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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천사의 귀천(歸天)
방석순 2023년 10월 16일 (월) 00:01:26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전라도 길-소록도 가는 길>

한센병(Hansen's disease), 예전 말로 문둥병 시인 한하운(韓何雲, 1920.3.20.~1975.2.28.)은 천형(天刑)의 아픔과 서러움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베이징 농대를 졸업하고 돌아와 함남 도청 축산과에 근무하던 그는 한센병 악화로 보통 사람의 삶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평생을 투병과 환자 구제사업, 그 고통과 슬픔을 노래하는 시작(詩作)으로 보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것은 천형이었습니다. 지은 죄 없이 죄인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사람 사는 거리에서 쫓겨나야 했고, 그늘 속에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찰턴 헤스턴이 열연했던 1960년대 명화 ‘벤허’에서 본 것과 같았습니다. 지하 감옥에서 나병을 얻은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는 사회와 격리된 토굴 속에서 살아야 했지요. 거리에 나타난 그들에게 날아온 돌팔매질은 우리 땅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기에다 어린아이를 붙잡아다 장기를 어쩐다는 둥 끔찍한 헛소문까지 나돌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함께 병들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간호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모두가 기피하는 그런 환자들만 격리 수용된 곳을 찾아 따뜻한 손길을 뻗은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벌써 반세기도 전 일입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간호학교를 나온 외국인 간호사 두 사람이 전남 고흥군 도양읍 국립소록도병원을 찾아왔습니다.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에 1962년과 1966년 구호단체의 파견으로 잇달아 섬에 도착한 것입니다. 

두 사람은 한센병 환자들의 환부에 맨손으로 약을 발라주며 돌보아주었습니다. 또 고국 오스트리아에 도움을 청해 섬에 정신병동, 결핵병동, 맹인병동, 목욕탕, 한센인 자녀 영아원을 짓고, 의약품을 조달하며 환자들의 치유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쳤습니다. 퇴원한 한센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까지 감당했습니다. 파견 기간이 끝나고도 자원봉사로 한센인들의 손발이 되어 40년 세월을 보내는 동안 꽃다운 나이의 그들도 호호 할머니가 되었지요.

마가렛 피사렉(Margaritha Pissarek, 1935.6.9~2023.9.29)은 ‘백수선’, 마리안느 슈퇴거(Marianne Stöger, 1934.4.24~)는 ‘고지선’이라는 예쁜 우리나라 이름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로부터는 늘 ‘작은할매’ ‘큰할매’로 불리는 걸 더 좋아했답니다. 뒤늦게 선행이 알려져 국민포장(1972년), 국민훈장 모란장(1996년), 나중엔 명예국민증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늘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겸양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합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간호사의 봉사정신을 기리는 기념관에
추도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어느 날 섬 주민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두 사람이 편지 한 장 달랑 남겨 놓고 떠나고 만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할 수 없다.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우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용서를 빈다.” 편지에는 그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 작별 인사도 없이 섬을 떠나버린 두 천사 때문에 주민들은 일손을 놓고 성당에 모여 앉아 감사와 슬픔의 착잡한 마음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소록도에서의 봉사를 마치고 2005년 11월 조용히 귀국해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가렛 간호사가 지난 8월 29일 인스브루크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향년 88세. 마지막 남은 시신도 인스브루크 의대에 기증하고 떠났습니다. 장례식은 지난 7일 인스브루크의 회팅 교구 성당에서 열렸습니다. 장례식엔 동료 마리안느(89) 간호사도 참석해 소록도 주민들의 안부를 물었다고 합니다.

생의 황금기에 가장 낮은 자, 가장 고통받는 자에게로 다가와 평생을 바쳐 거룩한 봉사와 헌신으로 지고의 선을 베풀고 떠난 소록도 천사에게 머리 숙여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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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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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156.XXX.XXX.20)
중학교 시절 소록도엘 갔었죠. 환자위문 공연을 하였습니다. 참 먼 곳이었지만 무척 아름다운 섬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돌아오는 길엔 마음이 엄청 무거웠습니다. 소록도 섬을 돌면서 나환자들을 만나고 공연에서도 강당에 모인 모든 환자들을 보며 무척 마음이 시렸으니까요.
훌륭하신 수녀님들 봉사자들께 감사하며 떠나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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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1 20: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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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을 (112.XXX.XXX.158)
정말 천사가 맞습니다. 영면하심은 아마도 하느님께 이 세상사 보고 드리러 가지 않으셨을까요! 가슴 뭉클합니다.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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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14:2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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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24.XXX.XXX.108)
네, 그렇게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감추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두 분 은퇴 후 어려운 가운데서도 너무 사양만 하셔서 오히려 주변의 마음을 무겁고 아프게 하신다네요. 남은 한 분이라도 부디 편히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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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1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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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 (203.XXX.XXX.156)
참으로 가슴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저도 소록도 천사님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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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11: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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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24.XXX.XXX.108)
소록도 할매 천사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었으면서도 돌아가신 다음에야 글로 쓰게 되니 오히려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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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1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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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근 (220.XXX.XXX.179)
이분들의 고귀한 뜻에 감사드리고 빚을 갚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수고하시는 간호사들도 여럿 있습니다. 제주도 출신의 백영심 간호사도 말라위에서 교육봉사를 하고 있는데, 20여 년의 노력 끝에 드디어 말라위 최초의 기숙사를 겸비한 여자고등학교를 세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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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1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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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24.XXX.XXX.108)
감사한 말씀!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도 두 분의 봉사정신을 기리며 설립되어 두 분과 같은 사랑을 베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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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16: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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