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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접스러운 사회, 어디로 가나
이성낙 2023년 09월 27일 (수) 00:13:54

오래전 독일에서 과거 '나치 독일'이라는 주제로 토론의 장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온 국민이 나치의 깃발 아래 그렇게도 질서 정연하게 움직일 수 있었냐는 게 질문의 핵심이었습니다. 독일인이 가장 부끄러워하며 가슴 아파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교조적이고 독단적인 집단 사고를 이끄는 도그마(Dogma)의 무서움을 보았다고도 하였습니다. 

   
  Francis Picabia(French, 1879~1953)
he Adoration of the Calf(1941~1942)
Oil on canvas 106 x 76.2cm
MoMA, New York
 

필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에서 프랑스 화가 프란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 1879~1953)의 작품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작품을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여러 화집에서만 감상했던 작품을 미술관에서 실물로 만나니 옛 친구를 우연히 조우한 듯 기뻤습니다.

피카비아는 프랑스 화단에서 ‘반(反)문명’, ‘반(反)합리주의’ 예술운동인 다다이즘(dadaism)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동안 우리가 흔히 접한 다다이즘과는 거리가 있는 이 작품을 보자니 생소하기까지 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송아지에 대한 경배(The Adoration of the Calf)’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1941~1942년 당시 나치 점령 치하에 있던 프랑스의 시대적 저항 정신이 강하게 스며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적지 않은 나치 동조자, 또는 배신자(Collaborateur)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작품이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요컨대 문화예술의 나라 프랑스와 파리가 나치 독일 치하에서 굴욕적인 시기를 보내던 때 프랑스 화단을 풍미한 반(反)나치 운동의 표본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프랑스, 특히 파리 지역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수많은 아틀리에가 반나치 운동의 지하 점조직으로 역사적 족적을 남긴 것은 훗날 파리지앵의 긍지로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당시 유명한 조각가 아리스티드 마욜(Aristide Maillol, 1861~1944)의 나이 어린 모델 디나 비르니(Dina Vierny, 1919~2009)가 있었습니다. 루마니아태생인 디나 비르니는 15세의 나이[Dina was only 15, Maillol was 73.(Menzies 2017)]에 파리화단에서 모델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프랑스가 나치독일 점령군 치하에 놓이자(1940~1945), 파리에 산재한 수많은 아틀리에를 돌아다니며 많은 정보를 주고받는 메신저 역활을 하였습니다.  그 유명한 레지스탕스(Résistance)의 일원으로 활약한 것입니다.

훗날 비르니 여사는 뮤제 마욜(Musee Maillol)을 설립했습니다. 뮤제 마욜은 조각가 아리스티드 마욜이 그녀를 모델로 작업한 작품을 주로 전시하는 미술관입니다. 문화예술의 도시 파리에 또 다른 아름다운 공간이 탄생한 것입니다.
1995년의 개관 행사에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1932~2019, 재임 1995~2007)  프랑스 대통령 이 직접 참석했다는 사실은 비르니 여사가 프랑스 문화계에서 얼마나 숭앙받는 인사인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필자는 1900년대 말 그 미술관에서 비르니 여사를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귀중한 추억 중 하나입니다.

   
 

왼쪽 : 디나 비르니와 아리스티드 마욜의 정겨운 모습 (사진: Google 캡처)
오른쪽 : 뮤제 마욜 내부 (사진: Google 캡쳐)

 

그런데 요즘 오래전에 본 화가 피카비아 작품 ‘송아지에 대한 경배’가 자주 필자의 뇌리를 스치곤 합니다. 작금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허접스러운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새로운 시사용어 ‘팬덤(fandom)’ 정치판을 지켜보는 마음은 무겁기까지 합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치졸(稚拙)해졌는지 안타깝습니다. 이 허접스러움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요? 착잡한 심정 금할 길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의 소설 《동물 농장(Animal Farm》(1945)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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