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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릭 미술관의 두 초상화: 토머스 모어와 토머스 크롬웰 (상)
허찬국 2023년 05월 22일 (월) 00:01:00

초상화는 개인적, 역사적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오래전 같은 때와 장소에 살며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얽혀있는 인물들의 초상화가 한 장소에 전시되는 경우가 있지요, 이 경우 아는 만큼 드라마가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십여 년 전 뉴욕의 프릭 미술관(Frick Collections)에서 처음 보았던 토머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와 토머스 크롬웰(Thomas Cromwell, 1485~1540)의 초상이 이런 경우입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 유럽 대륙과 영국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화가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1497~1543)의 작품입니다, 두 토머스는 영국 헨리 8세(1491-1547)가 중용했으나 결국 그에 의해 참수형에 처해졌다는 공통점이 있는 인물들입니다.

원래 부호의 저택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이라 관람객을 압도하는 뉴욕의 대규모 미술관들과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높이 평가받는 다양한 예술품이 전시된 곳인데 몇 년 전부터 원래 미술관이 증축 공사 중이라 현재는 다른 곳으로 전시가 이전되었습니다. 특히 작은 분수와 초록색 반려식물, 조각이 있는 내원(內苑)은 상당히 편안한 느낌을 주어 복잡한 맨하탄 중심부에 있다는 것을 잊게 해주었습니다. 전시실 중 거실처럼 꾸며진 큰 방 벽난로를 가운데 두고 두 토머스의 초상이 마주보게 걸려 있었습니다. 

   
사진 1, 프릭 미술관 거실 / 사진 2, 토머스 모어 /사진 3, 토머스 크롬웰

동행한 필자의 딸은 역사를 공부해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로 대표되는 튜더(Tudor) 왕조에 대해 잘 알아 두 초상화의 의미를 읽었지만, 필자는 모어를 옛날 읽다 만 「유토피아」의 저자로 막연히 알았고, 토머스 크롬웰은 몰랐습니다. 그 후 영국에 갔을 때 역사적 장소들을 방문하는 등 조금씩 더 알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딸이 준 역사 소설을 읽고서 나란히 걸린 두 토머스 초상화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영국 작가 힐러리 맨텔(Hillary Mantel)이 2009년 출간한 크롬웰이 주인공인 역사 소설 「울프 홀(Wolf Hall)」입니다. 3부로 구성된 연작의 첫 소설인 이 책은 높이 평가받아 2012년 부커상을 받았습니다. 3부작의 마지막 책은 저자가 타계하기 2년 전인 2020년에 출판되었습니다. 17세기 청교도혁명으로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 올리버 크롬웰은 토머스 크롬웰 누나의 증손자입니다.

토머스 모어의 처형으로 끝나는 「울프 홀」의 배경은 마르틴 루터가 독일에서 시작한 종교개혁에 따른 혼란과, 튜더 왕조의 두 번째 왕 헨리 8세의 이혼과 재혼입니다. 왕세자인 형이 요절하자 왕이 되었고, 형수였던 스페인 공주 캐서린(또는 카타리나)과 결혼하지요. 왕실간의 혼인은 순전히 정략적 이유로 이루어졌고 스페인은 유럽의 최대 강국이었기 때문에 이런 물려받기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스페인은 독실한 가톨릭 국가였고 교황의 제일 중요한 후원자여서 교회는 이 결혼을 적법하다고 허가했습니다. 십대 후반에 결혼하여 얻은 자식 중 메리 공주 한 명만 남습니다. 왕세자를 원했던 헨리 8세는 결혼 후 20여 년이 지나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고 궁녀 앤 불린과 재혼하고자 합니다. 가톨릭시대에 이혼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추진했던 것은 교회와 유럽의 다른 왕실, 그리고 왕실의 인척들이 정당함을 인정하는 적자(嫡子)를 낳아 왕위를 승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당시만 해도 자신의 선대에서 왕좌를 두고 벌어졌던 피비린내 나는 내전(장미의 전쟁)의 기억이 생생했습니다. 

결혼 무효화 청원의 근거는 왕비가 헨리 8세의 형 아서와 결혼하며 순결을 잃었으며, 형수와 결혼하는 것은 성경에 어긋난다는 것이었지요. 캐서린 왕비는 아서와 정상적 초야를 치르지 않았다며 이를 부인합니다. 캐서린 왕비의 삼촌인 스페인 왕 카를 5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칭호도 갖고 있어 교황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했습니다. 그러니 백방의 외교적 노력이 결실을 거두지 못합니다. 총대를 메었던 최고위직 관리 대법관(Lord Chancellor) 울지는 파직되고 재산을 몰수당합니다. 고위 성직자였던 그는 헨리 8세 즉위 후 오랫동안 최측근이었고, 울지의 법률·재무 분야 대리인 및 자문역을 하던 변호사 크롬웰의 후견인이었습니다. 왕은 울지 주교의 거처였던 런던 근교의 햄프턴 성(Hampton Court)을 몰수한 후 앤 불린에게 선물했습니다. 그 성은 지금도 존재하며 관광명소로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지요.

「울프 홀」의 앤 불린은 상당히 명석하고 야심찬 사람입니다. 헨리 8세를 휘어잡아 주요 관직·성직 인사에도 깊이 관여하며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을 적극적으로 추진합니다. 그녀는 헨리 8세와 오랫동안 연인관계를 유지했지만 허신(許身)을 하지 않아 왕의 속을 태웠고, 바람기 많은 왕은 그녀의 언니 등 다른 여인들과 잠자리를 같이했다고 합니다. 이미 성장한 서자도 있었습니다. 앤 불린은 울지 주교가 자신을 싫어해 이혼 허가를 얻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생각해 적대시합니다. 하지만 울지의 측근이었던 크롬웰은 수완이 뛰어나다는 명성에 동조자로 삼기 위해 가까이 받아들입니다. 

(이 글의 하편은 6월 1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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