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송나라의 저공(狙公)은 원숭이를 많이 기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 가물어 먹이가 부족하게 되자 저공은 원숭이에게 주던 도토리를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이제부터는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원숭이들은 우선 아침에 세 개밖에 주지 않는다는 데 화를 냈습니다. 저공이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원숭이 모두가 좋아했습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로 잘 알려진 중국 열자(列子)의 고사입니다. 흔히 같은 양으로 주는 방법만 달리해 받는 자를 우롱하는 처사를 비판할 때 인용됩니다. 그러나 음미할 것은 분위기에 따라, 전하는 말의 뉘앙스에 따라 같은 일이 얼마나 다르게 느껴지고 다르게 받아들여지는지, 인간심리의 미묘함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광우병 걸린 소가 발견된 적이 있고, 혹시라도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국민건강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반대 시위의 이유입니다.

국내의 한우 축산농가를 보호하자는 뜻도 있습니다. 가격경쟁에서 미국산 쇠고기에게는 턱없이 밀리기 때문입니다. 정작 국내 축산농가는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기도 전에 사람들이 쇠고기를 기피하는 바람에 피해막심이라고 합니다만.

그밖에 다른 뜻이 전혀 없는 순수한 집회요 시위라는 것이 참여한 사람들, 지지하는 사람들의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서 시위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조금 다릅니다. 연일 계속되는 시위에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미묘한 심리가 적잖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베트남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무력을 행사하며 지구촌의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나라, 그 막강한 힘으로 통상압력도 서슴지 않는 나라, 그러한 거대 미국에 대한 반감도 엿보입니다.

광우병 위험도 위험이지만 그런 나라의 압력에 눌려 너무도 선선히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는 정부가 미덥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한 정부를 연일 두들기는 재미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대선에서 망신당했던 과거정권 인사나 야당으로선 인기만회의 호기를 만난 셈입니다.

그럴 듯한 명분에 촛불시위라는 참으로 우아하고 근사한 시위방법에 의해 정부가 감당키 어려운 세력이 결집되고 있습니다. 서울의 청계천에서도, 천리 떨어진 진주의 로데오 밤거리에서도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이 축제를 벌이듯 밤낮으로 시위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요.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 한우의 안전성? 미국 소 사료의 성분? 국내 축산농가가 사용하는 소 사료의 내용물? 한미 무역협상의 굴욕적인 타결? 위기에 몰린 한국경제의 탈출구?

인터넷엔 쇠고기 수입에 관련된 온갖 의혹과 낭설이 떠다닙니다. “우리 어떻게 해요? 다 죽는 거예요? 쇠고기 안 들어간 음식이 없을 정도라며요.” 거기에 근거없는 답변도 가지가지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우리 경제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협정 타결의 열쇠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심리는 전혀 다른 것 같습니다. 도토리 세 개로만 보일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쇠고기 수입정책의 잘못에 앞서 국민들의 정서를 옳게 읽고 이끌어 가지 못하는 현 정부의 홍보정책 부재와 설득력 부족이 더 큰 잘못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입니다. 법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법이 ‘국민정서법’이라는데 말입니다.

미국은 우리의 건국과 전쟁 수행에 많은 힘을 보태준 나라입니다. 반세기 전엔 거의 모든 어린이들이 미국이 퍼다 주는 밀가루, 우유가루, 설탕가루, 초콜릿을 먹고 자랐습니다. 이, 벼룩 등 물것들과의 전쟁에서도 미국산 디디티가 큰 공을 세웠습니다. 미국은 ‘우방’을 넘어 ‘맹방’이라는 표현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한 이불을 쓰고 자는 부부도 권태기를 맞습니다. 조금 형편이 나아지면서 미국이 본전에 이자까지 뽑기 위해 미리 투자한 것일 뿐이라고 그들의 원조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맥도날드, 코카콜라처럼 인이 박여 다른 식품은 거들떠보지도 못하도록 만든 것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조차 있습니다.

미국이 무역협상 테이블에서 상대의 손목을 비틀 듯 기를 쓰는 모습을 보면 그런 감정도 생겨날 법합니다. 그들 역시 그 나라의 국민들 앞에서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정치인들이요 관리들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실 힘센 자를 괴롭히는 것만큼 통쾌한 일도 별로 없습니다. 문 위에 허옇게 백묵가루가 붙은 지우개를 올려놓고 교실에 들어서는 선생님을 골탕먹이던 일은 학창시절 악동들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어쩌면 청소년들이, 국민들이 열정을 쏟아 부을 신명나는 이벤트가 없다는 것도 촛불시위를 키우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올림픽이나 월드컵이라도 열렸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문제는 진실입니다. 시위 이전에, 정쟁 이전에 진정 국민 건강과 국가 경제를 생각한다면 무엇이 진실인지를 진지하게 규명하는 절차가 앞서야 합니다. 신문도 방송도 숭어 따라 망둥이 뛰듯 마구 뛸 것이 아니라 해당분야의 양식을 가진 전문가들의 소리를 먼저 충분히 들어봐야 합니다. 그들이 두려움 없이 제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거리에 나선 진정한 이유, 수입을 밀어붙이는 참 이유가 무엇인지도, 저마다 너무도 잘 굴리는 머릿속 계산이 아니라 가슴 속 소리로 확인해 봐야 합니다. 정치권의 결정도, 국민들의 행동도 그 다음 차례라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