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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같은 언론인, 문창재
임철순 2023년 04월 12일 (수) 00:00:59

11일 장례가 치러진 문창재(文昌宰)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은 1972년 1월부터 반세기 넘게 현역으로 활동해온 언론인입니다. 그는 6년 전 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계속하다가 지난 8일 낮 홀연히 타계했습니다. 평소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말해온 분답게 언론 한길을 걸어온 맑고 곧은 삶을 그는 이렇게 완성하고 갔습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위의(威儀)가 출중했던 헌헌장부가 특유의 빠르고 당당한 걸음으로 걷던 모습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성실하고 치열했던 역사작가·기자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강원도 정선의 산골짜기에서 태어나 양정고,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한국일보 도쿄특파원 사회부장 논설실장을 거쳐 정년퇴직한 뒤에도 내일신문 논설고문으로 칼럼과 시론을 써왔습니다. 또 가장 최근의 ‘징용 조선인은 전쟁 소모품이었다’ 등 우리 근현대사에 관한 저서를 여러 권 냈습니다. 암과 경주하듯 서두르면서 공들여 출간한 노작입니다. 이 모두가 경찰기자를 6년이나 해 아마도 우리나라 최장 경찰기자였던 경력에서 다져진 취재력과, 철저한 현장 확인의 노력을 통해 거둔 결실입니다. 

특히 도쿄특파원 부임을 계기로 남북한 문제와 6·25, 한일관계에 대해 폭넓은 관심을 갖고 천착하면서 많은 취재와 저술을 했습니다. 그는 도쿄특파원을 했음에도 일본에 기울지 않고 냉정과 중립, 객관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2월 17일자 내일신문에 쓴 시론 ‘정치권에 떨어진 폭탄 이재명 영장’이 그의 마지막 칼럼입니다. 한국일보 6·25 4반세기 특집으로 실린 그의 격전지 르포기사 ‘전진(戰塵)도 혈흔(血痕)도 절경에 덮이고 설악은 말이 없다’(1975.6.21)를 지금도 나는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 1975년 6월 21일자에 실린 문창재 기자의 르포기사.

 

  
2015년 4월의 어느 날.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문창재, 그의 한국일보 후배인 소설가 김훈, 김훈과 입사 동기인 필자, 곽효환 시인(현재 한국문학번역원장)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의 낭만 가객

문창재는 한국일보, 아니 언론계의 대표 가수였습니다. 야유회나 술자리를 비롯한 각종 모임에서 박수갈채와 앙코르를 받았던 명가수입니다. 부드러운 저음의 따뜻한 목소리로 그가 즐겨 부른 노래는 ‘가거라 삼팔선’(이부풍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 1948), ‘봄날은 간다’(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1954), ‘에레나가 된 순희’(손로원 작사, 한복남 작곡, 한정무·안다성 노래, 1954),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송창식 작사 작곡 노래, 1974), ‘낭만에 대하여’(최백호 작사 작곡 노래, 1994) 등이었습니다. 그가 마이크를 잡고 “아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나 “이름마저 에레나로 달라진 순희”를 열창하면 그 노래들은 바로 문창재를 위해 만들어진 가요같이 느껴졌습니다. 다시 듣고 싶습니다. 

언젠가 한국일보 야유회에서 노래 경연이 벌어졌을 때, 심사위원장이던 만화가 두꺼비 안의섭(安義燮, 1928~1994)은 “노래는 아주 잘하는데 박자가 제멋대로다”라고 평했습니다. 그는 풍금도 잘 치던 초등 교원 경력자여서 이런 평을 했겠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악보에 충실한 박자보다는 흥과 멋이 더 중요하지요. 이런 흥과 멋은 술자리에 특히 잘 어울렸습니다. 호방한 웃음과 함께 앉으면 “섞자(폭탄주 제조)”고 했던 문창재 형(한국일보 기자들은 선배를 형이라고 불렀습니다.)은 정말 술을 좋아하고 많이도 마셨으나 취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문창재(왼쪽)와 소설가 김훈.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이다.

옥이며 난이었던 '인향만리'의 품격 

시인이며 영문학자였던 희대의 주객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1898~1961)는 1953년 ‘명정(酩酊) 40년기’라는 책을 냈습니다. 술 마시고 노닌 이야기를 한바탕 질펀하게 풀어놓은 유쾌한 에세이입니다. 소설가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 1901~1981)는 그 책의 발문에 “수주의 인품은 청산의 흰 옥이요, 수주의 인격은 호젓한 유곡 속에 홀로 핀 난초”라고 칭찬했습니다. “수주가 술을 잘 마시니 술로써 경앙(敬仰)하는가. 아니다. 그 본연이 옥인 때문에 노소(老少)가 모두 수주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 바탕이 난초인 때문에 친구와 제자가 수주를 다시 한 번 아끼는 것이다.”라는 말이 이어집니다. 

문창재 형은 백옥이라기보다 맑고 연한 녹색의 비취 같았고, 난초에 비겨 말하면 인향만리(人香萬里)의 품격을 갖춘 분이었습니다. 나는 그가 뭔가 개인적 이익을 도모하거나 다른 사람과 싸우거나 얼굴 붉혀 입씨름을 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기는커녕 남의 말에 토를 달며 그게 아니라고 맞서는 것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생각과 주견이 없거나 무골호인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인품이 훌륭한 사람을 가리켜 옥인(玉人)이라고 하고, 그런 사람이 술에 취해 쓰러지는 걸 “옥산이 무너진다”[玉山頹]라고 표현합니다. 그런 사람이 죽으면 “옥 같은 사람을 어찌 묻으랴” 하고 슬퍼합니다. 문창재 형을 보내면서 이런 말들을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고전 ‘순자(荀子)’에는 “산에 옥이 있으면 초목도 윤이 난다”[玉在山而草木潤]는 말이 나옵니다. 그 윤기와 향기, 영롱한 아름다움이 길이 잊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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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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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흥 (14.XXX.XXX.37)
아! 문창재씨가 타계했습니까. 부드럽고 좋은사람이었는데..
임철순주필의 추모의글이 문찬재씨를 다시생각하게합니다.

한국일보가 배출한 훌륭한 언론이었습니다.
가족과 친지에게 위로의말을 전하며 이런 훌륭한 언론인을 기른 한국일보의전통이 살아나길 바랍니다.
박석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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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6 22:33:07
0 0
임철순 (220.XXX.XXX.222)
문창재형은 한국일보의 한 얼굴이었지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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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9 09:07:43
0 0
홍성남 (220.XXX.XXX.68)
오고 감이 바람일 것 입니다.
옥인의 명복을 빌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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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3 06:40:51
0 0
임철순 (121.XXX.XXX.154)
감사합니다. 벌써 1주일이 지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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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6 20:25:42
0 0
노경아 (116.XXX.XXX.129)
옥인께서 스러지신 걸 아직도 못 받아들이겠습니다. "노 부장~" 하고 다정하게 불러주시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정갈한 몸짓으로 부르시던 멋진 노래, 저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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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2 14:42:54
0 0
임철순 (121.XXX.XXX.154)
좀 더 자주 만나고 어울릴걸... 후회가 많이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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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6 20:26:46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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