 지난해 ‘무료 나눔’ 게시 글이 가장 많이 올라온 지역은 경남 양산시 물금읍으로, 2년 연속 전국 1위를 기록했다고 해요. 이사 등으로 처리해야 할 가구, 전자제품이 나눔의 주요 품목이라는데, 어쨌든 따듯하고 정겨운 마을입니다.
갑자기 책장 서랍장 옷장 신발장 찬장을 열어보고 싶지 않나요? 안에 들어있는 물건이 개수는 넘쳐나고 장식 기능만 한다면 비워야 할 때입니다.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는 법을 알아야 해요. 꼭 돈이 오고갈 필요는 없어요. 나누는 기쁨은 그 이상일 테니까요. 경제가 어려운 시절, 당근마켓과 알라딘처럼 착한 공유경제 모델이 돋보입니다. 당근은 '당신 근처'의 줄임말이래요. 이웃과 같은 뜻이네요. 안 쓰는 물건, 나눌 준비들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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