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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릭 미술관의 두 초상화: 토머스 모어와 토머스 크롬웰 (하)
허찬국 2023년 06월 01일 (목) 00:00:03

이 글은 5월 22일의 (상)편에 이어집니다. 뉴욕의 프릭 미술관에는 영욕이 얽혀있던 인물 토머스 모어와 토머스 크롬웰의 초상이 걸려있었습니다. 이들의 활동 시기에 영국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후폭풍과, 첫 왕비 스페인 공주 캐서린과 이혼해 앤 불린과 결혼하려는 헨리 8세 때문에 어수선했습니다. 로마 교황이 이혼 허가를 거부하자 그 책임을 물어 대법관 울지 주교를 파직합니다. 주교는 자신의 법률 및 재무 대리인이었던 변호사 크롬웰의 후견인이었습니다. 

​울지에 이어 대법관 자리에 오른 모어는 이단인 신교(Protestant)를 영국에서 발본색원하는 데 열성을 쏟습니다. 당시 가톨릭은 성경을 번역하는 것과 일반인이 읽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루터의 글이나, 영국 신학자 윌리엄 틴들이 영어로 번역한 신약성경을 소지하거나 퍼트린 자는 혹독한 고문과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지금의 벨기에 지역에 숨어 지내던 틴들도 스페인 세력에 검거되어 화형에 처해집니다. 모어는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하고 고행자가 입는, 피부를 긁는 거친 모직 셔츠를 입는 등 극단적 신앙생활 방식을 실행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신이 늘 고통을 겪고 있으니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게 별일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다른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유토피아」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요. 화가 홀바인은 이 시기 영국을 처음 방문해 모어의 지인 네덜란드 태생의 성직자 및 학자 에라스무스의 소개로 알게 된 후견인 모어의 초상을 그렸습니다.

크롬웰은 울지가 몰락한 후에도 그를 계속 돕습니다. 헨리 8세는 의리와 능력을 높이 사 그를 가까이 두기 시작했고 오래지 않아 자신의 최측근으로 삼습니다. 크롬웰은 내심 종교개혁 운동에 동조하였습니다. 생각이 비슷한 모어의 후임 대법관, 캔터베리 대주교 등과 협조하여 멘토였던 울지가 실패한 헨리 8세 이혼 난제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의회의 입법을 통해 국왕이 왕국 내 모든 일에 대해 신성한 권리를 갖는다는 ‘왕위지상권(Royal Supremacy)’을 수립해 영국의 교회를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독립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로마의 교황(Pope)은 ‘로마의 한 주교(A Bishop in Rome)’로 격하되고 영국 내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어집니다. 캐서린 왕비와의 결혼은 무효로 선포되고, 적법하게 헨리 8세와 결혼한 앤은 왕비가 됩니다. 이 시기에 두 번째로 영국에 온 홀바인은 크롬웰의 초상을 그리고, 이후 왕실의 화가가 됩니다.

 
토머스 모어(왼쪽), 헨리 8세(중앙), 토머스 크롬웰(오른쪽). 모두 한스 홀바인의 작품  

영국 기존 교회가 모두 가톨릭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런 변화에 반발이 클 수밖에 없었지요. 실제로 영국 교회의 여러 성직자들은 교황의 입장을 반영해 왕의 이혼과 새 결혼을 반대하는 여론을 조장하는 데 앞장섭니다. 이러한 정서를 확실히 잠재우기 위해 모든 신민(臣民)이 ‘왕위지상권’을 받아들인다는 서약을 하도록 법을 만들고 이를 거부하면 반역죄로 처벌할 수 있게 합니다. 

