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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용감했던 행보
이성낙 2023년 03월 27일 (월) 00:02:10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 행사가 1995년 5월 8일에 독일 베를린에서 열렸습니다. 나치 독일이 패망한 역사적인 날입니다. 헤어초크(Roman Herzog, 1934~2017)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은 무겁기만 한 역사의 멍에를 고스란히 짊어진, 패전의 아픔을 숨길 수 없는 그날 연단에 섰습니다. 헤어초크 대통령은 나치 독일이 이웃 여러 나라에 저지른 만행, 특히 유대인 학살을 언급하며 무거운 마음을 토로(吐露)했고, 식장은 숙연했습니다.

이어서 헤어초크 대통령은 패망한 독일이 전후 절대 빈곤 문제에 직면했던 상황을 회상하면서, 미국 정부에 진심 어린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전혀 예상도 기대도 못 했던 미국 정부의 마셜플랜(Marshall Plan) 덕분에 독일이 엄청난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헤어초크 대통령은 미국 시민이 보내준 ‘CARE BOX(식품과 생활용품)’에도 고마움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패전 당시 독일의 처지가 녹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이 전쟁 배상금을 허리가 휠 정도로 갚고 갚다가 악몽 같은 히틀러의 등장을 경험했기에, 승전국 미국이 베푼 ‘은혜’를 더욱 잊지 못했습니다. 

1990년 독일 통일을 앞두고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1925~2013) 영국 총리는 ‘떠오르는 거대(巨大) 독일’이 마음에 걸려서인지 독일 통일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때 독일은 숨소리조차 죽이며 마음을 졸였다고 합니다. 다행히 ‘아버지 부시(George H. W. Bush, 1924~2018)’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대처 총리를 적극적으로 설득한 덕분에 독일은 큰 고비를 넘기고 통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독일 통일에 아무런 조건 없이 동의했다고 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예상 밖이었지만, 거기에는 두 정치인의 해안(慧眼)과 집념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테랑(Francois Mitterrand, 1916~1996) 프랑스 대통령과 콜(Helmut Kohl, 1930~2017) 독일 총리입니다. 두 사람은 전쟁으로 인한 두 나라 간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1984년 제1차 세계대전의 첫 전투 시발지 베르됭에서 만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과 독일 콜 총리.(Google Image)

그 상징적인 예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던 프랑스령(領) 베르됭(Verdun)에서 프랑스 대통령과 독일 총리가 만난 것입니다. 1984년 9월 22일의 일입니다. 베르됭에는 양국 전몰자 묘지가 있고, 해마다 추모 행사가 열립니다. 그런데 전쟁 발발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프랑스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군 전몰자 묘역을 방문한 것입니다. 

프랑스 대통령이 방문했다는 사실 그 자체도 놀라웠지만, 프랑스 대통령과 독일 총리가 독일 전몰자 기념비 앞에서 서로의 손을 잡은 것은 많은 것을 시사했습니다. 무엇보다 두 나라 간 화해(和解)의 뜻을 세계 방방곡곡에 천명한 것입니다. 특히 양국 국민은 두 정치인의 진솔하고 용감한 행보에 크게 감격했다고 합니다. 

독일 최고 일간지 FAZ(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는 그날의 극적인 만남을 다음과 같이 보도합니다. “프랑스와 독일, 독일과 프랑스 두 국가원수가 전몰자 묘역에서 서로 손을 맞잡은 모습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가 찬 바람이 세차게 부는 쌀쌀한 날씨도 잊게 하였다.”(FAZ, 1984. 9. 22.) 감동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두 나라 사이에 벌어졌던 지난날의 전쟁사를 돌아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 참혹한 전쟁이 남긴 ‘역사의 상흔(傷痕)’을 치유하는 데 두 나라 정치인이 솔선해서 용감하게 나섰던 것입니다. 

