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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대학 입시
박상도 2023년 07월 14일 (금) 00:00:09

중학교에 입학한 1980년 여름에 과외금지 조치가 있었습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이름도 무시무시한 곳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발표된 이 조치로 많은 동요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필자는 어차피 과외나 학원을 다닌 적이 거의 없었기에 과외금지 조치가 주는 충격이 별로 없었습니다. 과외나 학원을 다닌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하는 이유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나이 많은 담임 선생님이 수학 한 문제를 3시간 동안 끙끙거리시면서 풀지 못하시는 걸 보면서 “아, 올해엔 학교에서 수학을 배우기는 그른 것 같다.”하고 생각하고 당시 공대에 다닌다는 같은 반 친구의 큰형에게서 수학 과외 수업을 딱 한 달 반 정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 달 반만 과외를 한 이유는 공대에 다니는 큰형이라는 분이 수업의 눈높이를 초등학생에게 맞추지 않고 고등학생 수준에 맞춰서 가르치는 바람에 수업을 들어도 정작 배우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게 왜 이렇게 되나요?”라고 질문을 하면 “그냥 그건 그렇게 되는 거야.”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니 배우는 저도 답답하고 가르치는 그 형님도 답답했을 겁니다. 하여튼 이런 경험을 한 이후엔 공부는 그냥 혼자서 낑낑거리며 하는 것으로 정의를 내렸는데 때마침 과외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저 같은 스타일의 학생들에게는 매우 평평한 운동장이 만들어지게 된 거였습니다.

만약에 그때 과외금지 조치가 없었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겁니다. 우선 지방에서 학교 수업과 교과서, 참고서만으로 공부했던 학생들이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하는 숫자가 많이 줄었을 겁니다. 특히 과외금지 조치와 함께 본고사를 폐지하고 학력고사로 시험을 단일화한 것은 흙수저들에게는 고마운 조치였습니다. 물론 선(先) 시험 후(後) 지원으로 인한 눈치 싸움이나 정원 미달 같은 부작용이 있긴 했으나 입시제도의 단순함에서 얻을 수 있는 많은 장점에 비해 단점은 미미했던 것으로 판단합니다. 가장 큰 장점은 일원화된 평가로 학력고사 관리만 제대로 하면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었다는 것과 학교 수업만으로도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학력고사 시대에 대학에 입학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당시의 입시제도가 가장 좋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거의 모든 대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시위에 동참했던 필자가 거의 40년이 흐른 지금 그때의 입시제도가 가장 좋았다고 회고하는 이 상황이 곤혹스럽습니다만 지금 입시제도와 사교육 행태를 비교하면 그때가 천국이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입시제도의 수혜를 본 학생들 중 586 정치인들도 상당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 그들이 지금 같은 입시를 치렀다면, 상당수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거나 대학 문턱에서 좌절했을 겁니다. 그들이 사회 지도층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공부해서 신분 상승이 가능한 공정한 사다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다리를 아이러니하게 군부독재에서 만들어줬고 민주화 이후 슬금슬금 귀퉁이가 잘려나가더니 어느새 삭아서 없어져 버렸다는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여기던 군사 정권을 극복하고 자랑스러운 민주주의를 이뤄냈지만 정작 세상은 더 불공평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투자와 보상이라는 자본의 논리에 교육까지 매몰되어 버리면서 결국 있는 집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비중이 더 높아갔습니다. 그 와중에 제 자식 챙기기에 급급했던 지도층의 표리부동한 모습까지 더해지면서 없는 집 자식들은 뭘 어떻게 하든, 되는 게 없는 나라로 변해버렸으니 말입니다.

이번 정부에서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지난 3월에 일선에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6월 수능모의고사에서 이러한 지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자 대입 담당 국장을 경질하면서 사건이 기사화되었고 갑론을박이 이어졌습니다. 황당한 것은 이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조금만 마찰이 있으면 무조건 정치적 쟁점이 되어버리는데 이제는 지켜보기에도 피곤해 죽을 지경입니다. 특히 우리의 교육 현실이 지옥이 된 것과 관련해서는 어느 누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텐데도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치적으로 이슈가 이용당하는 느낌입니다.

사교육 시장 규모 추정액이 매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연간 200조가 넘는다고 하고, 일타 강사가 한 해에 벌어들이는 수입이 백억 원이 넘습니다. 이 상황을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스포츠 카에 고급 맨션에 산다고 자랑하는 일타 강사에 대해 굳이 마녀 사냥을 할 필요는 없지만, 과연 이렇게 과열된 사교육 시장이 우리 경제에 어떤 보탬이 되는지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2년 넘게 살면서 학원을 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공부에 대한 접근이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문제로 남겨놓고 교육이라는 측면만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면 정말 부러운 나라입니다. 우선 초등학교 교과서가 매우 훌륭합니다. 아무리 좋은 참고서를 만든다고 해도 교과서만큼 만들지 못할 만큼 잘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미국 서점에는 참고서가 없습니다. 있다면, 구석 한편에 SAT, GRE 같은 대학 또는 대학원 입학시험 관련 책들만 아주 조금 비치해놨을 뿐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서에 참고서에 보습학원을 뺑뺑이 돌리는 것이 아니라 아무 책이든 책을 많이 읽으라고 가르칩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책을 많이 읽게 합니다. 시험을 위한 교육이 아닌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는 교육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공교육이 제 역할을 하니, 그 교육이 경쟁력이 높은 겁니다.

굳이 미국의 교육과 비교를 하는 이유는 매년 200조가 넘는 돈을 사교육에 뿌려대고 있는데 그 효과를 보고 있느냐? 하는 질문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애들이 그렇게 사교육을 받아서 킬러 문항 한두 개 더 맞힌다고 국가 경제에 얼마나 이바지가 될지는 필자의 아둔한 머리로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요즘 논의가 불거져 나온 ‘사교육 카르텔’이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는 해보지 않았지만, 이렇게 비정상적인 상황을 십수 년 동안 방기한 것으로 봐서는 꼭 없는 얘기만은 아닌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합니다. 모처럼 맥을 잘 짚은 대학입시 대책이 나온 만큼 이번에는 부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만들어지는 단초를 마련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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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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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청암 (124.XXX.XXX.225)
확 숨통이 트이는 명 문장을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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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7 00: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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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섭 (220.XXX.XXX.200)
늘 재미있게 읽습니다.
일타를 질타하면서 원장관이 일타 유튜브 ???
좋은 글 많이 기대합니다.
저는 54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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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4 07:56:23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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