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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 번역은 ‘미션 임파서블’?
권오숙 2023년 07월 31일 (월) 00:32:54

‘보 이즈 어프레이드’, ‘이니셰린의 밴시’, ‘애스터로이드 시티’, ‘이블 데드 라이즈’, ‘인시디어스’, ‘엘리멘탈’. 이것들이 무엇인지 추측이 되시나요? 아마 대부분 영화 제목일 거라고 떠올리셨을 겁니다. 맞습니다. 이것은 올해 우리나라에서 개봉되거나 개봉 예정인 외화의 제목들입니다. 그런데 이 제목을 읽고 영화의 내용이 대충 떠오르시나요? 그렇기는커녕 대부분 이 제목들의 의미조차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현재 외국 영화의 제목이 번역되고 있는 심각한 양상을 보여드리려고 가장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들을 가져왔으니까요. 

지난 6월, 기말 고사가 끝나자마자 현재 진행 중인 연구 프로젝트의 현지 자료 조사를 위해 대만을 다녀왔습니다. 같은 연구를 위해 이미 4월에 일본을 다녀온 바 있죠. 원래 1년에 한 나라씩 자료 조사를 했어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피치 못하게 벼락치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덕분에 이번에 대만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난생 처음 방문한 대만에서 보고 느낀 바가 많았을 터인데 뭔 놈의 영화 제목 번역 얘길 하냐 하고 의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참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오던 터에 대만에서 이 글을 쓰게 만든 계기를 만났습니다. 지하철을 갈아타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무심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내려가다가 벽면에 붙은 광고 하나가 내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이미 다 내려온 나는 다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려오면서 핸드폰 카메라를 눌러댔습니다. 

 

그 광고는 대만에서 7월에 상영 예정인 ‘미션 임파서블’ 새 시리즈의 영화 포스터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영화 제목의 번역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번역되었던 이 영화의 제목 ‘Mission: Impossible’은 ‘불가능적 임무’(不可能的 任務)라고 번역되었고, 이번 시리즈의 제목인 ‘Dead Reckoning’은 ‘치명정산’(致命精算)이라고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얼마 전 이 영화를 보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시리즈 제목을 ‘데드 레코닝’이라고 번역(?)했더라고요. 

내가 번역이라는 단어에 물음표를 붙인 것은 이걸 과연 번역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입니다. 번역학계에서는 이렇게 소리 나는 대로 옮겨 적는 것을 ‘음역’ 혹은 ‘음차’라고 부르면서 번역의 한 전략으로 분류합니다. 하지만 고유명사나 아님 아주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외래어를 이렇게 번역했을 때만 음차 혹은 음역을 하나의 번역 전략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위에 제시한 제목들처럼 전혀 영화의 내용은커녕 무슨 말인지도 모르게 원제의 발음을 모사한 것은 번역이라는 단어의 정의로 보나 번역 윤리로 보나 번역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번역은 기본적으로 다른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 언어로 바꾸어 주는 작업입니다. 그러니 위의 제목들은 진정한 의미의 번역도 아니고, 아무 의미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언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물론 간혹 정말 번역하기 까다로운 제목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영화 번역은 엄연히 대체될 수 있는 우리말을 두고도 너무 심하게 외국어 남용을 합니다. 심지어 ‘벅’스 라이프’(A Bug’s Life)나,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 같은 경우는 한글 표기법에 없는 문장 기호(apostrophe)를 한글과 함께 쓰기도 했습니다. 이런 번역 양상을 바라보며 세종대 영문과 지은영은 석사학위 논문에서 “수입 외화의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외화의 제목을 번역하여 내놓는 국어 제목의 수준은 거꾸로 퇴보하고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외래어 사용을 지양하자고 주장하는 국어 순혈주의자혹은 국어 순화론자는 아닙니다. 나도 언어가 교류와 변화를 통해 발전하고 외래어가 국어를 풍요롭게 해준다는 생각에는 동의합니다. 과학이나 기술, 음악, 미술, 영화 등 특수 분야의 전문어는 번역어로 대체하려 해도 그 개념을 지닌 우리말이 없거나 정확하게 그 개념을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에서만도 프로젝트, 에스컬레이터, 포스터, 핸드폰, 카메라같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외래어들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다만 최근 우리나라 거리를 온통 뒤덮고 있는 낯선 외국어 간판이나 상품 광고, 포털 사이트에 넘쳐나는 낯선 외래어들, 위에 제시한 것과 같이 무례하고 불쾌하게까지 느껴지는 영화 제목들을 보며 번역 관련 교육자로서 참담한 심경과 함께 책임감과 죄책감마저 듭니다. 물론 대만에서 본 포스터 하나를 보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고, 더 연구를 해보아야겠지만 다른 나라들에서는 자국어로 바꾸려는 노력이 엿보이는데 우리나라에서 유독 이런 이상한 음역이 난무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일부 논문에서는 서구 외래어를 현학적인 또는 과시적인 표현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소비자들이 외래어를 많이 사용한 광고를 적게 사용한 광고보다 전문적이라고 평가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들을 보면 모든 책임이 번역가의 불성실 탓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외국어를 선호하는 일반 대중의 경향과 흥행만을 중시하는 국내 영화수입사가 그런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영화 제목에 무조건 외국어를 사용할 것을 번역가들에게 강요하거나 번역가의 번역을 바꾸었을 여지도 상당해 보입니다. 

