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박종진 생각과 연장
     
자기만의 상징이 있나요?
박종진 2023년 07월 10일 (월) 00:00:38

찰리 채플린은 콧수염, 히틀러도 콧수염이 떠오릅니다. 맥아더 원수는 선글라스와 옥수수파이프, 셜록 홈즈는 사냥모자와 파이프입니다. 이밖에도 호랑이는 줄무늬, 수사자는 풍성한 갈기가 상징입니다. 상징은 그 대상을 쉽게 떠오르게 하고 오래 기억하게 합니다. 만년필 회사들도 이걸 알고 있었습니다. 엠블럼, 로고, 클립 심지어 글이 써지는 펜촉 등 만년필의 모든 부분이 상징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럼 누가 이걸 시작했을까요? 워터맨입니다. 실용적인 만년필의 세계를 연 워터맨은 1920년대까지 약 40년 동안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다른 회사들보다 빨랐습니다. 모세관현상으로 뚜껑을 열면 바로 써지고, 한 번 주입된 잉크가 다 써질 때까지 끊임없이 쓸 수 있는 만년필을 발명한 것은 물론 여러 면에서 선두였습니다. 

워터맨은 1900년대 초 간략화한 지구본 모양을 만년필의 몸통에 새기기 시작했습니다. 뜻하는 것은 자사(自社)의 품질이 미국 전체는 물론 전 세계까지 석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만년필 세계에선 글로브(globe)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이 글로브를 보면 뛰어난 품질과 아름다운 만년필을 연상했고, 상점에서 워터맨 만년필을 집어 들고 지갑을 열 때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몽블랑의 화이트 스타 

그럼 그 유명한 상징인 몽블랑의 화이트 스타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몽블랑 역시 세계를 석권하고 이 하얀 별을 만들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몽블랑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06년이었고, 회사라고 할 수 있게 된 것은 2년 뒤 1908년이었습니다. 최초의 브랜드는 ‘루즈 앤 누아르’ 불어로 ‘적과 흑’ 이었습니다. 이 ‘적과 흑’은 세계를 석권할 정도의 품질은 아니었습니다. 초창기 몽블랑은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펜촉을 공급받을 정도로 작은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점차 지명도가 높아졌고, 바로 그때 영원히 빛날 화이트스타가 탄생했습니다.

이 화이트스타는 1913년에 등록 되었고, 뚜껑에 장착되기 시작한 것은 1914년이었습니다. 마치 유럽 최고봉인 몽블랑처럼 유럽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을 반영하듯 말입니다. 몽블랑은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자사 펜촉은 물론 유럽에서 가장 비싸고 아름다운 펜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명실상부 유럽 최고가 된 것이지요. 하지만 세계 최고가 되기까지 몽블랑산 높이인 4810미터보다 더 높은 산을 몇 개나 넘어야했습니다. 

파커의 화살 클립

그 산들 중 하나가 셰퍼와 파커였습니다. 파커의 둘도 없는 라이벌인 셰퍼는 1920년 두꺼운 펜촉을 장착하고, 평생보증을 내걸어 워터맨이 꽉 쥐고 있던 만년필 세계를 흔들어 황금기를 연 주인공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상징이 없었습니다. 1924년은 그 상징을 만들 최고의 타이밍이었습니다. 회사의 명운을 걸고 준비한 새로운 재질인 플라스틱 만년필을 내놓을 때 셰퍼는 뚜껑에 하얀 점(white dot)을 박았습니다. 이 하얀 점이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되었는지 셰퍼의 새로운 만년필은 날게 돋친 듯 팔렸습니다.  

파커는 셰퍼의 성공에 불 같은 질투와 분노를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호랑이처럼 쳐다봤고 소처럼 걸었습니다. 1932년 운명을 좌우할 만큼 많은 돈을 쏟아부은 새로운 잉크 충전방식이, 장착된 만년필에 화살 모양의 클립을 달아 포인트를 줬습니다. 이 만년필은 워터맨과 셰퍼를 끌어내릴 만큼 크게 성공했고 화살클립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살이 되었습니다. 

마무리입니다. 이 회사들이 상징을 잘 만들어 성공했을까요? 아니면 성공해서 상징이 유명해졌을까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질문이지만, 사실 이 질문의 답은 쉽습니다. 잘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품질 없는 상징은 의미 없습니다. 워터맨의 글로브와 셰퍼의 하얀 점을 보고 만년필을 사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갖고 싶은 상징은 결국 품질입니다. 이건 사람도 마찬가지일 듯싶습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8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장원석 (116.XXX.XXX.219)
오직 다이어리의 펜꽂이를 덜 상하게 하는 클립형태를 찾다보니 당장 떠오르는게 펠리컨의 부드럽고 완만한 클립이더군요. 아름다움을 두고 고작 기능적인 효율만 탐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구 전체를 보고 상징이 갖는 의미까지 느끼고 즐기는 시야를 갖고 싶습니다. 매달 깊은 글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23-07-11 09:06:56
0 0
박종진 (118.XXX.XXX.24)
저도 깊은 감사드립니다.
답변달기
2023-07-11 21:51:12
0 0
추억에묻히다 (223.XXX.XXX.86)
제 만연필의 촉에는 닻 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그곳에 이런 재밌는 이야기가 숨어있었군요 ^^
답변달기
2023-07-10 23:04:28
0 0
박종진 (118.XXX.XXX.108)
세일러 만년필 이군요^^ 세일러 닻 잘 어울리는 상징입니다^^
답변달기
2023-07-11 21:41:34
0 0
김봉현 (211.XXX.XXX.105)
실속과 품질의 뒷받침이 있어야 상징이 진정한 의미를 갖겠군요! 부단히 노력해야 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23-07-10 13:21:18
0 0
박종진 (211.XXX.XXX.243)
맞습니다. ^^
답변달기
2023-07-10 22:16:51
0 0
단석 (220.XXX.XXX.162)
사람이든 물건이든 상징이 중요하군요
항상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답변달기
2023-07-10 10:56:06
0 0
박종진 (211.XXX.XXX.243)
요즘은 자기 홍보 시대 이니까요^^
답변달기
2023-07-10 22:15:47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