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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와 가짜
박종진 2023년 09월 11일 (월) 00:31:28

십 년도 더 된 일입니다. 저는 평소와 같이 연구소를 열었고 펜을 고치러 오신 분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여느 때처럼 수리를 하던 중, 밖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젊은 남녀 두 명의 목소리 같았는데 하는 말을 들어보니, “진짜라니까”, “아냐, 가짜야”라며 다투는 듯 했습니다. 잠시후 순서가 되어 이 사람들이 들어 왔고, 남성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이거 최근에 해외 구매한 것인데, 제가 잘 몰라서요.” 거의 동시에 저는 옆에 있던 여성을 쳐다봤는데, 눈빛은 가짜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정품 여부를 떠나 이 만년필은 몽블랑이었고, 게다가 1999년에 나온 특별한 녀석이었습니다.  

저는 이 상황이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곧 개구쟁이 같은 마음이 올라왔고, 잠깐 놀려 주기로 했습니다. “큰일 났는데요” 그리고, “이것은...” 하며 뜸을 들이자, 여성의 레이저 같은 눈빛이 그 남성한테 딱 꽂혔습니다. 더 시간을 끌고 싶었지만, 저는 이만 그 남성을 구해주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귀한 것이고 치른 값보다 최소 2배는 비쌀 겁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해외구매를 처음 하다시피 했는데, 자기가 아는 몽블랑과 도금도 다르고 펜촉에 새겨진 문양도 달라서 의심을 품게 되어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문 밖으로 나가고 곧 “그것 봐” 잔뜩 힘이 들어간 목소리가 들렸고, 이어 “피~자기도 몰랐으면서” 하는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진짜 가짜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4년 전이었습니다. 일 년에 몇 번 만나는 교수님이 있습니다. 제가 만년필을 좋아한다고 하니, 어느 날 이 교수님이 제게 만년필을 하나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펜은 일반인들이 구분하기 어려운 정교한 가짜였습니다. 가짜를 찾아내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첫 번째는 클립과 밴드의 도금이 다릅니다. 가령 몽블랑의 경우는 백금의 한 종류인 플래티넘으로 도금을 하는데, 가짜는 크롬 도금을 합니다. 플래티넘 도금은 은보다 광택이 더 있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하얀빛이 도는 반면 크롬 도금일 경우엔 차가운 푸른빛이 돕니다. 이것만 알아도 진짜를 100% 구별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가짜는 절대로 비싼 도금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론 잡아보면 압니다. 손으로 잡았을 때 기분 좋게 달라붙는 느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파커의 최상위 라인인 듀오폴드는 표면을 호두 껍데기로 마무리 하는 공정이 있는데, 이는 섬세하고 정교한 단계이기 때문에 가짜는 흉내 낼 수 없는 특유의 느낌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뭐니뭐니 해도 펜촉입니다. 진짜는 펜촉의 각인이 또렷하고 확실합니다. 가짜는 살짝 뭉개진 느낌이 들고 흐릿합니다. 그리고 전문적인 영역인데, 펜 끝, 즉 펜 포인트(Pen Point)가 펜 브랜드마다 특유의 모양이 있습니다. 물론 개체 간 조금씩의 차이는 발생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각 회사마다 삼고 있는 이상적인 펜 포인트 모양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알리 없는 교수님은 “제자가 선물한 것인데 아주 잘 써집니다. 단지 며칠 있다가 쓰면 잘 나오지 않는데 왜 그런 거예요.” 저는 “교수님, 가짜입니다.” 라는 말이 입안에서 계속해서 맴돌았지만, 제자의 선물이란 말에 차마 말씀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펜을 수리해서 드렸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서 마침내 지난달이 되었고 그 펜을 또 만났습니다. 교수님은 “몇 년 전에 고쳐주셔서 잘 썼는데, 이 녀석이 요즘에 또 잘 나오지 않아요.”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교수님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교수님, 이 몽블랑은 가짜입니다.” 

“그렇군요, 매일 매일 써 주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진짜 몽블랑보다 이 녀석이 더 소중합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정적이 흘렀습니다. 

