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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와의 대화
김창식 2023년 04월 10일 (월) 00:00:44

지난 3월 10일 칼럼에서 여러 사과를 소개하고 그 사과들이 우리 삶에 끼친 영향을 이야기했죠. 그중에서도 한 번 더 맛보고 싶은 사과는 르네 마그리트의 사과입니다. 정확히 말한다면 연전 우리나라에서 특별전이 열린 적이 있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몇 점을 감상하며 화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군요.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이 다루었고, 인터넷에서도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르네 마그리트는 호안 미로나, 막스 에른스트, 살바도르 달리, 이브 탕기 같은 다른 초현실주의 유명 화가들처럼 사물 자체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보는 평범한 사물을 낯설게 배치하거나 사물 간의 결합을 엉뚱하게 연결해 충격을 안겨주는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을 사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마그리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이름이나 이미지는 대상이 갖는 그 자체(본질)를 적시할 수 없다. 대상은 그 이름이나 이미지가 갖는 똑같은 기능을 결코 완성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현실에서마저 그 대상이 지칭하는 대상이 바뀔 수 있다.”
작품의 제목과 내용은 서로 무관하다고 주장한 적도 있는 화가의 말인 만큼 수긍이 가는 발언입니다. 그런데 묘한 기시감이 있군요.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가 주장하는 기호론(Semiotics)이 생각납니다. ‘언어라는 기호가 인간의 사고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한다’는 발상의 전환과도 잇닿아 있어서요. 좀 헷갈리긴 합니다.더 깊이 들어가지는 말고 이쯤 해서 화가의 그림을 감상하도록 하죠.

#이미지의 배반(1929)
르네 마그리트를 떠올리면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큰 파이프 그림을 그려놓고 바로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고 써 놓았죠. 이상하네, 분명히 파이프처럼 생겼는데 왜 아니라고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그리트가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일까? 근데 파이프가 아니라는 화가의 말이 옳은 듯도 해요. ’파이프(자각적 해석)‘가 아닌 ‘그림(물질적 현실)’이어서요. 파이프가 아닌 것을 파이프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것이 이상하다면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것 아닐까요?

#피레네의 성(1959)
위태로운 허공에 떠 있는 바위가 불안정한 느낌을 안겨주는 그림입니다. 바위가 공중부양을 하다니! 우주의 교통 법규인 만유인력의 법칙을 무너뜨린 극한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그림이에요. 이 그림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에 나오는 판도라 행성의 산과 바위가 그러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에도 비슷한 이미지가 나옵니다. 현실에서도 그러한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건축가 그룹 MVRDV가 선보인 ‘워조코(WoZoCo)'라는 노인 전용 아파트입니다. 기둥 없이 공중에 떠 있는 건축물인데, 모든 가구의 일조권을 보장하기 위해 그렇게 지었다는군요.

#골콩드(1953)
‘겨울비’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그림입니다. 화면 가득 중절모에 레인코트를 입은 신사들이 공중에 위태롭게 떠 있는 그림입니다. 사실 허공에 꽂혀 있는 건지, 위로 올라가는 건지, 내려가는 건지, 멈춰서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제목에서 유추해볼 때 비처럼 쏟아지는 편이 더욱 그럴듯합니다. 이 그림 역시 다른 장르에 미친 영향이 크지요. 우선 키아누 리브스가 나오는 영화 ‘매트릭스’입니다. 이 영화의 빌런인 검은 안경을 낀 스미스 요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복제돼 등장하는 장면이 나오죠. 언뜻 웨더 걸즈의 노래가 들려오네요. “It's raining men, halleluja~(남자들이 비처럼 쏟아져, 할렐루야~)” 그런데 남자들이 비처럼 무더기로 쏟아지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일는지는 알 수 없네요. 할렐루야~

#연인(1928)
얇고 하얀 천이 맞댄 얼굴을 감싸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그림입니다. 화가 자신은 단순한 그림일 뿐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거듭 부인하고 있지만, 어릴 적 강물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어머니의 죽음이 모티프가 되었을 법하다는 평론가의 주장에 더 힘이 실립니다. 소셜 미디어에 소개되기도 했지만, 흰 천 뒤집어쓰고 키스하는 100여 년 전 그림이 ‘코로나 시대의 사랑법’을 예견한 듯도 합니다. 어찌 보면 오래전 지하세계나 암울한 먼 미래 수인(囚人)들의 사랑을 연상케 하는 이 그림이 아무리 가까운 척해도 결국 남남일 수밖에 없는 남과 여 사이 사랑의 간격을 꿰뚫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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