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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신비한 존재, 바다의 로망
정달호 2023년 04월 07일 (금) 00:13:37

거대한 몸집에다 생긴 모양과 행태의 신비로움 때문에 고래는 누구에게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호감을 가지게도 합니다. 넓고 푸른 바다를 자유롭게 누비는 고래는 많은 이에게 로망이기도 할 것입니다. 송창식이 부른 1970년대의 대히트송 '고래사냥'은 고래에 대한 젊은이들의 로망을 노래합니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를 잡으러 . . . " 이 노래는 당시 억누르는  듯한 사회 현실에서 고래사냥이라는 로맨티시즘을 통해 사람들의 답답한 심정을 달래 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고래, 하면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의 소설 '모비딕(Moby Dick)'을 떠올리는 이도 많을 것입니다. 소설에서 흰 고래는 복수의 대상으로 나오지만 세상의 모든 바다를 누비고 다니는 특별한 존재로서 정작  독자들에겐 막연한 로망으로 자리 잡았을지 모릅니다. 우리 세대는 중고생 때 동명의 영화를 보고 바다 끝까지 모비딕을 쫓는 외골수 에이해브 선장의 집념과 그를 따르는 선원들의 모험심에 고취되곤 했습니다. 

 '모비딕'(김석희 역본)의 서두에 나오는 '발췌록'에서 몇 문장만 인용해보겠습니다. "리바이어던(Leviathan, 거대한 해수/海獸)이 한 번 지나가면 그 자취가 번쩍번쩍 빛을 내니, 깊은 바다가 백발을 휘날리는 것처럼 보였다.(욥기)" "이따금 고래는 그 거대한 꼬리를 공중으로 치켜올리곤 했는데, 그러면 채찍을 휘두르는 듯한 소리가 5~6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들렸다.(윌리엄 스코스비)" "용감한 작살잡이가 고래를 공격하고 있는 동안에는 기운을 내라, 젊은이들이여, 너희들의 심장이 멎지 않게 하라!{낸터켓(Nantucket,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섬, 당시 미국 포경의 중심 항구)의 민요}"

고래는 요즘 어린이를 위한 만화나 장난감의 주제로서 인기가 높으며 또 일반적인 브랜드로도 많이 쓰입니다. 아마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간은 고래를 향한 어떤 열망을 간직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아무리 고래를 열망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고래를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고래가 나오는 영화나 다큐멘터리, 아니면 해안으로 밀려온 길 잃은 고래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바다로 헤엄쳐 나가는 뉴스 영상을 통해 고래를 볼 수 있을 뿐이죠. 

고래를 보려면 고래가 출현하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고래를 보기 위해 바다로 나가는 것은 전부터 하나의 관광산업이 돼 있기도 합니다. 하와이 섬과 폴리네시아의 루루투(Rurutu) 섬(일명 '고래의 섬') 등이 고래관광으로 유명하죠. '고래 보러 가기(whale watching)'는, 2008년에는 세계적으로 천3백만 명이 참여했으며 이에 따른 관광수입은 21억 불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동해안 장생포에 있는 고래박물관과 고래생태체험관도 사람들의 고래에 대한 열망을 어느 정도 달래줄 것입니다.

저는 고래와는 특별한 인연은 없지만 이집트 카이로 외곽의 사막에서 고래의 화석 뼈로 그 본 모습을 복원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없어도 길이가 7, 8미터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막에 고래뼈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이 지역이 한때는 바다였다는 걸 말해줍니다. 저의 외가가 있던 경북 영덕군 영해읍 병곡리 앞바다를 고래불이라고 하는데 이곳이 고래와 관련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입니다. 고려 때 이색(李穡)이 어렸을 때 상대산에 올라 병곡 앞바다에서 고래가 하얀 분수를 뿜으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지었다는 설이 있으니까요.​

인간이 고래를 잡기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래됩니다. 많은 수의 고래가 새겨진 울산 반구대 암각화(Bangudae Petroglyph)는 신석기시대인 BC 60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인류의 포경(捕鯨) 활동으로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고 합니다. 고대에 한반도 동해안 사람들이 고래 등 어류를 잡아 삶을 영위하던 모습을 강 위의 큰 절벽에 새긴 것이니 선인들의 기록 정신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역사적 가치가 큰 반구대 암각화가 점점 물에 잠겨 손상될 우려가 있어 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어 안타까운 바 있습니다.)

기록상 본격적인 포경 활동은 AD 875년 대서양에서 시작되었으며 16세기에 와서 포경 산업은 스페인과 프랑스 해변을 낀  바스크(Basque) 지역의 주력 산업이 됩니다. 17세기에는 포경 선단이 등장하면서 포경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달합니다. 당시 조명에 필수적이었던 고래기름 획득이 포경업의 주목적이었지만 포경 산업은 석유가 나기전 산업혁명기에 매우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18, 19세기에는 각국이 경쟁적으로 고래잡이에 나서 20세기 초반까지 매년 약 50만 마리가 잡혔다고 하죠.