모어가 서약을 거부합니다. 고위직을 지낸 명망가라 어떻게 처리할지가 골칫거리지요. 크롬웰은 국사범 감옥인 런던 타워에 갇힌 모어를 여러 번 찾아 서약을 설득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모어는 자신이 악의가 없고 남에게 해를 끼칠 처지가 아닌데 살려주어도 되지 않느냐고 합니다. 크롬웰은 모어의 집요하고 잔인한 행보를 일깨워줍니다. 심한 고문에 몸이 망가져 걷지 못해 화형이 집행되었을 때 의자에 묶여 끌려갔던 혐의자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야외에 설치된 기둥에 이틀간이나 묶어두었던 일을 상기시킵니다. 성질이 불같은 앤 왕비는 모어의 비협조가 근본적으로 자신을 왕비로 인정하지 않아서라고 격분합니다. 헨리 8세가 모어를 단죄하라고 크롬웰을 다그치는 소설의 장면은 왕의 냉정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크롬웰은 모어의 로마 교황에 대한 충성심과 영국 교회의 수장(首長)이라는 왕의 지위에 대한 혐오는 널리 알려져 있어 도덕적으로는 죄를 묻는 게 쉬우나, 법적인 관점에서는 묵비권 행사에 기반이 약해 유죄 판결이 쉽지 않다고 털어놓습니다. 왕은 가차 없이 쏘아붙입니다. “내가 공을 쉬운 일 하라고 기용하였는가? 아이고, 예수님 천진한 소인을 불쌍히 보소서! 나는 이 땅의 역사에서 너의 신분 출신의 그 누구도 오르지 못한 지위까지 자네를 높여주었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자네가 멋있거나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 줄 알아? 크롬웰 선생, 당신이 자루에 가득 든 독사들처럼 영민하기 때문이야. 그러니 나에게 뱀 같은 짓 하지 말라. 나의 결정을 알았으면 가서 실행에 옮기도록 하라. “(「Wolf Hall」, p.631) 

크롬웰은 재판을 각색하여 결국 배심원단의 유죄 판결을 얻어내고, 1535년 7월 모어는 참수됩니다. 헨리 8세는 왕자를 낳지 못하는 데다 관계가 소원해진 앤 왕비를 그 이듬해에 여러 죄목으로 참수형에 처하고, 앤 왕비의 궁녀였던 제인 시모어와 결혼합니다. 아들을 얻지만 시모어도 출산 후 사망합니다. 그 후 3번 더 이혼과 결혼을 거듭하며 다른 왕비를 한 명 더 참수했고, 재위 말기에 자제심을 잃고 크롬웰마저 처형한 후 크게 후회했다고 합니다. 

홀바인 초상화의 대상 모어와 크롬웰은 매우 다른 인생 궤적을 따랐습니다. 모어는 명문가 출신으로 출세 가도를 순탄하게 밟았고, 당대 지식인들과의 교류로 유럽 가톨릭 지식인 사회에서 명성이 높았지요. 반면 크롬웰은 주정뱅이 대장장이 가정에 태어나 10대 때 가출하여 유럽으로 건너가 용병으로 출발해 각지에서 사업가, 은행가, 법률가로 실력을 쌓은 뒤 영국에 돌아와 승승장구합니다. 영국에서도 이 두 토머스에 대해 평가나 묘사가 일정치 않고, 모어를 점잖은 현인, 크롬웰을 권모술수가로 보는 시각도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작가 힐러리 맨텔의 영웅 크롬웰은 엄격한 신분사회의 장벽을 극복한 능력과 판단력이 뛰어난 법률가이자 사업가였으며 좀 더 합리적이며 따뜻한 세계관을 지닌 인물입니다. 

저주, 내세(來世) 등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본래 가톨릭 신앙을 보유한 헨리 8세는 영국 교회의 수장이 되어 원하던 이혼과 결혼을 했고,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여 재미를 보았지만 씀씀이가 커 사후 큰 빚을 남겼습니다. 종교개혁과 같은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왕위지상권을 정립해 가톨릭교회를 몰아낸 헨리 8세는 그 후 스페인의 보복을 걱정해야 했지만, 가톨릭 종주국 스페인은 무슬림 세력과의 충돌로 여력이 없었던 것이 다행이었지요. 

런던 타워에 갇힌 모어는 크롬웰과의 대화에서 출신 신분을 들먹이며 분풀이를 하지요. 크롬웰은 자신이 모어처럼 내세와 영적 세계에 빠져있지 않아 다행이라며 모어에게 현세를 개선할 생각은 안 해 보았냐고 묻습니다. 크롬웰과 동조자들이 이루어낸 종교개혁은 어찌 보면 신분 사회의 폐해와 흑사병 같은 재해에 찌든 현세의 고달픈 삶에 더해, 내세와 종교적 양심의 일까지 교회의 엄격한 구속에 얽매였던 당시 백성들을 풀어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토머스 크롬웰은 대단한 인본주의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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