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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선배의 향기로운 일생
임종건 2023년 10월 13일 (금) 00:00:06

지난 여름의 무더위는 혹심했습니다. 특히 노약자들에겐 견디기 어려운 무더위였죠. 그 무더위가 절정이던 8월, 보름 사이에 평소 존경해온 두 분의 언론계 선배가 세상을 떴습니다. 두 분은 저와는 서울 은평구의 한 동네에서 살았고, 두 분이 속해 있는 각기 다른 모임의 회원으로 가끔 만나는 사이였으며, 두 분 선배 또한 개인적 교분이 오래였습니다.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더니 나이가 12세 어리신 '월간 디플로머시(Diplomacy)' 창간 발행인 임덕규 회장이 17일 87세에 가셨습니다. 저와 통화를 할 적이면 빠짐없이 '황 국장님' 안부를 물으시던 분이었습니다. AP통신 등의 한국특파원을 역임한 언론인이자 ‘100세의 칼럼니스트’로 불렸던 황경춘 선배는 31일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습니다.

임 회장은 신아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정계로 진출해 1981년 11대 국회의원(충남 논산)을 지냈습니다. 이승만 정부 시절 임병직 외무부 장관의 비서관 출신으로 외교에 관심을 두었던 임 회장은 1975년 영문의 외교 전문 월간지 디플로머시를 창간했습니다.

한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디플로머시의 성가도 올라갔습니다. 생전의 임 회장은 “한국을 찾는 외국의 장관조차 귀했던 나라에서 국가원수들의 방문이 줄을 잇게 되자 디플로머시는 커버스토리 걱정을 덜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방한 외국 국가원수를 인터뷰하고, 더러는 외국정부의 초청으로 방문해 국가원수를 인터뷰한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올렸습니다. 그렇게 만난 외국의 국가원수가 500명쯤 됐는데, 이같은 자신의 경험을 국익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고자 늘 생각하는 분이었습니다.

*2017년 백소회 회장으로 활약하던 시절의 고 임덕규 회장(앞줄 오른 쪽에서 다섯번째).
임 회장 좌우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앉아있다. 뒷줄 왼쪽에서 다섯번 째가 필자.

1992년 충청도 출신 출향인사들의 사랑방인 '백소회(百笑會)'를 만들며 ‘백제의 미소’를 줄인 이름이라고 풀이했을 때 기막힌 작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달막한 체구에 늘 미소를 머금은 동자승을 닮은 그의 얼굴은 ‘백제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충남 서산 가야산의 마애불상과 그의 고향 논산 은진 미륵상과도 닮은꼴이었죠.

30년 넘게 백소회를 이끄시면서 공직자, 국회의원, 기업인, 언론계, 학계, 문화계 인사들을 매달 한 번씩 새벽 조찬에 불러서 세상사와 개인사를 나누게 하였지요. 회원들의 나라사랑, 고향발전을 위한 좋은 생각과 활동에 박수로 응원을 했지요. 국회에서 삿대질하던 여야 의원들도 백소회에 와서는 고향에 온 듯이 손을 맞잡고 웃었지요.

인쇄매체가 사양길로 들어선 이후 경영난을 겪고 있는 디플로머시를 살리기 위한 노심초사가 임 회장의 건강을 쇠잔하게 했고, 백소회 또한 활력을 잃었습니다. 그가 남긴 선한 유산인 디플로머시와 백소회를 되살릴 지혜가 아쉽습니다. 

황경춘 선배는 자유칼럼에서 15년간 글을 쓰면서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과 교훈을 준 분이죠. 그분의 파란만장하면서도 빛나는 일생에 대해서는 자유칼럼의 두 분이 칼럼을 통해 아름다운 글로 소개를 했기에 제가 덧붙일 것은 없습니다.

다만 그분과 함께했던 몇몇 순간 중 나의 뇌리에 남겨진 기억들을 되살려 그분의 삶을 기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분은 지병이 깊어지기 전까지는 자유칼럼이 마련하는 식사모임이나 봄 가을에 떠나던 가족동반 여행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3년 전 지병이 깊어진 이후로도 황 선배는 매번 행사 참여의사를 알려와 회원들을 설레게 했다가는 출발 직전에 가족들의 만류로 못 오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곤 했습니다. 젊은 후배들과 어울리고자 했던 그분의 안타까운 열망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모두가 쾌유를 빌며 응원의 박수를 보냈던 일이 기억납니다.

병세가 위중해지면서 칼럼을 그만 쓰겠다고 알려왔을 때도 건강을 회복하시어 100세를 넘기고도 글을 쓰시는 김형석 교수님과 100세 칼럼니스트의 쌍벽이 되시기를 빌었지요. 우리의 마음을 아시기라도 한 듯이 올들어서도 몇차례 글을 쓰시겠다는 전갈을 보내와 순서를 조정하며 기대에 부풀었지만 끝내 글을 쓰지는 못하셨지요.  

90세를 넘겼을 무렵 강화도 여행을 갔을 때 좁은 개울을 건너뛰다 넘어진 적이 있었죠. 후배들이 건너뛰니까 같이 뛰신 거죠. “괜찮으시냐?”니까 “까불다 그랬네.”라며 소년처럼 웃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뒤로는 일행의 앞에서 걷거나 뛰는 모습을 보진 못했죠.

황 선배는 2014년 89세 되던 해 1월의 칼럼을 통해 “자유칼럼의 저녁모임에서 ‘저렇게 허약한 아내를 두고 혼자 먼저 갈 수는 없다’라고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했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사실 “90 노인이 10여 세 어린 아내보다 오래 살겠다니?”라며 좌중은 순간 의아하게 생각했었지요. 

 
*10여년 전 마르코글방의 경기 양평 세미원 여행 때 '미래로 부치는 편지쓰기' 우체국에서 편지를 쓰는
고 황경춘 씨 부부.(신우재 전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 제공).  

위암 수술에 담석수술 골절상 저혈압 관절염 등 반려자의 병력을 듣고 나서 이해는 했지만, 병약한 반려자는 그로부터 4년 뒤 세상을 떠나 황 선배의 1차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로부터 5년 뒤 황 선배는 마침내 아내의 뒤를 따라 자신의 진정한 소원을 이룬 셈입니다. 

황 선배와 같이 했던 모임 중에 마르코글방이 있습니다. 그 글방에서 10여 년 전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 세미원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미래로 부치는 편지 쓰기’ 우체국에서 두 분이 앉아 편지를 쓰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때 두 분은 그 편지에 무슨 사연을 썼을지 새삼 궁금해집니다. "우리 10년 쯤 지나 하늘에서 만납시다"라고 쓰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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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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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향 (222.XXX.XXX.55)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건강히 좋은 글 많이 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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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4 12:11:48
0 0
임종건 (211.XXX.XXX.15)
공감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23-10-14 16:54:4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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