 그 이유야 어찌 됐건 위 제목들처럼 말도 안 되게 영어 문장을 통째로 음역하거나 보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영어 단어를 음역하는 식의 번역은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개인에 따라 이해의 정도가 크게 다릅니다. 이런 번역이 영화 제목을 비롯한 대중 매체에 빈번하게 등장할수록 많은 사람들이 정보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영화 제목 좀 이해 못했다고 해서 영화 감상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우리나라의 외국어 범람 현상은 정도가 심각합니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한다는 것은 이미 정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의미도 알 수 없는 혼탁한 번역들이 난무하고 뜻을 알 수 없는 외국어들이 포털 사이트에 넘쳐나는 데 대해 우리 사회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번역가들이 대중들의 이해를 돕는 번역의 본질을 지키는 것이 정녕 ‘미션 임파서블’은 아니길 바라며, 우리말로 대체될 수 있는 말들은 우리말로 아름답게 살려낸 번역들을 더 자주, 더 많이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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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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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리학 (142.XXX.XXX.90)
전전으로 동감, 공감합니다.
여러가지 문제들이 지적되어있는데 모두가 공감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사회가 착각하고 있는 것 중, 사대주의 특히 문화사대주의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는 글, 고맙습니다.

저도 외국에 사는데, 관심있는 것들을 발견하면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찍는... 저와 같아서 끄덕이며 웃었습니다.
나누고싶은 이야기들이 있어 저의 이메일을 적습니다. 연락주시기를 기대합니다. impo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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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1 21: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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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숙 (175.XXX.XXX.176)
이리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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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2 23:5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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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상 (14.XXX.XXX.154)
눈에 번쩍 띄는 글입니다. 번역자가 게으른 것인가요? 관객 수준을 오해했나요? 관객이 알아듣든 말든 얕잡아 본 것인가요? 아니면, 영화계 물이 그런가요? 참 짜증납니다.
이런 현상은 음악, 미술, 영화들 문화계에 널리 퍼진 현상이 아닌가 합니다. 원래 자기 것에 관한 자부심은 자기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문화계 문화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고 생각해서 그런가요? 우리 문화 수준이 이미 세계반열에 오른지 오래 전인데... 문화계가 우리다움을 얼른 찾길 기다립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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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1 0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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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숙 (175.XXX.XXX.176)
같이 기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저급한 문화 현상이 너무 오래 지속 되어서 많은 분들이 관심과 지적을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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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2 23: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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