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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킴라일락의 원조(元祖), 털개회나무를 보며.
박대문 2023년 07월 18일 (화) 00:00:15
   
  털개회나무. 물푸레나무과. 수수꽃다리속(屬)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서자(庶子) 출신, 홍길동의 아픈 마음, 우리 꽃을 우리 꽃이라 부르지 못하는 외국 특허명(特許名), 미스킴라일락(MissKim Lilac)의 처지는 같은 것일까?

지난달 가야산 정상 부근에서 만났던 털개회나무의 맑고 깨끗한 모습과 그 나무에 얽힌 아쉬운 사연이 겹쳐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척박한 바위틈새에 뿌리내려 질긴 생을 이어가면서도 고운 꽃망울을 피워올린 소담하고도 청정(淸淨)한 털개회나무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습니다. 진하지도 않은 은은한 향기, 가까이서도 떨어져서도, 짙고 옅음의 차이가 별로 드러나지 않는 맑은 향이었습니다. 높고 적막한 산봉우리에 맑은 향을 풍기는 청정함은 마치 참선하는 고고한 도인의 기품마저 풍기는 듯했습니다. 

털개회나무는 고산(高山)지대 수종으로 추위를 잘 견뎌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와 경상북도 등 백두대간에서 주로 자라는 수수꽃다리속의 토종식물입니다. 일년생가지에 껍질눈이 매우 많으며 털이 빽빽이 나고. 잎 뒷면의 맥에도 털이 밀집한 키 작은 나무로서 수수꽃 모양의 꽃차례에 연한 보랏빛 꽃이 다닥다닥 붙어 핍니다. 고산지대에 자라므로 쉽게 만날 수 없는 털개회나무가 우리에게 보다 널리 알려진 것은 미스킴라일락 때문입니다.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최고 인기 품종이며, 유럽의 화훼시장에서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미스킴 라일락의 원종(原種)이 바로 털개회나무입니다,

미스킴라일락이 국제 화훼시장에 선보이게 된 것은 미국 뉴햄프셔 출신 원예학자인 미더(Elwyn Marshall Meader)에 의해서입니다. 해방 이후 1947년, 미군 군정청 소속의 미더(E.M Meader)가 북한산 백운대 바위틈에서 털개회나무의 씨를 채취하여, 본국인 미국으로 가져가 품종을 개량한 특허품입니다. 미스킴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킴’이 한국을 대표하는 흔한 성씨 때문이라는 설과 한국 근무 당시 사무실 여직원이 ‘미스킴’이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아무튼 ‘미스킴라일락’은 원조인 털개회나무와는 다른 미국 국적의 인기 품종으로 국제원예시장에서 거래가 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1970년대 이후 비싼 로얄티를 지불하면서 이 종을 수입하여 시중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크리스마스트리 시장에서 인기리에 판매 중인 구상나무 역시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구상나무 씨앗을 1917년 윌슨(Ernest Henry Wilson)이 채취, 하버드대 아널드식물원에 심어 미국에서 신품종으로 개량한 것으로 비싼 값을 치러야만 수입하여 판매할 수 있습니다. 털중나리, 하늘말나리 등도 네덜란드로 반출되어 신품종으로 개량되어 특허 등록까지 완료한 식물이라서 우리가 원산지 국가이지만 어떠한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 잃어버린 우리 식물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반출 금지는 2001년 ‘생물자원 국외반출 승인제’가 실시되면서부터입니다. 국제사회가 생물 주권을 인정하고 행동에 나선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1992년 리우에서 생물다양성협약(CBD)이 체결되고 2016년 자원보유국의 생물자원에 대한 생물 주권을 인정하는 나고야 의정서(ABS)를 채택하게 됩니다. 비준국들은 유전자원이나 관련 전통 지식을 이용할 때 자원을 제공한 국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고, 여기서 발생한 이익도 자원 제공국과 공유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발생합니다. 나고야 의정서가 채택되기 전까지만 해도 다른 나라의 생물자원을 이용할 때 제공국의 승인을 받거나 이익을 나누는 공식 절차가 없었습니다. 바야흐로 국가 소유 생물자원에 대한 생물 주권이 확립되어가고 있으며 국가 간 본격적인 생물종 보호 활동과 총성 없는 종자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척박한 바위틈새에 뿌리내리고 서 있는 가야산 털개회나무  

