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오마리 구름따라
     
그리움 지우기(보스턴에서)
오마리 2023년 08월 24일 (목) 01:08:03

팔월 초인 이곳 세인트 존의 날씨는 가을 같습니다. 마치 미국 북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봄 가을 날씨처럼 안개가 자욱하고 서늘한 날입니다.  문득 따뜻한 커피 한 잔에 비지스(Bee Gees)의 서정적인 팝송이 듣고 싶어지는데요. 1960~1970년대, 그 시대를 풍미하던 대중 음악 중에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노래들이 많았지요. 히피문화의 배경, 히피세대의 감성으로 탄생한 팝송, 스캇 매켄지(Scott Mckenzie)의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Be Sure to Wear Flowers in Your Hair)’,  비지스의  ‘매사추세츠(Messachusettes)’가 대표적인 노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보스턴 시내의  교회

그 당시 샌프란시스코의 골든게이트 공원은 반전과 자유를 기치로 삼고 기성질서에 반기를 든 히피들이 무리를 지어 거주하던 곳으로 그들에게는 낙원 같은 곳이었습니다. 동양에서 온 신참내기 내게는 무척 생소한 광경이었지만 공원이 아름다워 자주 들렀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그리워하는 나는 그 시대의 팝송을 들을 때마다 향수에 젖어, 언젠가 매사추세츠에 가야지 하곤 생각만 하다가 50년 세월이 흘러가버린 것입니다. 

어쨌든 나는 이제야 반세기 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그곳을 찾기로 했습니다. 미국인이면 한 번은 필수로 방문해야 한다는 미국 역사의 시작 뉴잉글랜드 지방, 북동부를 살아보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어떻게 미국을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오랜 숙제처럼 남아 있어 미국 건국의 고장으로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다행히 내 동네에서 뉴 잉글랜드 지방까지는 운전거리 6시간이면 닿는 곳이어서 결정도 빨랐지요.  

   
Government Center 앞 노상 휴식공간

역사가 유구한 매사추세츠 주도인 보스턴에서 첫 번째 놀랐던 것은 항구도시인 보스턴이 전혀 항구도시 같지 않은 친환경 도시라는 점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여행자나 시민 모두에게 쾌적함을 주는, 사람이 우선인 도시환경이었습니다. 내가 살았던, 이민자들의 제2 고향이 되어버린 캘리포니아주 도시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과는 전혀 다른 도시로, 유럽의 구도시들을 연상하게 하는 역사적인 건축물들의 디테일과 색감이 아름다워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중구난방식, 시대와 건축양식의 구분없이 지어진 오래된 건축물들이 도시 곳곳에 있지만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건축물들은 전혀 생뚱하지 않고 서로 조화롭게 서있어 뛰어난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공간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빌딩과 빌딩 사이의 여유, 오밀조밀하면서도 예쁘고 운치있는 골목과 거리, 깨끗한 주변, 이 도시를 품고  있는 찰스 강(Charles river)과 대서양 바다가 주는 풍광이 영국 런던처럼 자유롭되 품격이 있어 그 즐거움이 더했습니다. 어쩌면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이 의외로 편안하게 느껴졌던 것은 매사추세츠주의 닉네임 (The Spirit of America)처럼 모두가 자유롭게 활보하고 쉬기도 하면서, 어느 곳에서라도 휴식을 할 수 있는 도시의 공간적 여유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보스턴이 있는 매사추세츠주를 포함한 뉴잉글랜드 지방은 19세기까지 미국이란 국가의 교육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였고 현재까지도 위대한 유산은 교육일 것입니다. 고등교육이 세계적인 이 지방은 미국 최초의 대학 하버드를 포함하여 많은 훌륭한 대학들이 있으며, 현재 보스턴은 5,000개의 스타트업 기업을 보유한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도시라고 합니다. 보수적일 것 같은 이 매사추세츠주와 보스턴은 사실 민주당의 영향력이 크며  Gay Parade 행사를 할 정도로 진보적 성향이 강한 곳,  liberal state로 알려져 있어 그 점도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히피문화의 성지, 진보문화 정치의 아이콘 도시, 관용의 도시였던 샌프란시스코의 비극적 몰락은 어떻게 시작되고 있는지 돌아보려고 합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대마초의 온상이었던 히피와 동성애자를 최초로 포용했던 낭만적인 곳 샌프란시스코는 노숙자뿐만 아니라 범죄와 마약의 폐해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필라델피아처럼 마약 중독으로 인한 사망률도 높고 여기저기 노상강도와 절도는 끊임없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특히 중심가 유니언 스퀘어의 고급 백화점  ‘노드 스트롬’,  ‘홀푸드’  같은 중산층 슈퍼마켓도 문을 닫는다는 소식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1,000불 미만의 절도는 형사 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법까지 만든 관용주의가 세계 3대 미항인 이 도시를 범죄가 만연하는, 사람이 안락하게 살 수 없는 도시로 변질되게 하지 않았나 싶어 우려를 멈출 수 없습니다. 과연 진보적 가치를 고수해왔던 이 도시의 문제는 무엇인지 의문입니다. 일상의 평화를 해치는 이런 법안을 만든 것이 진보적 마인드일까요?

