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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케이크 장사
한만수 2023년 06월 07일 (수) 02:05:17

요즈음은 물자가 흔해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가전제품이며, 가방, 가구 등이 고물로 버려집니다. 전원만 연결하면 시원하게 돌아갈 것 같은 선풍기, 컴퓨터 모니터나 프린터 같은 것은 골목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다행히 임자를 잘 만나서 다시 책상 위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고물로 처리가 돼서 파쇄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파트 단지 쓰레기 분류장 같은 곳에 가면 한 번도 읽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어린이책들이나 소설이며 전문서적이 몇 십 권씩 묶여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거리에 버려지거나, 읽지 않는 책들을 ‘헌책’ 이라고 합니다. 요즈음에는 ‘헌책’을 ‘중고책’이라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헌책’을 ‘중고책’ 이라고 해야 된다고 주장한 사람은 제가 처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3년 전쯤에 있었던 일입니다. 전문커피점이 우후죽순으로 퍼져 나갈 때이기도 합니다. 

저는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커피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원가를 계산해 보니까 중심 상권이 아닌 일반 상권에서 판매하는 커피 원가는 2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되어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북앤커피(book & coffee)”라는 협동조합을 만들 계획을 세웠습니다. 중고책을 가져오면 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있고, 또 비치되어 있는 책과 교환하거나 빌려갈 수 있는 협동조합을 만들면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제안서에 '헌책'을 '중고책'이라고 해야 된다는 요지의 내용을 집어넣었습니다. 제안서는 서울에 있는 모 구청에 제출을 해서, 구청장과 면담을 했습니다. 구청장은 협동조합 설립비용과, 건물, 자동차 등의 기본 투자비용을 지원해주겠다고 반겼습니다. 하지만 구청장을 소개해 준 분과 서로 뜻이 맞지 않아서 포기를 했습니다.

그 해, 구청에서는 ‘중고책 교환의 날’이라는 행사를 했고, 헌책을 중고책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 언론에 기사화됐습니다. 이듬해 서울시에서는 구청 행사를 벤치마킹해서 더 큰 행사를 치렀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1960년대만 해도 거리에 버려지는 고물은 눈을 씻고 찾아봐야 할 정도로 귀했습니다. 깨진 병조각이며, 녹슨 못, 찢어진 고무신, 심지어 쇠전거리 울타리에 이용하고 있는 녹슨 철조망 뭉치를 고물상에 갖다 주면 엿으로 바꿔 줬습니다.

리어카에 엿판을 싣고 다니는 엿장수만 고물을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름이면 아이스케이크 장사도 온갖 고물을 다 받았습니다. 고물만 받는 것이 아니고, 밭에서 주인 모르게 뽑아 온 마늘이며, 집에서 몰래 퍼 온 보리쌀 같은 것도 돈으로 환산을 해서 아이스케이크와 교환해 주었습니다.

아이스케이크 장사는 3등급으로 분류가 됩니다. 20대가 넘은 청년들은 자전거에 아이스케이크를 500개 정도 담을 수 있는 통을 싣고, 면 소재지를 벗어나 장사를 합니다. 여름이면 금강 상류인 유원지나, 다른 지역에 있는 학교 앞이며, 산골로 다니며 장사를 합니다. 그다음이 300개 정도를 싣고 다니는 10대 후반의 장수들로, 동네보다는 외지로 다닙니다.
면 소재지에서 아이스케이크를 파는 장사꾼들은 거의 초등학생들입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농사를 짓거나, 외지에 있는 공장이며 상회의 점원으로 취직하는 까닭에, 면 소재지는 초등학생들이 독차지합니다. 

초등학생들은 50개 정도를 담을 수 있는 아이스케이크 통을 어깨에 짊어지고 골목을 누빕니다. 그들도 마늘이며 유리조각이나, 철사토막 등 고물을 담을 수 있는 자루가 필수입니다. 