대규모 어획으로 고래 자원이 바닥나게 되자 1969년에는 나라별로 포경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였고 1980년대 후반에는 전 세계적으로 예외적인 경우(조사·연구·생존 목적 등)를 제외하고는 포경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게끔 되었습니다. 포경이 아니라도 그물에 걸리거나 충돌에 의해 죽는 고래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19세기에 미국은 산업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고래기름에 대한 수요가 대폭 늘어나게 됩니다. 이에 따라 미국인들은 동부의 낸터켓 섬을 중심으로 포경 선단을 꾸려 대대적인 고래잡이에 나서게 되죠. 전 세계를 누비면서 고래를 찾아나서는 포경선들로서는 중간 기착지에서 물, 연료 등을 보급받는 일이 중요해졌습니다. 미국은 포경선의 중간 급유를 위한 기착지 확보의 일환으로 1850년대 일본을 강제로 개항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으로서는 대일 무역, 태평양 교두보 확보에 못지않게 자국 포경 선단의 보급기지로서 일본의 개항이 필요했던 것이죠. ​

    

포유류인 고래는 원래 육상 동물이었다가 4천9백만 년 전 육상의 먹이 부족으로 바다로 들어가 바다 동물이 되었으며 오랜 기간 진화를 거듭하면서 앞 두 다리는 지느러미가 되고 뒷다리는 점차적으로 소멸되었다고 합니다. 고래가 다른 물고기와 달리 호흡을 위해 한 번씩 수면 위로 나와야 한다는 것도 고래가 육상 동물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진화론상으로 고래와 가장 가까운 동물은 5천4백만 년 전에 분리돼 나간 하마라고 하죠. 

고래는 크게 나누어 이빨이 있는 고래(toothed whale)와 이빨 없이 수염만 있는 고래(baleen whale)로 나뉩니다. 이빨고래는 크고 작은 어류와 오징어 등을 잡아 먹고 살며 수염고래는 많은 양의 물을 들이켜서 크릴새우와 플랑크톤을 삼키고 물은 내뱉습니다. 이빨고래 중 가장 덩치가 큰 향유고래(sperm whale)는 90분까지 물속에 있을 수 있으며 대왕오징어를 찾아 3킬로미터 깊이까지도 잠수한다고 합니다. 고래 중 가장 공격적인 고래는 범고래(killer whale)인데 최근 범고래 한 쌍이 상어 20여 마리를 공격하여 간만 빼내서 먹었다는 뉴스도 있었죠.

이빨이나 수염 유무뿐 아니라 크기나 색깔, 행태, 습성에 따라 약 90여 종의 다양한 고래가 있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모비딕은 흰 향유고래인데 향유고래는 기름이 가장 많아 포경선들이 주로 추적하는 고래입니다. 향유고래의 내장에서 배출되는 용연향은 향료의 원료로 쓰일 만큼 귀한 물질이죠. 우리나라의 포경선들은 동해 바다에서 긴 수염 밍크고래(mink whale)를 주로 잡아 왔다고 합니다.

 

고래의 크기는 작게는 2미터에서 크게는 30미터나 되며 몸집이 제일 큰 고래는 푸른고래(blue whale)입니다. 고래는 많은 물을 들이켜기 때문에 머리 부분이 몸 전체의 30~40%나 된다고 하죠. 깊은 바다에서 먹이를 찾아야 하는 이빨 고래는 뛰어난 청각을 가지고 있는데 멀리까지 음파(sonar)를 쏜 후 반사돼 오는 음파를 따라 추적 대상을 찾아간다고 합니다. 혹등고래(humpback whale)는 수컷이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니 고래는 참 신비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고래는 대서양 남북과 남빙양, 북빙양 등 주로 찬바다에 살다가 새끼를 낳으러 적도 가까이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며 새끼 양육은 전적으로 어미가 맡아서 한다고 합니다. 암컷이 수컷보다 몸집이 더 큰 데 수컷은 암컷 두세 마리와 교미하며 암컷은 이삼 년에 한번 수컷을 상대한다고 하죠. 어떤 종류의 고래는 새끼가 성장할 때까지 일 년 반 동안 자신은 먹지도 않는다고 하니 모성애가 인간 이상으로 대단한 동물인 것 같습니다. 고래의 수명은 대략 50~100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래잡이를 규제하는 국제협약이 없었더라면 바다의 고래 자원은 고갈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규제가 있어도 불법적인 포경은 사라지지 않나 봅니다. 고래의 고기를 탐하기 때문인데 일본과 한국이 고래고기를 즐기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호기심에서 한두 번 고래고기를 먹어본 적은 있지만 그다지 즐길 만한 것은 아닌 것으로 기억됩니다. 최근에는 고래고기를 위장 수법으로 밀수했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습니다. 고기를 구하기 위해, 그 모습이나 행태에서 '거룩한' 존재로까지 보이는 고래를 잡는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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