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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받는 자유주의자 애덤 스미스
정숭호 2023년 06월 05일 (월) 00:03:00

1723년 6월 5일, 꼭 300년 전 오늘,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 옆 작은 포구인 커콜디(Kirkcaldy)에서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도덕감정론’과 ‘국부론’ 두 권의 저서를 남기고 1790년 7월 17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중심가에 서 있는 애덤 스미스 동상. 지구본 위, 오른손이 교수가운 자락에 살짝 덮여 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세계의 교역이 더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위키미디어 사진)

나는 이 두 책과 그의 전기 등등을 읽고, 얼마 전 어쭙잖지만 ‘죽은 스미스와 살아 있는 경제 기자의 대화’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책의 부제는 ‘탄생 300주년 애덤 스미스를 찾아가다’입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우고 신문사에서도 경제부 기자로 일했지만, 스미스라는 인물의 사상과 삶을 분석하고 설명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경력인 내가 감히 이 일에 덤벼본 것은 이 두 책을 읽고는 그의 참모습, 사상이 한국에는 이름이 알려진 만큼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어떤 이는 오해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의 탄생 300주년 기념일도 다가오고 있었으니 나에게 새롭고 깊은 깨달음을 준 그에게 경배도 올리고 싶었습니다.

많은 한국인이 그를 ‘국부론’을 쓴 자본주의자로만 알고 있을 겁니다. 한 걸음 더 나간 분들은 그의 사상을 자본가의 노동자 약탈, 빈부격차 심화 같은 문제는 물론 경제 발전의 부작용으로 의심받는 지구상의 모든 부조리-예를 들면 기후환경 악화까지-를 불러온 출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스미스는 이런 비판을 받아야 하는 그런 ‘자본주의자’가 아 니었습니다. 그에게 무슨 무슨 주의자라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자유주의자’라는 이름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두 책을 통해 자유가 인류의 삶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만들어온 원천임을 밝혀내고 더 풍족해지려면 더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풍족해야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은 그가 글래스고 대학 교수이던 1759년에 출간됐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도덕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 17년 뒤에 나온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은 ‘한 국가의 부(富)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어떻게 하면 더 키울 수 있는가’를 찾으려는 책입니다.

제목만 보면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룬 것 같으나, 앞의 책에서 뒤의 책이 시작됐으니 ‘국부론’은 ‘도덕감정론’의 속편 혹은 2세라고 해도 될 겁니다. 두 책의 공통 DNA는 자유와 풍요, 도덕과 정의, 양심과 법치입니다.

  
에든버러 캐넌게이트 교회의 스미스의 묘비명.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의 유해가 여기 누워 있도다"라는 단출한 문구이지만 어떤 학자는 "이보다 더 오래갈 묘비명은 다시 없을 것"이라는 말로써 스미스의 위대함을 이야기한다. (위키미디어 사진)  

매우 두껍고, 어렵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 ‘도덕감정론’을 저더러 설명하라면, 이미 많은 분이 아시다시피, ‘사유재산을 인정함으로써 도덕이 생겨났음을 밝힌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자기 것-생명을 포함한-을 다른 사람에게 이유 없이 빼앗긴 사람이 느끼는 억울함에 대한 나의 공감’,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에 대한 나의 분노’가 도덕의 시작이라는 것이지요. 스미스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타인의 억울함에 대한 공감, 타인의 폭력적 강탈에 대한 분노는 사람들에게 ‘나에게 저런 일이 닥치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이 생각은 ‘남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정의(正義)’라는 감정을 형성했다. 이 정의를 지키도록 하는 것이 도덕이자 법이며 이것은 하늘이 준 것도, 왕(권력자 혹은 지도자)이 정한 것도 아니며, 인류가 진화해오는 사이에 스스로 생겨났다.>

스미스는 이 생각을 바탕으로 “정의는 기둥, 선행은 장식”이라는, 모든 사람이 품고 있어야 할 비유를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남을 도와주려는 선행은 장려해야 할 일이지만, 남의 것을 빼앗아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는 선행은 정의를 무시한 것이므로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고 말한 겁니다. 선행은 정의라는 기둥 위에 붙어 있는 장식이므로 정의가 흔들리면 선행은 곧장 땅바닥에 떨어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뿐이라는 겁니다. 

‘도덕감정론’에서 사유재산을 지키려는 것이 정의와 도덕의 출발이라고 본 그가 “그렇다면 사유재산이라는 것(개념)은 어떻게 생겨나고 발전했는가”를 연구하게 된 건 당연합니다. 그는 도덕감정론 서문에서도 이와 관련한 후속 연구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결과가 17년 뒤에 나온 ‘국부론’입니다. 그는 ‘국부론’에서 나라가 부유해지려면 왕이나 권력층의 재산보다는 개인의 부가 늘어나야 한다, 특히 하층 서민이 잘살수록 나라의 부가 증대된다는 논지를 펴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가 자유주의자임이 확인됩니다. 그는 개인이 부를 늘리려면 ‘자유’가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요컨대,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항상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추구하려는 본능이 있는데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 본능을 충족할 수 없다는 거지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하면 내가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스미스는 자유인과 노예의 비교로 풀어나갑니다.

