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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일본
권오숙 2023년 05월 01일 (월) 00:25:04

지난 며칠 동안 연구 자료 수집을 위해 도쿄를 다녀왔습니다. ‘한중일 셰익스피어 초기 수용 비교연구’ 논문을 준비 중인데, 이 논문에 필요한 자료들은 인터넷을 통해서는 구할 수 없는 고문서들이기 때문에 관련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들을 직접 방문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관련 자료들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동경대학교, 와세다 대학교, 일본 국회도서관을 방문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일 관계가 워낙 경색되어 ‘혐한’이니 ‘반일’이니 하는 단어들이 온통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터라 다소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사실 일본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거의 되지 않는 데다 나의 일본어 실력은 형편없습니다. 그렇기에 설사 내가 원하는 자료들이 그 도서관에 있다 한들 제대로 찾아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무모한 방문이 될 수도 있겠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도쿄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동경대학교부터 찾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걱정한 대로 대실패였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세 도서관의 이용 허가를 요청하는 서류를 미리 발급받아 갔지만, 동경대학교 같은 경우 3일 전에 온라인 예약을 해야 이용할 수 있다는 원칙을 미처 체크하지 못한 탓입니다. 도서관 직원들이 당일이라도 예약 신청을 하라고 했지만 사흘 후면 출발 예정이어서 너무 무리한 일정이었습니다.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니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하지만 동경대학교에 대한 첫인상이 실망스러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물어물어 교문에 당도했을 때 그 넓은 캠퍼스에서 중앙도서관을 찾는 게 막막했습니다. 미리 핸드폰으로 캠퍼스를 둘러보기는 했지만 워낙에 길치인 데다 교문이 여러 개여서 전혀 방향을 알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문을 지키고 계시던 나이 지긋하신 경비원님께 길을 물었습니다. 그분은 경비 초소까지 나를 데려가서 대학 캠퍼스 지도를 한 장 꺼내왔습니다. 그리고는 벽에 대고 우리가 있던 장소와 종합도서관 건물을 동그라미 친 뒤 펜으로 그으시며 가는 길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설명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지도를 들고 무사히 도서관을 찾아갈 수 있었고, 그의 따뜻한 친절이 내게 남은 동경대학교의 첫 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친절은 도쿄에 있는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와세다대학을 가는 날 아침 지하철에서 화장실을 찾았습니다. 몇 분 동안 두리번거리며 걸어도 화장실 표시가 보이지 않는데 남자분이 막대 걸레를 들고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화장실 위치를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설명을 하려고 하더니 이내 포기하고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청소하던 막대 걸레를 들고 앞장섰습니다. 조금 걷더니 내가 급해 보였는지 뛰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덩달아 뛰었습니다. 왜 그가 설명을 포기했는지는 화장실에 도착해서야 알았습니다. 화장실은 말로 설명하기에는 제법 멀고 복잡한 곳에 있었습니다. 뛰면서 나는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막대 걸레를 들고 뛰는 그 일본인과 뒤따라 뛰고 있는 나의 모습이 너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어 실력이 부족해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과연 그분이 내가 얼마나 감사하고 감동했는지 느꼈을까요? 

   
  와세다 대학교 중앙도서관  

놀랍게도 와세다대학교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사전 조사를 해보니 다카타 기념연구 도서관(S. Takata Memorial Research Library)에 관련 자료가 많다고 나와서, 먼저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그 자료실을 이용하려면 중앙도서관에서 허가증을 받아와야 한다고 합니다. 당황하고 난감해하는 나를 보고는 사서 한 분이 중앙도서관을 함께 가서 사정을 설명해주겠다고 나섰습니다. 대략 7,8분을 함께 걸어가면서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사서라면 나도 이렇게 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중앙도서관에 도착하여 설명을 듣다 보니 내게 꼭 필요한 쓰보우치 쇼요(坪内逍遥, 1859~1935) 컬렉션이 그곳에 있다고 해서 거기서 자료 조사를 하였습니다. 쓰보우치 컬렉션 서가를 찾을 때도, 라커에 짐을 맡길 때도, 필요한 자료를 복사할 때도 직원들은 정말 성심껏 도와주었습니다.

   
  일본 국회도서관 사서가 뽑아준 책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느낀 감동의 하이라이트는 국회 도서관에서였습니다.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일본어 자판의 컴퓨터에서 자료를 찾을 자신도 없어서 인문사회도서 세션의 사서에게 ‘Shakespeare in Japan’이라는 내 연구 주제를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사서는 한 서가로 나를 데려가더니 <일본 셰익스피어 총람>, <셰익스피어 사전> 등 네 권의 책을 뽑아 주었습니다. 딱 내게 필요한 도서들을 찾아준 사서가 말할 수 없이 고마웠습니다. 

