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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상상력이 빚은 산물, 용담(龍膽)
박대문 2023년 11월 22일 (수) 02:10:14
   
  용담, 용담과, Gentiana scabra Bunge   

단풍이 한창 물들어 가던 지난달, 광주의 무등산을 찾았습니다. 57년 만에 무등산 정상의 인왕봉을 일반인에게 개방한다는 소식과 함께 무등산 중봉과 장불재의 하얀 억새밭이 보고 싶었습니다. 백마의 하얀 갈기처럼 나부끼는 억새 이삭의 한들거림과 장엄한 입석대, 서석대 그리고 군사시설이 들어선 이후 출입이 제한되었던 무등산 정상 중의 하나인 인왕봉이 떠올랐습니다. 

일렁이는 물결처럼 가을 햇살 아래 나부끼는 장불재의 하얀 억새밭 사잇길을 지나 인왕봉, 입석대에 오르는 길목에서 한 송이 꽃을 만났습니다. 산야에 꽃들이 거의 시들고 없는 단풍의 계절에 억새 더미에 끼어 사잇길로 빼꼼히 고개 내민 꽃, 푸르스름한 연보랏빛 꽃, 깊어 가는 가을 탓인지 애수에 잠긴 듯한 신비감과 외로움이 서린 듯해 보이는 용담꽃이었습니다. 

용담꽃! 무등산에서 만난 탓인지 꽃 이름을 되뇌다 보니 갑자기 신비로움과 의아로움이 겹쳐 상상의 나래가 펼쳐집니다. 용담(龍膽)은 그 뿌리의 맛이 용의 쓸개처럼 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있지도 않은 상상의 동물, 그 세밀한 모습과 역동성 있는 용(龍)의 그림과 조각을 보며 신기하다고만 여겼는데 그 상상의 동물 내부에 있는 쓸개의 맛까지 끌어낸다는 것은 아무래도 상상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 아닐까? 게다가 그 상상의 맛을 유추하여 자연 속 현존 식물의 이름까지 지어내는 것을 보면 과연 인간의 상상력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무등산 일대는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전설과 지명이 많은 곳입니다. 무등산 정상은 국내 어느 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 등 천지인(天地人) 3개의 바위 봉우리로 이뤄져 있어 이 세 봉우리를 '정상 3대'라고도 부릅니다. 무등산의 지명 또한 그 의미가 깊습니다. 지명 유래에 관한 설은 다양하지만, 높이를 헤아리기 어렵고 견줄 상대가 없어 등급조차 매길 수 없다는 의미의 설이 가장 그럴듯합니다. 어떤 등급이나 계급의 구별에 의한 차별이나 배제가 없는 평등한 세상! 천지인, 삼라만상이 물아일체가 되어 차별 없고 등급 없는 무등(無等)의 세상! 그래서 정상에는 천, 지, 인, 세 왕봉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무등산 북쪽 기슭에는 후삼국 시대 혼란기에 견훤과 함께 도솔천(兜率天)을 기리며 무등산곡(無等山曲)이라는 노래를 지어서 부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도 했다는 무진고성(武珍古城)이 있습니다. 무등산 조금 남쪽으로는 화순 운주사에 천불천탑이 있습니다. 1000년의 세월 동안 훼손되고 유실되어 제 형태를 유지한 것이 거의 없어 설화 속 천불천탑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미륵신앙의 흔적은 여러 군데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곳입니다.

무등산 장불재 억새 벌판의 사잇길을 따라 입석대, 인왕봉 길을 오르며 보니 가을이 깊어 가는 탓에 다른 꽃은 별로 안 보이는데 용담꽃이 군데군데 눈에 띕니다. 게다가 다른 지역에서 만난 용담꽃과는 유달리 꽃이 풍성하게 크고 색깔도 보랏빛이 강해 사뭇 달라 보였습니다. 이 꽃 또한 상상거리가 풍부한 무등산에서 만나고 보니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천지인 삼왕봉의 수문장인 듯한 입석대 앞 벌판의 억새 더미 사잇길에서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듯, 반기는 듯 빼꼼히 고개 내민 용담꽃! 가녀린 줄기에 큼지막한 꽃송이를 버겁게 매달고 씨앗 영그는 그날까지 쓰러지고 자빠져도 버텨야 하는 기다림. 연보랏빛 꿈에 절인 환상의 꽃만 같았습니다.