 
  코넷티컷 주도 하트포드 다운타운

샌프란시스코뿐만 아니라 지금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타 주로의 엑소도스 현상(탈 캘리포니아)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 이글을 쓰고 있던 시간에 LA에서 날아온 뉴스는 더욱 쇼킹합니다.  '노드스트롬'  백화점에 30여명의 떼강도가 들어 약 1억원 어치의 물품을 털어 달아났다고 합니다. 미국 북동부는 캘리포니아주와 매우 대조적이었습니다. 4개 주( 메인, 뉴햄프셔, 매사추세츠, 코네티컷)를 관통하거나 가로지르는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를 9일간 매일 운전하면서 감탄했던 것은 일사불란하게 단 한 번도 불법적인 운전, 끼어들기 같은 거친 운전자를 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캘리포니아주, 온타리오주조차도 고속도와 거리에서 일상으로 볼 수 있는 거친 운전자들을 그곳 고속도에서는 보지 못했는데 서부와 북동부가 확연하게 비교되는 광경이었습니다. 특히 메인주에서 코네티컷주까지 얽히고설킨 동북부 고속도로 변의 수백 년 수령의 방풍나무들은 운전 내내 감탄을 안 할 수 없었지요. 비록 북동부에는 주도를 포함해 쇠락해가는 마을들이 많아 집값은 싸지만 어디를 가든 청결한 거리와 질서의식, 준법 의식은 미국이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통과 자존감, 어쩌면 이것은 미국의 저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과 4년 전에 샌프란시스코를 다녀온 내게 불행한 샌프란시스코의 소식은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젊은 날을 보냈던 그곳이 어디까지 몰락해 가려는지 이 비극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거 같습니다. 우리는 미래세대에게 어떤 유산을 남겨줄 것인가,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양극화 현상이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약자와 없는 자에 대한 배려와 책임은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모두가 지고 가야할 의무입니다. 그러나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인권을 우선하는 왜곡된 인권, 다수를 무시하고 소수만 배려하는 포퓰리즘 정책, 지나친 관용과 온정주의 정책은 오히려 무질서와 치안의 부재를 불러 사회를 피폐하게 할 것임은 자명합니다. 그러면 그 후유증(짐)은 미래세대가 지고 가야만 하는 무서운 업이 되는 거지요. 전 세대의 현명하지 못한 판단과 선택으로 희망이 없는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미래세대는 매일매일 시지프스의 무거운 바위(좌절)를 지고 산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니까요.    