생물자원의 중요성을 먼저 알게 된 나라들은 생명공학, 유전공학이 태동한 서구의 국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제국주의 지배력이 뻗치는 모든 지역의 종자를 수집해 갔습니다. 구한말, 일제강점기와 혼란스러운 근대에 한국에 온 외국의 종자 수집가들은 한국 고유의 종을 마음대로 가져갔습니다. 지금의 국제 규정으로 보면 불법이고 약탈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에 대한 국외 반출 승인제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나라 생물자원의 수많은 종이 이미 해외에 반출되었습니다. 더구나 IMF 때 한국 굴지의 종자회사였던 흥농종묘, 중앙종묘, 서울종묘, 청원종묘 등 주요 종묘 회사들이 경영악화로 외국에 매각되면서 한국 고유의 종(種)에 대한 생물 주권 권리를 전혀 행사하지 못하게 된 치명적인 상황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1983년 중앙종묘 유일웅 박사에 의해 개발된 청양고추마저 세미니스, 몬산토를 거쳐 지금은 독일의 바이엘이 그 권리를 가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무, 배추 육종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우장춘 박사와 제자들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1998년 IMF 사태로 우리 식생활에 맞춰 개발한 우수한 종자들의 유전정보와 판매권이 고스란히 해외기업으로 넘어갔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들 식물 주권(主權)을 갖고 있었다면 그 부가가치가 엄청나게 컸을 생물자원들입니다. 이들 외에도 생물 주권을 빼앗긴 생물은 한둘이 아닙니다. 다행히도 IMF 사태 때 어렵사리 살아남은 국내 굴지의 종자회사 중 하나인 ‘농우바이오’가 최근 상속세 부담으로 외국계 기업에 넘어가기 직전에 ‘농협’에 인수되었습니다. 또한 IMF 당시 해외에 팔린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를 인수한 몬산토코리아의 종자사업을 2012년 ‘동부팜한농’이 인수, 지금은 LG화학이 운영하는 등 종자 산업계가 회생의 길에 들어서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정부에서도 ‘유전자원법’, ‘농업생명자원법’ 등 관련법을 제정, 시행함으로써 유전자원과 생명자원의 보존, 관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민단체인 ‘한살림재단’ 등에서도 토종씨앗 농장사업, 나눔 사업 등으로 생물 주권 확보와 발굴사업 등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새로운 희망이 보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우리 농산물 종자의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습니다. 인터넷상의 어느 한 자료에 의하면 귤, 포도, 배, 고구마, 사과. 양파, 마늘, 파프리카 등 종자 해외 의존도가 80~100%에 이른다고 합니다. 종자주권의 확립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들 특허품은 수확한 농산물의 종자를 다시 생산, 판매할 수도 없지만 수확한 자식 종자인 F2는 열성을 나타내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는 글로벌 종자회사들이 판매하는 종자에 그들의 유전 기술을 적용한 탓이기도 합니다. 다행히도 지금은 정부의 GSP(골든씨드프로젝트) 등 종자 자급률 향상을 위한 노력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일본 품종이 90%를 차지하던 딸기 시장도 이제는 거의 국산 품종으로 대체가 이루어진 성과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 과거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아직도 이 땅에는 품종 등록이 되지 않은 국내 고유품종이 많습니다. 이들을 끊임없이 발굴, 연구하여 우리의 미래세대가 이용할 보다 나은 생물자원으로 남겨주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정부, 기업, 모든 국민이 생물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고 함께 참여함으로써 미스킴라일락, 구상나무, 청양고추, 털중나리, 하늘말나리 등에 얽힌 회한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제부터는 환경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들도 ‘~해라, ~하지 말라.’는 명령적 구호로 존재감을 드러내려고만 하지 말고, 예전의 자연보전 활동처럼 생물자원탐사, 우리 식물 보호활동 등 몸소 참여하고 실천하는 활동, ‘~하자, ~하지 말자.’라는 권유와 동참이 보다 더 중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땅에 서식하는 자생생물은 우리와 더불어 살기 위한, 생물 다양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동시에 미래세대의 소중한 자산으로 이어지는, 생물 주권의 대상임을 가야산의 털개회나무를 통하여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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