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한국에서는 동지)가 지난 다음 날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호주 시드니 북쪽 휴양지 겸 주거지인 워이 워이(Woy Woy)에 다녀왔습니다. 평화로운, 전형적인 호주 시골 읍내가 개발과 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새로 짓는 집의 분양 광고판과 부동산 회사의 간판이 자주 보입니다. 왕복 2차로였던 고속도로는 4~6차로로 확장됐습니다. 지나가던 자동차 대수를 손꼽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체증도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아시아인을 찾기가 어려웠던 곳이었는데, 상점 진열대엔 한국산이 즐비합니다. 심지어는 한글로 표기된 중국산이 버젓이 팔립니다. 불법은 아니지만 왠지 고약한 생각이 듭니다.

왼쪽) 호주 시드니 북방의 워이 워이 추모 공원 정문. 이곳 출신 전사자 명패를 모두 모셨다. 오른쪽) 워이 워이 추모공원 전경.

만(灣)에는 갈매기와 이름 모를 예쁜 새들이 날아다닙니다. 갈매기가 내리꽂으며 만든 윤슬이 금방 사그라집니다. 언제 파문이 일었는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한가함은 게으른 펠리컨이 모여 있는 ‘어부의 선창’이란 피쉬 앤 칩(물고기와 감자튀김) 가게 지붕으로 수렴합니다. 지붕에 앉아 조는 펠리컨은 모든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웬만한 위협에는 꿈적도 않습니다. 고개 숙인 한 자세로 마냥 버팁니다. 가게 영업이 끝난 주인이 양동이를 들고 나타나면 그제야 날개를 퍼덕입니다. 물고기 내장과 음식 부스러기를 선착장에다 던져 주면 새들이 축제를 벌입니다. 넙죽넙죽 받아먹던 펠리컨을 보며 마음 상했습니다. 앉아만 있다가 먹이를 받아먹을 수 있는 그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적당히 움직여 고기 잡는 펠리컨이 훨씬 더 정겨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속에 하늘을 나는 새가 비칩니다. 물속인지, 하늘을 나는지 분간할 수 없습니다. 물속에서 갈매기와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어울려 놉니다.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잉무든 장글란 가지고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청산별곡 일부)

하늘로 치솟는 “호죽기”가 물속에서도 멀어집니다. 비행운도 꼬리처럼 매달려 갑니다. 어릴 적 촌놈들은 어쩌다 제트기가 날아가면 뜻도 모른 채 “호죽기다”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호죽기"가 “호주기”를 강하게 발음한 것임을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호주 공군이 6·25 때 참전, 제트 전투기로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북한군과 중공군에게는 호주기가 저승사자였습니다. 눈 깜짝할 새에 날아와 머리 위에서 무자비하게 기총소사와 폭탄을 쏟아냈습니다. 부모님 세대는 원수들이 진저리치며 무서워하던 호주기가 그리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호주기는 승리의 표징이었습니다. 호주기의 승전보는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파이더 맨, 태권V의 승리보다도 더 신났습니다. 그 뒤 하늘을 나는 모든 제트기는 "호죽기"라 불렸고, 북한군을 때려잡던 승리의 상징처럼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왼쪽) 지역 출신 모든 전사자의 명패가 공원을 에워쌌습니다. 오른쪽) 6•25에서 숨진 전사자 명패.

워이 워이 바닷가 가장 좋은 곳에 자리한 전몰장병 기념공원에서는 가슴이 시립니다. 호주인이 가장 선호하는(비싼) 곳(Water front)에 이곳 출신 전사자 명패를 모셨습니다. 공원의 사방 벽을 전몰자 명패로 둘렀고, 채울 자리가 아직도 남았습니다. 6·25 전사자 명패를 찾아냈습니다. 고개가 숙여졌고,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그들의 죽음으로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존재했고, 필자는 그 땅에서 태어났고, 자랐으며, 살아왔음에 감사했습니다. 그간 호주 곳곳에서 6·25 전사자가 포함된 기념비를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시드니의 에핑, 맨리는 물론 캔버라, 멜버른, 카툼바, 브리즈번, 태즈메이니아 등입니다.

국민이나 정부가 참 야속합니다. 전 정부는 대통령이 참가하는 행사 일정에 맞추느라 전사자 유해를 개차반처럼 여겼습니다. 물에 빠진 채 사살·소각당한 공무원은 아직도 구천을 맴돌고, 폭침된 천안함 전사자들을 욕되게 하길 수백 번, 김원봉 같은 적을 추모하는 등 추악한 일을 했습니다. 전임 광복회장은 이 악물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 등을 친일파로 몰아붙였고, 광주에선 적군 음악가를 기리는 음악제를 열고, 충청북도 한 지자체는 국립 호국원 설립을 반대하여 무산시켰습니다.

외국에서 6·25 전사자를 최고의 예우로 기릴 때마다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대한민국을 지키다 숨져간 영혼들을 최고로 모시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영원히 지키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