   
  상상의 동물, 용의 간 맛을 누가 알랴? 그 맛이라 일컫는 용담.  

용담은 전국의 웬만한 곳이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산지의 풀밭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잎은 마주나고 긴 피침형 모양으로서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잎에 3개의 큰 맥이 있습니다. 꽃은 초가을에서부터 피기 시작하여 늦게는 11월까지 볼 수 있습니다. 꽃은 연한 자주색이며 잎겨드랑이와 끝에 달립니다. 꽃받침은 통 모양이고 끝이 뾰족하게 갈라집니다. 꽃은 종 모양을 닮았으며 가장자리에서 5갈래로 갈라집니다. 어린싹과 잎은 식용합니다. 생약명은 초용담(草龍膽)이라 하는데 황백색의 굵은 수염뿌리에 맛이 매우 쓴 성분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맛이 매우 쓴 위장건위제인 고미건위제(苦味健胃劑) 등 한약재로 쓰이는데 용담 뿌리의 이런 성분 때문에 약초꾼들의 무분별한 채취로 이제는 귀한 약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용담은 비슷한 종(種)이 참 많습니다. 이른 봄, 야산에 피는 구슬붕이처럼 매우 키 작은 종에서부터 신비한 빛깔로 매혹적 자태를 뽐내는 고산지대의 비로용담이 있습니다. 또한 키가 매우 크고 꽃도 훨씬 크지만, 용담과 매우 닮은 과남풀이 있습니다. 자라는 곳에 따라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꽃 피는 시기도 비슷하여 용담과 쉽게 구분할 수 없어 헷갈리기 쉬운 꽃입니다. 과남풀은 잎이 유난히 길고 뾰족하며 뒤로 처지는 모습이 칼을 닮았다고 하여, 한때 '칼잎용담'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용담과 과남풀의 쉬운 구별법은 꽃 모양과 꽃받침에 있습니다. 용담은 꽃이 활짝 벌어져 꽃 속의 수술이 드러나 보이며 꽃받침이 뒤로 젖혀집니다. 이에 반하여 과남풀은 꽃이 반쯤 열릴 듯 말 듯 하여 안의 수술이 보이지 않으며 꽃받침은 젖혀지지 않고 곧게 서서 꽃부리에 붙어 있습니다. 

용담꽃의 꽃말은 ‘정의’, ‘애수(哀愁)’ ‘슬픈 그대가 좋아요’라고 합니다. 칼 같은 잎새 모양과 몽환적 신비로움과 애수의 보랏빛에서 ‘정의’, ‘애수’,가 비롯되었나 봅니다. 또한 꽃이 적게 달리면 꼿꼿하게 서 있는데 풍성한 꽃이 많이 달리면 풀더미 그늘에서 자란 탓에 줄기가 연약하여 옆으로 처져 쓰러집니다. 이러한 모습이 역경 속에서도 내일을 기약하는 꽃을 풍성하게 매달고 있어 ‘슬픈 그대가 좋아요’라는 꽃말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차피 상상거리가 풍부한 무등산에서 상상의 극치에서 비롯된 이름, 용담을 보니 이 생각, 저 생각이 나래를 펴는 산행길이었습니다.

무등뫼 용담꽃 

더함도 덜함도 없다는 무등뫼. 
삼라만상이 어우러진
천,지,인, 세 왕봉을 찾는다.
 
수문장 노릇을 하는 입석대 앞,
장불재의 억새밭 사잇길에는
문설주에 기댄 봄 처녀처럼
빼꼼히 고개 내민 넋이 있다. 
 
억새 더미 그늘 속
외로운 듯 그리움에 기대
무등 세상 기리는 간절함이런가.

지치고, 쓰러지고, 자빠져도
내일의 꿈, 보랏빛 꽃송이 보듬고
사랑인 듯, 눈물인 듯, 슬픔인 듯
하늘 보고, 땅 보고, 사람 보고
빌고, 버티고, 기다린다.
연보랏빛 꿈에 잠긴 몽환의 꽃.

(2023.11월 무등뫼 용담꽃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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