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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속에 녹아내린 블루베리 열매
함인희 2023년 07월 26일 (수) 00:00:14

예전 어르신들이 조치원은 큰물도 큰 가뭄도 없다고 하셨는데, 올해는 그 말씀이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지난 7월 13일부터 19일까지 꼭 일주일 동안 쏟아진 폭우 덕분에 블루베리 열매가 툭툭 떨어지고, 가지에 달린 부분이 십자형으로 터지는가 하면, 일부는 그냥 녹아내렸습니다. 어림짐작으로 올해 예상 수확량의 20% 정도는 가지에 달려 익어가는 중이었는데 말입니다. 시간당 20~30mm의 장대비를 쏟아붓던 하늘을 원망하며 주인장과 저는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았습니다. 

블루베리는 수분이 적은 데다 크기마저 작아서 비 피해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과일입니다. 수확 시기도 만생종 이외에는 대체로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기 전 끝나는 착한(?) 과일이기도 하구요. 한데 연간 강수량의 50%가 일주일 동안 퍼붓고 보니, 잘 익은 열매를 중심으로 강한 빗줄기에 터지거나 떨어져 버리고, 초산 발효를 하면서 녹아버린 겁니다. 

올해 저희 밭의 피해가 유독 컸던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즘 규모가 큰 블루베리 농장에서는 포도 농장처럼 비 피해를 줄이기 위해 비가림막을 설치하기도 합니다. 그런 농장에선 피해가 적었을 겁니다. 아직 덜 익은 열매를 비 오기 전에 서둘러 수확한 농장도 피해를 줄였을 겁니다. 지난 토요일에도 전통시장에 가보니 일요일부터 다시 장맛비가 내린다는 소식에 서둘러 수확한 복숭아가 연신 입고되는 장면을 목격했으니까요. 

한데 저희는 지금도 90% 정도로 잘 익은 열매를 수확하고자 고집을 부립니다. 바나나나 토마토는 상온에서 후숙(後熟)되는 습성이 있지만, 블루베리는 나무에 달려 있을 때만 맛이 드는 속성이 있음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덜 익어 붉은색이 도는 블루베리는 씹는 순간 신맛이 강하게 올라오는데요, 상온에 놓아두면 색깔은 옅은 보라색으로 바뀌긴 합니다. 

6월 15일 처음 로컬푸드에 출하하던 날, 유독 알이 큰 것이 눈에 띄어 무슨 품종인지 물었더니 드래퍼라고 하더라구요. 저희 농장에도 5년 전 화분에 심은 드래퍼가 10주 있구요, 올해도 2년생 묘목 20주를 보식했습니다. 한데 드래퍼는 조생종이 아니기에, 소담스런 알이 일찍 달리긴 하지만 맛은 비교적 천천히 드는 품종임을 알아냈습니다. 6월 중순부터 거의 매일 드래퍼 열매를 따먹으며 맛을 확인했거든요. 드래퍼도 중만생종 넬슨이 익기 시작할 즈음, 그러니까 6월 말~7월 초가 되어서야 제 맛이 들더라구요. 6월 15일 경에 알 크기만 보고 블루베리를 구매한 분들은 맛에 실망했을 가능성이 100%입니다. 

블루베리는 열매 크기가 작다보니 하루 이틀만 지나도 곧 완숙과가 되기에, 수확 시기를 맞추는 일이 정말 까다롭습니다. 완숙과가 되면 탱글탱글했던 식감이 물렁물렁해짐은 물론, 토로 같은 품종은 아예 맛 자체가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게다가 완숙과는 배송 과정에서 터질 수 있고, 장마철 습도가 높아질 때면 냉장고에서 예냉한 블루베리는 결로 현상이 심해져 물에서 방금 건져낸 것처럼 물이 주르륵 흐르곤 합니다. 가능한 한 최고로 맛있고 식감도 좋은 블루베리를 수확하려는 욕심 때문에 올해는 크나큰 손실을 본 셈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단골손님들 주문은 무사히 배송을 마쳤습니다. 가족이나 친지에게 선물하는 고객도 여러분 계신데요, 올해 마지막 주문은 키르기스스탄에 머물고 있던 (친정) 언니가 카톡으로 보내왔습니다. "성당 신부님이 편찮으셔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신다니 블루베리를 보내드렸으면 좋겠다"는 부탁이었는데요, 노란색 편지지에 언니의 정성스런 마음까지 담아 배달했답니다. 

세상에 늘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닌 듯합니다. 장마가 걷힌 후 폭우 속에서도 꿋꿋이 달려 있던 블루베리를 제법 많이 땄습니다. 빛깔도 바래고 크기도 작아 상품성이 떨어지긴 했지만 새콤달콤한 맛은 일품이더라구요. 깨끗이 닦아서 모조리 냉동시켰습니다. 작년에는 쟁여둔 블루베리가 일찍 동이 나 아쉬웠는데, 올해는 냉동실에 블루베리가 그득합니다. 블루베리 두 컵에 바나나 혹은 사과 4분의 1쪽을 넣고 요플레 한 숟갈에 우유와 생수 한 컵을 넣어 믹서기에 갈면 블루베리 주스 두 잔이 완성됩니다. 

연보랏빛 블루베리 주스가 오르는 아침 식탁 앞에 앉으면 마냥 부자가 된 느낌이 듭니다. 일 년 내내 부자 된 포만감으로 올해의 아쉬움을 달래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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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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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 (203.XXX.XXX.156)
답이 너무 늦어졌네요. 죄송합니다.
실은 블루베리 농사의 충격(?) 탓인지, 7월 하순 코로나 확진을 받은 후 거의 1달 이상을 호되게 앓았답니다. 그 사이 블루베리 밭은 풀이 뒤덮여 밀림이 되었지요. 이제 겨우 풀 제거 작업이 마무리되었네요.

저희 블루베리에 따스한 관심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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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5 16: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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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222.XXX.XXX.94)
실패를 받아들이고,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고, 실패 너머 얻는 것이 있음을 잘 보여주시네요.그 곳 블루베리 좀 사 먹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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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6 09: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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