자유칼럼에 언젠가 쓴 적이 있는데 장터에 ‘서울여인숙’이라는 술집이 있었습니다. 상호는 여인숙(旅人宿)인데 굳이 술집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잠을 자기보다는 술을 파는 집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서울여인숙에는 항상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가씨들이 적을 때는 2명, 담배 대목 같은 때는 5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아가씨들이 바뀌고 나면 거의 날마다 대낮부터 술판이 벌어집니다. 밥상 모서리가 작살나도록 젓가락으로 두들기며 부르는 노랫소리가 장터에 예사롭게 퍼져 나왔습니다.

서울여인숙에는 우물이 있었는데, 여인숙 주변에 있는 집에서는 모두 그 우물물을 길어다 썼습니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물을 길러 가서 보면 대낮인데도 닫혀 있는 안방에서 동네 유지들이 술 마시며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게 퍼져 나옵니다. 마루 밑에 있는 신발은 구두가 아니면 백마표 흰 고무신입니다. 타이어표 검은 고무신을 신지 않고 백마표 흰 고무신을 신을 정도면 동네에서 먹고살 만하다고 소문난 집일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단순하게 부잣집이니까 대낮부터 술타령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훗날 '금강'이라는 대하장편소설을 집필하면서 연구해 보니까, 파출소장이며, 면장, 수리조합장, 방범대장, 농협 조합장, 동네 이장 등이 대낮부터 상모서리를 두들길 수 있는 돈이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공금이며, 필요 이상으로 많이 걷은 잡부금, 글씨도 모르는 주민들 앞으로 나온 농자금 등이었습니다.

철용이는 가끔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했습니다.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하는 날이면 집에 들르지 않고 아이스케이크 공장으로 달려갑니다. 책보를 맡겨 놓고, 파란색의 아이스케이크 통을 어깨에 메고 부지런히 골목을 누빕니다.
하루는 서울여인숙에서 물을 긷고 있는데 철용이가 발소리를 죽여 가며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저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입을 막으며 조용히 하라는 눈짓을 보냈습니다. 이어서 재빠르게 흰 고무신 서너 켤레를 재빠르게 자루에 담아서 사라졌습니다. 

저는 제가 고무신을 훔치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이 빨개져서 양동이에 담은 물이 출렁거려 넘쳐흐르는 것도 모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철용이는 장터 안에 있는 가게 밑의 그늘에서 아이스케이크를 먹고 있었습니다.
“들키면 어쩌려고?”
“야! 고무신 한 켤레 살 돈도 없이 색시 끼고 술 먹겠냐?” 
철용이는 여유만만했습니다. 아이스케이크 통을 열고 허옇게 서리가 묻은 아이스케이크를 꺼내 내밀었습니다.
“파출소장도 있었던 것 같은데?”
“파출소장이 구두 신지 고무신 신고 다니냐? 걱정 말고 오늘 아이스케이크나 실컷 먹어라.”
철용이는 아이스케이크 통을 어께에 멨습니다. 저한테는 고무신이 들어 있는 자루를 맡기고 쇠전거리 쪽으로 향했습니다. 졸지에 공범이 되어 버린 저는 연신 뒤를 돌아다보면서도 아이스케이크가 녹을까 봐 연신 쭉쭉 빨며 따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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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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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 (116.XXX.XXX.129)
마지막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아이스케이크를 먹으며 연신 뒤를 돌아다보는 순수하고 귀여운 어린 한 선생님의 모습이요.
저도 어릴 적 엿장수에게 연탄집게랑 가위 가져다 주고 엿 바꿔 먹은 기억이 납니다. 가늘고 긴 노란 엿이 어찌나 맛있던지.
글을 읽으며 잠시 추억에 풍덩 빠졌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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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7 14:31:22
0 0
한만수 (118.XXX.XXX.26)
그때는 다들 어렵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요즘 네팔이나 인도빈민촌하고 다를 바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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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8 16:25:59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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