흥분된 마음으로, 정신없이 그 책들을 훑어보고 있는데 아까 그 사서가 내게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특정 페이지에 종이 띠를 꽂은 책 한 권을 내게 건넸습니다. 종이 띠는 셰익스피어 일본어 번역과 번안의 역사를 정리한 챕터에 꽂혀 있었습니다. 책을 골라주고 돌아간 그녀는 내가 그 책들을 훑어보는 한참동안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일본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 학자여서 그렇게까지 도움을 준 것일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번 자료 조사 여행 내내 나는 일본 사람들의 친절과 도움에 감명을 넘어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라끼리는 서로 으르렁거리고, 치고받고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만난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몹시 귀찮게 구는 한국 학자에게 성심을 다해 도움을 베푸는 따뜻한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혐한 감정이나 반일 감정을 부추겨 정치적 야욕을 채우려는 비열한 정치인들의 검은 속셈이 없다면, 어쩌면 두 민족은 과거의 아픈 역사를 일찌감치 청산하고, 서로 좋은 이웃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씁쓸한 의심이 들었습니다. 개개인은 이미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고 있는데 그걸 가로막고, 두 민족을 자꾸 멀게 만드는 특정 세력들이 있는 듯해서 그들이 밉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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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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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섭 (119.XXX.XXX.63)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한 작자들입니다.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우리나라는 왜놈들을 쳐들어 간 적도 없고 그들을 해친적이 없었는데 왜놈들은 고려 말 부터 조선초 임진왜란 일제 36년 동안 얼마나 많은 우리 동포를 학살하고 잔인한 살상을 했습니까. 그리고 독도만 해도 그들 초중고 교과서에까지 자기 섬이라고 허위 교육을 시키고 있으니 이런 못된 종속이 어디 있겠습니까? 독일은 지금도 유태인 학살자에 대하여 철퇴를 가하고 엄벌에 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놈들은 어쩜니까! 전쟁범을 안치한 야스크니신사를 경배하고 있지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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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1 17: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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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숙 (175.XXX.XXX.176)
일본인들을 모두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통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허위 교육으로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는 자들에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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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4 15:52:40
1 0
정병용 (220.XXX.XXX.57)
너무나 감명깊은 글 감사합니다.
일본사람들의 친절과 써비스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본받아 실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수님의 용기도 대단합니다. 오직 배움의 열정하나로 일본어실력도 미천하면서 감히 유명대학을 방문하여 탐구하려은 열정에 박수를 보넵니다. 허지만 일본을 멀리하려는 특정세력은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건행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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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1 11:28:48
1 0
권오숙 (175.XXX.XXX.176)
다소 무모한 저를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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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4 15: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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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수 (39.XXX.XXX.105)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소개 해 주셨네요.
공감합니다.
지적햇듯이 일부 정치인들이 죽창가나 부르며 정략적으로 한일관계를 이용하는 행태를 이번에는 과감히 선별 해서 서로 도우며 사는 이웃국가가 되엇으면 합니다.
이런 정도의 글을 써도 일부 친일파라고 지껄이는 분들이 있을 수 있으나 그러려니 하고 우리라도 진상을 알리도록 노력하시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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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1 09: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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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숙 (175.XXX.XXX.176)
아! 저는 일본의 정치인이건 한국의 정치인이건 자신들의 권력욕에 애꿎은 양국 국민을 이용하는 것에 화가 난 건데 친일파로 보일 수도 있다니...조금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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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4 15:5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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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o (27.XXX.XXX.94)
이웃 나라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고 우리말과 글을 배워 매년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일본인이 있습니다. 우리 애국가 4절까지 가사를 욀 정도로 집요한 사람이지요.
나라 안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치꾼들의 장난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정도의 동서 갈등, 지역 차별도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리 일반 시민들이 그들의 노림수에 속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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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1 07: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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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숙 (175.XXX.XXX.176)
말씀하신 대로 한일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 면면에 갈등을 헤집어 자신들의 입지를 세우려고 국민을 기망하는 존재들에게 농락당하지 않아야 할텐데...정신을 바싹 차리고 있기가 몹시 고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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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4 1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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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220.XXX.XXX.68)
공감합니다.
일본사람들이 잘하고 앞서는 것은 우리가 본받고 배워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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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1 0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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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숙 (175.XXX.XXX.176)
맞습니다, 저도 여행내내 "나도 이런 친절을 베풀 수 있을까?" 반문하며 성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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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4 1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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