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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종이니 매우 치세요.”
임철순 2023년 05월 15일 (월) 00:15:34

당송팔대가 중 한 명인 한유(韓愈, 768~824)에 의하면 스승은 도를 전수하고[傳道], 학업을 교수하며[受業], 의혹을 풀어주는[解惑] 사람입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그의 유명한 글 ‘사설(師說)’은 “사람이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라면 그 누가 의혹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의혹이 있는데도 스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의혹은 끝내 풀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로 이어집니다. 

좀 더 인용합니다. “나보다 먼저 태어나서 도를 아는 것이 본래 나보다 앞선다면 찾아가서 스승으로 삼을 것이며, 나보다 뒤에 태어났더라도 도를 아는 것이 또한 나보다 앞선다면 찾아가서 스승으로 삼을 것이다. 내가 도리를 배우는 것이니 어찌 그의 출생이 나보다 먼저인지 나중인지를 알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귀하고 천함도 없으며, 나이가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도가 있는 곳이 스승이 있는 곳이다.”

아무리 나이가 적고 신분이 낮더라도 나보다 나으면 다 스승입니다. 그런 스승에게서 배우려면 질문을 해야 합니다. 질문하지 않으면 내 의혹과 답답함과 궁금증을 알릴 수 없고, 풀 수도 없습니다. “스승을 고르는 데 3년”, 이른바 택사삼년(擇師三年)이라는 말은 나의 의문을 해결해줄 스승을 그렇게 신중하게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논어는 “영민하고 배우기를 좋아해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敏而好學 不恥下問]는 게 공부하는 자세라고 가르칩니다. 또 “널리 배우고 뜻을 독실하게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라고 알려줍니다. 청나라 사람 금영(金纓, 일명 난릉선생)이 엮은 격언집 ‘격언련벽(格言聯璧)’도 "독서에서 귀히 여기는 것은 능히 의문을 갖는 것이다. 의문을 가지면 열리고 펴지게 된다."[讀書貴能疑 疑乃可以啓信]라고 말합니다. 이 책에 궐의호문(闕疑好問)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독서할 때 의심나거나 잘 알 수 없는 부분은 그대로 비워두고, 묻기를 좋아하라는 뜻입니다. 모르는 걸 혼자 멋대로 생각하지 말고, 스승이 될 만한 분에게 질문하라는 의미입니다.   

늘 의문을 품고 스승 앞에 나가지 않으면 제대로 배울 수 없습니다. ‘​예기(禮記)’의 학기(學記)에는 “잘 배우는 사람은 스승이 가르치기 쉬워 학업을 두 배로 이루고, 스승을 따르며 그 공을 스승에게 돌린다.”[善學者 師逸而功倍 又從而庸之]는 말이 나옵니다. 이 글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스승을 종에 비유한 대목입니다. “종은 작은 것으로 치면 작게 울리고 큰 것으로 치면 크게 울린다.”[叩之以小者則小鳴 叩之以大者則大鳴]는 것입니다. 질문이나 사고의 수준이 낮으면 그 수준에 맞는 답을 듣고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범종의 소리는 그윽하고 웅숭깊어 아주 듣기 좋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종을 치는 망치가 작으면 그 소리가 클 수 없고, 멀리 가지 못하고, 여운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기’는 “잘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스승이 부지런해도 그 공이 절반에 불과하고, 스승을 따르면서도 원망한다.”[不善學者 師勤而功半 又從而怨之]고 말했을 것입니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의 ‘덕산 시냇가 정자의 기둥에 쓴 시’[題德山溪亭柱]를 읽어봅니다. “천 석들이 큰 종을 보게/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네/어떻게 하면 지리산처럼/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請看千石鍾 非大扣無聲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이 시의 주제는 사제간의 배움과 가르침에 한정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천 석들이 큰 종이 산천을 울리도록 칠 수 있는 ‘의문의 망치’를 갖춘 사람은 많은 배움을 쌓아 스스로 큰 종과 같은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두 번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와 같은 의미로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따지고 보면 스승도 제자라는 종을 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질문입니다. 지난해 타계한 이어령(1934~2022) 전 문화부장관은 팔순을 맞아 책을 냈을 때, 숱한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하느라 기자들의 질문에 시달렸습니다. 팔순을 맞은 소감, 앞으로의 계획 등 천편일률적이고 판에 박힌 질문에 지쳤던 그는 생각지도 않은 질문을 한 기자가 정말 반갑고 고마웠다며 몇 번이나 나에게 그 기자 칭찬을 했습니다. 

질문을 잘해야 하는 것은 학생이나 기자만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자신에 대해, 상대에 대해, 이 시대와 사회에 대해, 나라에 대해 적확하고 시의에 맞아 울림이 큰 질문을 할 수 있어야 마땅하지요.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제자, 질문자의 자세를 가다듬어보게 됩니다. 나는 인연이 없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스승 역할을 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이나 제자로 머무를 수 있다면 정말 안심할 만한 일이지요. 다만 가느다란 나무젓가락 하나 들고 종을 치려 들면 무슨 소리가 날까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스승이나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종과 같다고 할 수 있으니 아주 큰 망치로 간단없이 매우 쳐야 할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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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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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수 (39.XXX.XXX.105)
질문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시는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쳇봇이 사용이 많아지면서 질문의 중요성은 더 해 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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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5 10:14:25
0 0
임철순 (221.XXX.XXX.101)
답이 열흘이나 늦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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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5 20:43:38
0 0
박종진 (118.XXX.XXX.224)
이어령선생 팔순 때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한 기자의 질문이 궁금합니다.
답변달기
2023-05-15 08:13:50
0 0
임철순 (221.XXX.XXX.101)
그게 그게... 유감스럽게도 내용은 잊어버렸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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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5 20: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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