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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로 남은 '5월신부' 제자의 결혼식
함인희 2023년 05월 26일 (금) 00:00:14

올해로 스물여덟 해, 교단에 서는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자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습니다. 교수로 부임한 지 3년쯤 지났을 때인데 연구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교수님 저 노미순입니다. 91학번이요. 기억하시죠? 교수님께 특별한 청이 있는데 한번 찾아뵈어도 되겠습니까?” 

며칠 후 제자가 결혼을 약속한 신랑감을 대동하고 학교로 왔습니다. 결혼식 날짜가 잡혔는데 축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하러 왔다더군요. 절대로 주례사가 아님을 강조하면서요. 순간 처음 만난 신랑감 앞에서 못하겠노라 손사래 치자니 제 체면이 말이 아닌 것 같아, 대신 궁색한 질문을 했습니다. “신랑 신부 부모님도 여자 교수 모시는 것 알고 계시는 거야?”

제자 이야기론 처음부터 끝까지 결혼식 모든 순서를 두 사람이 결정했기 때문에 주례든 축사든 두 사람이 알아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답니다. 명문대 한문학과 졸업 후 대기업 전자회사에 입사했다는 신랑감의 독특한 이력에 반한 나머지, 덜컥 축사를 해주겠노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결혼식 당일까지 후회에 후회를 거듭했지만 말입니다.

제자 부부는 결혼식장으로 강서구에 위치한 청소년 회관을 빌렸습니다. 그날 신랑과 신부는 고운 빛깔에 우아하면서도 심플한 디자인의 한복을 차려입었고, 신부는 머리에 화관을 썼습니다. 워낙 제자가 후리후리한 키에 눈망울이 커다란 서구형 미인이었기에 화관 쓴 모습이 꼭 천경자 그림에 나오는 주인공을 연상케 했습니다. 

당시로선 흔치 않았던 신랑 신부 동시 입장 후 결혼식이 시작되었는데요, 첫 순서로 신랑과 신부의 절친이 차례로 나와 그날의 주인공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 친구의 재치 있는 소개 덕분에 하객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빵빵 터졌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 다음 신부 어머님이 나오셔서 신랑 신부를 위해 시를 낭독하셨답니다. 김용택 시인의 <내게 당신은 첫눈 같은 이>를요. 딸에겐 사위가, 사위에겐 딸이 첫눈 같기를 바라는 당신의 간절함을 담으셨을 테지요. 한데 어머님의 시낭송이 프로페셔널했더라면 재능기부하러 나오셨구나 했을 텐데, 정말 아마추어답게(?) 적당한 사투리에 떨리는 목소리로 온 정성을 다해 시를 읊으시는 통에 울보 신부가 끝내 눈물을 지었답니다. 

그리고 다음 차례가 저였는데요, 축사랍시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다만 가능한 한 짧게, 유머를 담아 지루하지 않게, 그래도 가슴 뭉클한 대목은 있어야지 다짐했던 기억은 있습니다. 축사가 끝나자 신부가 마이크를 잡더니 양가 부모님과 하객들 그리고 어려운 걸음 해준 저를 위해 노래를 불러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부른 노래가 <오월(원래는 시월인데 개사(改詞)를 했네요)의 어느 멋진 날에>였지요. 신부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콧수염 기른 성악가 김동규 못지않게 매력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노래를 끝낸 신부가 제게 성혼 선언문 낭독을 부탁해서 얼결에 두 사람이 신랑 신부가 되었음을 만천하에 공표했습지요. 

당시는 결혼식장마다 커다란 비디오를 어깨에 멘 촬영기사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통에 하객들이 눈살을 찌푸리곤 했었는데, 어쩐 일인지 제자의 결혼식엔 비디오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전문가급 실력을 자랑하는 신랑 후배가 스냅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었답니다. 비디오 물증을 남기지 않았던 제자의 결혼식은 오히려 입소문을 타고 전설로 남았다는 소식을 나중에 전해 들었습니다. 집들이 때 가보니 제자네 집에는 정말 TV가 없더라구요. 대신 책벌레 부부 아니랄까봐 거실 한편에 바퀴 달린 책꽂이가 무려 다섯 겹이나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결혼식 비용을 대폭 아낀 제자 부부는 신혼여행만큼은 호사를 부리자고 해서 거액을 들여 몰디브를 다녀왔다네요. 신혼여행 패키지에서 만났던 중매혼 커플들은 서로 서먹해하며 신랑은 신랑끼리, 신부는 신부끼리 어울려 놀더랍니다. 신부들 관심은 명품 아니면 보석, 신랑들 대화는 부동산 아니면 주식이었다네요. 신혼여행 끝나고 가이드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답니다. “두 분이 자전거 타고 해안가를 달리던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오래오래 그 모습 간직하길 바랄게요.”

이후 아들 둘 낳고 전투하듯 산다며 가끔 소식을 전해왔었는데, 남편 따라 해외 주재원으로 나간다는 소식을 끝으로 제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어느새 오십대로 접어든 제자는 그 나이에도 왠지 화관이 잘 어울릴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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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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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선 (1.XXX.XXX.223)
함인희 교수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제가 2년쯤 전에 발표한 수필에 함교수님의 글을 인용한 부분이 있어서
그 글을 생각하면서 많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그분의 메일주소를 알려주실 수 있다면
저의 수필집에 수록된 그 글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가능할지요?
제 메일로 <자유칼럼>이 늘 오고 있으니 저의 메일주소가 저장되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고맙습니다.
이혜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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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6 15:34:22
0 0
103227 (221.XXX.XXX.151)
이혜선님~~~ 감사합니다.
자유칼럼 대표님께서 혜선님 이메일 주소를 남겨 주셨기에
제가 직접 이메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름다운 인연이 이어지길 고대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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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7 17:04:13
0 0
노경아 (116.XXX.XXX.129)
노미순씨의 지혜가 아름답습니다. 노가들이 대체로 좀 생각이 깊고 돈은 꼭 필요한 데만 제대로 잘 쓴답니다. 으쓱으쓱 ㅎㅎㅎ
교수님 제자답게 그녀는 지금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잘 살 것 같아요.
마음 따듯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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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6 10:08:58
0 0
임철순 (222.XXX.XXX.25)
실명을 막 이렇게 밝혀도 되는 거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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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9 17:36:54
0 0
노경아 (116.XXX.XXX.129)
글 속에 이름이 있길래, 심지어 저와 같은 노가이기에 반가워서 막 밝혔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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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0 14:05:13
0 0
103227 (221.XXX.XXX.151)
아, 정말 부장님과 같은 성씨 네요. 저희 함씨처럼 흔치 않은 성인데...

얼마 전 입대한 조카는 아빠 성 이씨 대신 엄마 성 함씨를 따르고 싶다고 한답니다. 왠지 있어보인다나 뭐라나... ㅋㅋㅋ

감사하와요. 블루베리 수확하고 나면 데이트 신청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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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7 16:59:07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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