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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살어리랏다 (3)
정달호 2023년 08월 11일 (금) 00:00:17

제주가 앞서가면 전국이 따라 하는 게 더러 있는데 주로 자연을 활용하여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들입니다. 요즘은 '평화의 섬' 제주를 '힐링의 섬'이라고도 하죠. 천혜의 자연과 맑은 공기 자체가 힐링 효과를 가져온다고 하는 말일 겁니다. 명상과 힐링의 길로 알려진 제주 올레길을 본떠서 전국의 다른 지자체들이 산 속에 둘레길을 만들었습니다. 거꾸로 제주도가 내지(內地)의 둘레길을 본떠서 한라산 속살을 파고드는 둘레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올레길은 규슈, 스위스, 몽골 등지로도 퍼져나가 해외에서도 한때 '올레길' 만들기 바람이 일었습니다. 

실은 올레길도 아이디어는 해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제주 올레길을 창시한 서명숙 (사)올레 이사장에 따르면 피레네 산맥을 가로지르는 산티아고 길(Camino de Santiago)에서 영감을 얻어 올레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죽도록 고생해서 그 길을 다 걷고 나서 한 영국 친구와 작별 인사를 하는 순간 번뜩 영감이 스쳐갔대죠. 그러고 나서 바로 고향 서귀포로 돌아와 제주 바닷가를 걷는 올레길을 시작한 것이죠. 우리는 바깥에서 배워와 우리 것으로 재창조하는 데에 이골이 나 있는 민족인가 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도 남의 것을 빌려와 우리 것으로 만드는 우리 민족의 남다른 재능을 백 퍼센트 활용한 결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제주 발명품 또 하나가 전국으로 퍼져나갈 태세입니다. 이번에는 황토광장입니다. 서귀포 신시가지 숨골공원의 저류지(貯留池)를 메워 그 위에 황톳길을 조성한 것인데 웬만한 초등학교 운동장보다 더 넓습니다. 한 바퀴 돌면 4백 미터는 족히 되니 그 주변을 돌기만 해도 주민들의 건강에 도움이 될 그런 곳에 붉은 황토까지 깔아놓았으니 여간 명물(名物)이 아닙니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아 지난 7월 3일 개장 이래 벌써 여남은 번은 다녀온 것 같습니다. 더위를 피해 새벽이나 저녁에 가보면 현지 주민들뿐 아니라 서울 등 타 지역에서 온 분들도 눈에 띕니다. 이들은 자기 지역에도 이런 것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하고 말을 주고받더라고요.

황토광장, 황톳길은 세계적인 맨발걷기 유행과 맞닿아 있습니다. 맨발 바닥에 닿는 황토의 성분을 흡수하며 걸음으로써 심신을 단련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 효능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귀포의 황토어싱(earthing)광장을 소개하는 커다란 현수막에는 1. 불면증 완화,  2. 근육량 강화, 3. 혈액순환 개선, 4. 골다공증 예방, 5. 우울증 개선 등 다섯 가지를 구체적인 건강 효과로 적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일단 수면 개선 효과는 확실해 보입니다. 뻑뻑한 흙길을 걸으니 근육 강화는 당연하고, 혈액순환도 분명 따라올 것입니다. 앞의 것들이 맞다면 나머지 두 개 효과에도 자연히 믿음이 가지 않을 수 없겠지요. 

한번은 황톳길을 걷다가 서귀포시청 녹지과 담당 공무원을 만났습니다. 장마 후 염천에 흙이 너무 메말라서 스프링클러 장치 가동을 보살피는 중이었습니다. 저는 그 공무원을 통해 서귀포시 칭찬을 융숭하게 해주었는데 여기 들인 비용 1억4천만 원으로 한 달 만에 그 10배 이상으로 주민의 건강.행복 증진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본다 하였죠. 그러고 보니 서귀포시는 여러모로 행정이 잘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로도 잘 정비되고 있으며 공원, 운동장 등 공공시설도 충분히 조성돼 있는 것으로 봅니다. 도처에 있는 무료 주차 시설, 관내 도서관 운영 시스템 등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1. 새벽의 황토광장 / 2. 왼편 위쪽으로 월드컵경기장 / 3. 저 뒤가 고근산 오름 /4. 맨발걷기 효능의 원리  