결론입니다. 우리 같은 만년필인들에겐 진짜와 가짜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펜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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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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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훈 (1.XXX.XXX.196)
박종진 소장님, 좋은 글, 늘 새롭게 깨닫고 잘 배우고 있습니다.
여쭙고 싶은 숙제가 하나 있군요.
오래전,1982년, 선친께 회갑 기념으로 파커 만년필(딱 소리나면서 뚜껑이 닫히는 은색 그물망 체크 무늬)을 명동 신세계 백화점에서 사서 드렸습니다. 그런데, 만년필 글쓰기가 취미이자 명필이신 부친께서 왠일인지 이 귀한 만년필을 사용하시지 않더군요.
십년후 부친 작고하시고 유품정리 하다가 고운 손수건에 싸여있는 이 만년필을 보았습니다. 한두번 써보신거 같은데 전혀 훼손도 없고 신품 그대로 더군요. 잉크를 넣고 써보았지요. 잉크가 제대로 나오지를 않아요. 파커 대리점에 갖다주고 수리를 맡겼어도 전혀 나아지지 않더군요. 제게는 하늘 같은 아버지께 드린 회갑선물이 이모양이었다니, 기가 막히더군요.
선친께서는 아들이 송구해 할까봐,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간직만하고 계시다가 작고하셨던 것이지요. 가짜를 구입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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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10: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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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진짜가 맞을 겁니다. 수리가 잘 못 되었을 것 같습니다. 아마 Parker75 일텐데, 이 펜이 잘 못 만지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 아버님께서 자식처럼 아끼신 마음에 쓰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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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15:5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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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 (1.XXX.XXX.196)
바쁘실 텐데도 신속하게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 세월, 제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궁금증이 조금풀리긴 합니다만,
그 아픈 추억은 저에게 단순히 만년필만의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무생물이지만, 생명처럼 작동하는 시계 만년필 등등의 소지품들은 삶의 사이클과 연계되는 에너지(기)의 흐름 속에 있다고 봅니다. 물론, 다소 과대한 망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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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4 20: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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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언젠가 그 75를 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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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5 03: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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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 (122.XXX.XXX.173)
세월이 흘러 애착과 추억이 깃들면 진짜와 가짜조차 의미가 옅어진다....
맞습니다
아침에 반가운 글 읽고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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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07: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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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그래서 정이 무서운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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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09: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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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펠리칸 (175.XXX.XXX.32)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펜을 사랑하는 마음"이 감명 깊었습니다.
진짜와 가짜는 보는 시점의 차이라 생각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펜은 가까이 자주 쓰는 것이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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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1 18: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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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이웃이 사촌인 것처럼, 자주 쓰는 것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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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1 20: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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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115.XXX.XXX.142)
만년필을 많이 아시다니 여쭙니다. 대나무로 만든 만년필이 있는지요?

대나무 만년피이라니 궁금증과 호기심이 동시에 들었습니ㅏㄷ.

펜촉이 대나무로 되어 있을 것 같고, 글씨 촉감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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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1 13: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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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대나무로 뚜껑과 몸통이 만들어진 것이 있습니다. 펜촉이 대나무로 된 것도 본 적은 있습니다. 필기감은 글쎄 별로 좋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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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1 18: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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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115.XXX.XXX.142)
대나무로 된 만년필을 구입할 수 있나요? 있다면 어떻게 구입할수 있는지도 알려주시면 고맙게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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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14: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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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https://www.ebay.com/itm/184066012494?mkcid=16&mkevt=1&mkrid=711-127632-2357-0&ssspo=X4ifQ1mjRP-&sssrc=4429486&ssuid=498PAfMyRqC&var=&widget_ver=artemis&media=MORE

링크된 것이 대마무 펜이라고 나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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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9 07: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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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rie (211.XXX.XXX.212)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채 서랍 속에 잠들어있기만 한 진짜보다 매일같이 사랑받고 아낌받는 가짜가 더 소중하게 여겨질 때가 이런 때인가봅니다. 좋은 펜을 어렵사리 구하고도 아까워서, 고장날까봐 등등을 이유로 모셔놓기만 한 제가 부끄러워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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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1 10:5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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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다음 세대를 위해서 이런 분도 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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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1 18: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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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106.XXX.XXX.40)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능력과 그 모두를 적절히 품을 수 있는 마음을 동시에 갖추고 있으면 참 좋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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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1 09: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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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맞습니다. 이상적인 만년필인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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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1 18: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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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석 (220.XXX.XXX.162)
핵심을 찾아내는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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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1 09: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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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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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1 18: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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