“자유인의 노동이 노예노동보다 값싸다”라거나 “노예는 신분이 자유로울수록 주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그런 봉사는 노예가 오직 노예로서만 취급되는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라는 ‘명문(名文)’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자유가 확대되어온 과정도 역사적 사실에서 추론하는데, “다이아몬드 버클이 자유를 가져왔다”라는 또 다른 ‘명문’도 만들어냅니다. 중세 영국 봉건 귀족들이 늘어난 해외 교역을 통해 들어온, 전에 못 본 사치품을 접하고는 그 사치품-자신만이 즐길 수 있는 물건을 보고는 그것을 갖기 위해 땅을 팔고 노예를 팔고 하인을 평민으로 신분 상승시켜 줬다는 겁니다. 자유로워진 하인과 노예는 이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으며, 이런 식으로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는 점차 확대되어 왔다고 말합니다. 

스미스의 이런 생각은 새롭고 획기적인 정책 기반이 되어 영국은 자유무역에 앞장서게 되었고 그 결과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내 책 '죽은 스미스와 살아 있는 경제 기자의 대화' 표지.

이 밖에도 ‘국부론’에는 자유의 가치, 자유와 행복의 관계를 설명한 부분이 많지만 이 책을 단지 ‘보이지 않는 손’과 ‘각자의 이기심’이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임을 설명하는 책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오해가 여러 사람에게 그를 ‘자본주의적 폐해의 원흉’으로까지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생존 당시 자본가의 이기심과 탐욕에는 제동을 걸어야 한다며 자기 주변 자본가들의 탐욕을 비판한 글을 보면 오히려 그가 자본주의 비판의 시조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수의 하인을 유지하면 가난해지나 다수의 제조공을 고용하면 부자가 된다”며 기업인의 활동을 사회의 풍요와 연결한 그는 곧바로 “고용주들은 노동임금을 현재 수준 이상으로 인상하지 않기 위해 언제나 어디서나 일종의 암묵적이지만 끊임없는 통일된 단결을 맺고 있다”라고 자본가들을 비판했습니다. 지금 들어도 자본가들의 등골이 서늘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서운 질타입니다. 

이외에도 삶과 사상에서 우리의 성찰을 요구하는 많은 흔적과 기록을 남긴 애덤 스미스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잘못 알려졌습니다. 잘못 알려진 게 아니라면 덜 알려졌습니다. 

2008년 찰스 다윈 탄생 200년을 기리기 위해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 성대한 기념행사와 관련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과학은 물론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과 인문학 분야에서도 인류는 그의 ‘진화론’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찬사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스미스가 인류의 의식과 문명에 끼친 영향도 그 못지않을 겁니다. 어떤 학자는 다윈이 진화론에 착수하기 전에 국부론을 읽었다는 증거가 있다는 말로써 스미스의 위대함을 강조합니다.

나는 오늘 스미스 선생 탄생 300년을 맞아 더 많은 한국 사람들이 더 쉽게, 더 깊게 그의 사상과 삶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썼고, 그의 탄생일인 오늘에는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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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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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 (116.XXX.XXX.129)
밑줄 쳐 가면서 열심히 읽었습니다.
이 내용을 인용해 한동안 잘난 척 좀 하겠습니다. ㅎ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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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7 17:12:17
0 0
김동환 (218.XXX.XXX.181)
정선생님
글 잘읽었습니다,

혹시 스미스와 제임스와트와 연결성은 없는지요??

제임스와트 가 운송 도구를 발명 하였지만 자본가를 만나지 못하여 헤메이고 있을때 개인의 부가 국가의 부를 이룰수 있다며 제임스 와트에 적극 투자할것을 아담 스미스가 자본가들에게 권유 했다고 하던데요 사실인지요??

seea@hanmail.net
김동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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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5 11:48:59
0 0
trout (116.XXX.XXX.121)
두 사람이 글래스고 대학에 함께 있었던 건 맞습니다. 스미스와 와트가 가까웠던 것도 사실이고요. 운송도구와 관련된 이야기는 제가 처음 듣는 거라 자신있게 답을 못 드리겠네요. 혹 알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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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5 11:56:34
0 0
김동환 (180.XXX.XXX.132)
고맙습니다,
운송도구는 철도를 건설하려했으나 자본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에 처해 있을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답변달기
2023-06-06 22:38:27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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