이처럼 제주도는 '슬로우 라이프'를 원하는 사람에게 더욱 인기가 많습니다. 제주도라는 섬이 땅은 넓은데 인총(人叢)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섬 전체가 한라산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백록담이 있는 산 정상으로부터 사방 완만하게 바다에 이르는 능선과 군데군데 보이는 바닷가 평지가 바로 제주도인 것이죠. 그 사이 곳곳에 370여 오름들이 멋스럽게 퍼져 있으니 또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제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올레길을 걷지만 제주 사람들은 주로 오름을 오릅니다. 동네마다 오름 동호회/클럽들이 여럿 있어 자연스럽게 동네 사람들 간 친목도 되고 운동도 되는 셈이죠.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지 않으면서 살기에 좋은 곳이라서 그런지 제주의 출산율도 전국 최상위 그룹에 속하죠. 기회를 찾아 내지로 나가는 젊은층의 수가 느는 바람에 요즘 출산율이 다소 떨어지고 있는 추세라곤 하지만 아파트나 골목길 같은 데서 세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젊은 엄마들을 자주 볼 수 있답니다. 한편 자영업을 하는 3040 젊은이들과 여러 부류의 은퇴자들이 삶의 질을 찾아 꾸준히 제주로 내려옵니다. 애월읍, 서귀포시, 성산읍 등지엔 시인, 소설가, 화가 등 예술가들도 꽤 많이 내려와 있죠. 파리와 서귀포에 각각 작업실을 두고 왔다갔다하면서 작업하는 화가도 몇 분 만나보았는데 제주의 자연과 환경이 작품을 하는 데 좋은 영향을 준다고들 말합니다.

올레길이나 황톳길 외에도, 지자체 간 소위 벤치마킹을 많이 하는 게 각종 축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무슨무슨 예술제, 영화제, 미술제, 음악제, 무용제, 연극제 등등 이루 다 들기도 어렵습니다. 대부분 국제행사로 하는데 얼마나 많은 외국인들이 이에 참가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글로벌 시대에 하나의 유행이 돼버렸습니다. 저는 비용 대비 효과와는 별도로, 지자체들이 뭐든 국제행사로 벌이고자 하는 기개(氣槪)는 높이 사줄 만하다고 봅니다. 개방화 시대에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일 수 있으니까요. 

오래된 국제 예술행사로 성공하고 있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당장 떠오르는 것이 부산국제영화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서울국제음악제와 평창대관령음악제, 통영국제음악제 등 음악 행사들, 그리고 갈수록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키아프/KIAF'(Korea International Art Fair) 등입니다. 굳이 지역의 성공적인 국제행사를 하나 더 추가하라고 한다면 제주국제관악제를 들겠습니다. 벌써 28회째를 맞는 이 관악제는 세계 유수한 관악 단체들과 연주자들이 4, 5천 명 규모로 참가합니다. 제주도라는 관광지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가족을 데리고 놀 겸해서 오는 외국 연주단도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매년 열흘간, 3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개최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국제행사(올해는 8월 8일 서귀포시 개막)라 하겠습니다. 

제주에는 이처럼 큰 국제페스티벌도 있지만 작은 국제예술행사도 많습니다. 제주프랑스영화제(12회째), 제주여성영화제(24회째), 제주설문대할망제(17회째), 제주국제감귤박람회(10회째) 등도 외국인들이 주역으로, 또는 관객으로 많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제주라는 장소의 매력뿐만 아니라 제주인들의 문화적 관심과 예술적 재능이 뒷받침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통계를 본 적은 없지만 전국적으로 인당 예술 행사 참여도를 조사해보면 제주가 최상위권을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한참 전이지만 한 유명 제주 언론인/수필가에게 왜 제주에 문화예술이 이처럼 융성하는가, 하고 물었더니 잠시 머뭇하다가 제주의 자연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는 답을 해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역시 예술은 자연과 따로 떨어져 생각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래 제주 도정(道政)의 모토(motto) 역시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섬'입니다. 제주는 천혜의 자연과 함께 예술 활동이 왕성한 도시라서 갈수록 삶의 질이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 제목이 '제주에 살어리랏다(3)'이지만 실제 제주 사는 이야기는 이 난(欄)에서 네댓 번쯤 한 것으로 기억되는군요. 제주살이에 대한 자랑이 대부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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