자유칼럼의 글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5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Helen (207.XXX.XXX.201)
소중하고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글쓰기는 가장 험난한 숙제중의 하나인데 힘드신 가운데도 또 이렇게 좋은 글을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작년 첫번째 그리움 지우기에 이어 이번은 두번째 시리즈인가요? 앞으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을 지우셔야 하는지 시즌 몇번째까지 이어질지 다음 시리즈는 또 어떤 시나리오가 탄생될지 연속극처럼 벌써 기다려집니다(물론 재촉하는건 아닙니다). 저에게는 여행은 하면 할수록 그리움이 지워지는게 아니라 새로운 그리움이 계속 탄생되는거같습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 어딘가에 남겨둔 제 발자국에 대한 그리움이랄까요? 선생님덕분에 10여년전 방문했던 언젠가 꼭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추억이 어제의 일처럼 눈앞에 스크린이 지나가네요. 한여름에도 쌀쌀해서 pier19에서 따뜻한 조개스프로 아침추위를 달랬던 기억과 멀리 수많은 바다사자들의 한가로운 여유와 광장에서 보여준 라이브뮤직 아치형의 아주멋진 아트센터 금문교 기품있는 빌딩 가옥들 등등 저에겐 양반도시(?) 아름다운 기억만 남아있는데 그런 품격있는도시가 범죄 마약으로 전락됐다니 참으로 가슴이 아프네요. 그래도 그리움을 지우기위해 다시 그곳을 방문하렵니다. 건강 잘 돌보시고 기운 내셔서 좋은글 기다리겠습니다.
답변달기
2023-08-25 12:14:21
0 0
정*경 (219.XXX.XXX.61)
정말 오랫만에 소식과 글을 읽으니 정말 반갑네요
그동안 많이 편찮으셨는제
이제 직접 운전 하시고 여행 하시고
이렇게 글을 써 주시니 참으로 반갑네요
미국에 조카가 보스턴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렇게 살기 좋은 곳인지는 몰랐네요
마리님이 상세하게 써 주시니
미국에 사는 형제 지간이 어떤 도시에 살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네요
답변달기
2023-08-25 08:50:39
0 0
오마리 (156.XXX.XXX.20)
운전은 제가 한 게 아니고요. 장시간 운전 어렵죠. 앞좌석에 앉아 구경만 했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23-08-25 10:30:03
0 0
박경수 (125.XXX.XXX.230)
선생님, 오랜만에 글을 쓰신 걸 보니
이제 건강상태가 호전된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이국의 자유와 낭만, 원로의 경험과 교훈이 가득한
멋진 글을 또 읽게 되어 마음 한 편이 흐뭇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이번에는 선생님처럼 뉴브런즈윅의
세인트 존에서 매사추세츠로 드라이브를 하고 싶네요!
위니펙과 밴쿠버 등 중서부 도시만 겨우 맛 본 저로서는
캐나다 동부의 작고 유유자적한 곳에서 살고 싶기도 하고요.
한국은 처서가 지났는데 아직도 덥습니다.
선생님, 혹시 이 여름 그늘에 있으면 왜 행복한지 아시나요?
바로 '해 피하기' 때문입니다.
늘 행복하세요 ㅎㅎ 피천득의 수필처럼 좋은 글 기다리겠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답변달기
2023-08-24 10:54:48
0 0
오마리 (156.XXX.XXX.20)
주신 댓글 감사합니다.
모두 유례 없는 폭염, 비, 산불 등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여기 캐나다 동부, 대서양변도 화창해야할 6~7월에
비가 엄청 거의 매일 내려 해를 보는 날이 며칠 안 되었답니다. 한국에 계시는 분들은 더 고생스러우셨겠지요.
이제야 제 계절인 듯 서늘한 바람 뜨거운 태양이 기분 좋은 날이지요.

제가 사는 도시엔 한국 식품점이 없어 불편하답니다. 왕복 3시간 차로 달려야 식품을 살 수 있거든요.
병원도 큰 문제이지요. 의사가 없어요. 이 시골은 더 하고요
그래도 자유롭고 소박한 동부 특유의 자연 환경에 만족하며 살지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쓸 수 있을 때까지는 졸필이지만 쓰려고 합니다.
오늘 주신 댓글이 용기를 주십니다.
다시 또 감사드려요
답변달기
2023-08-25 03:07:13
1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