필자는 당시 프랑스와 독일, 독일과 프랑스 두 국가 간 ‘화해의 외교’가 남긴 역사적 교훈을 반추하고 다시 반추하면서, 두 나라 정상이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수년 전, 콜 독일 총리(재임 1982~1998)의 자서전 《헬무트 콜 그리고 역사의 외투(Helmut Kohl und der Mantel der Geschichte)》 (Süddeutsche Zeitung Edition, 2016)를 읽으며 많은 궁금증을 풀 수 있었습니다. 
자서전의 끝부분에 ‘단문 단답형’ 질의응답 난(欄)이 있습니다. 
1. 헬무트 콜은 그의 첫 방문지로 어느 나라에 갔을까? [a] 영국 [b] 미국 [c] 프랑스 
(In welches Land führte Helmut Kohl seine erste Reise? [a] England [b] Amerika [c] Frankreich)
2. 총리는 프랑스를 가장 자주 방문하였다. 몇 번이나 그곳으로 여행 갔을까? [a] 15. [b] 53. [c] 79. (Frankreich bereiste der Kanzler am haufigsten. Wie viele Reisen unternahm er dorthin? [a] 15 [b] 53 [c] 79.)
3. 어느 국가원수를 방문하기를 가장 선호했나? 프랑스 국가원수 (Welches Staatsoberhaupt besuchte er am liebsten? den Premier Frankreichs).
등등. 

요약하면, 콜 총리는 그의 임기 16년간에 프랑스를 79번 방문하였습니다. 1년에 다섯 번 정도라는 산술적 계산이 나옵니다. 외교 관례에 따라 양국 국가원수가 교차 방문한 것으로 가정하면, 두 정상은 아마도 더 자주 만났다고 여겨집니다. 

그렇게 양국 정상이 자주 얼굴을 맞대고 ‘고운 정 미운 정’을 나눈 것입니다. 그 용감하고 단호한 결단에 절로 숙연해지며, 이른바 ‘셔틀 외교’의 진수를 보았습니다. 

 지리적으로 이웃한 두 나라는 국경 문제로 인해 쉽게 분쟁에 휩싸일 수 있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헤어초크 대통령이 독일 시민에게 보낸 단호한 메시지가 돋보입니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되자 언론에 ‘주데텐 독일인(Sudetendeutsche)’이라는 말이 자주 실렸습니다. 1960~1970년대에도 해마다 큰 도시에서 “내 고향 주데텐을 돌려달라!”라는 식의 구호를 내걸고 정치 집회를 펼치곤 했기에 필자에게도 생소하지 않은 구호였습니다. 

‘주데텐 독일인’은 일명 ‘체코 보헤미안’이라고 불리는데, 체코의 한 지역에서 살던 독일계 집단을 말합니다. 1945년 독일이 패망하자 그들은 서독 땅으로 이주해 옵니다. 이후 그들은 한사코 옛 고향 땅을 돌려달라고 끈질기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다 독일이 통일되자 그 분위기에 편승이라도 하듯 “주데텐를 돌려 달라”며 더 큰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독일 시민 사회에서 우려의 소리가 커졌습니다. 

이때 헤어초크 대통령은 “오늘의 독일연방공화국 국경은 한 치도 가감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며 ‘주데텐’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합니다. 요컨대 ‘쓸데없이 떠들지 말라’는 경고성 발언이었습니다. 그 후 ‘주데텐’ 문제는 일상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필자는 한 정치인의 소신 있고 용감한 발언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았습니다. 다른 것도 아닌 영토 문제인데 말입니다. 

   

1997년 헤어초크 대통령이 정치·경제계 사절단 일행을 이끌고 한국을 찾아왔습니다. 한 행사장에서 헤어초크 대통령을 만난 필자가 “1995년 5월 8일 대통령께서 독일 패망 50주년을 맞은 기념사에서 했던 말씀에 감동하였었다.”라고 하자 헤어초크 대통령이 “용서를 구하는 자의 마음보다 용서를 받아들이는 자의 마음이 훨씬 커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이 IMF 상황으로 어려움에 부닥쳐 방문한 것이라며 다음과 같은 말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친구가 어려울 때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 거인의 큰마음을 받아 가슴에 품던 순간이었습니다.

필자가 미테랑 대통령과 콜 총리를 새삼 떠올리게 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 간의 현안에 대해 소신 있는 발언을 하면서 한일 간 셔틀외교의 복원을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문득 오래전 밤을 새워가며 읽었던 소설 《독재자들의 학교(Die Schule der Diktatoren)》 (DTV, 1956)의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Erich Kästner, 1899~1974)가 질타하듯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용기 없는 현명함은 한낱 허구일 뿐이다! (Klugheit ohne Mut ist Quatsch!)”

<주해> 자료 출처: Zum 50. Jahrestag des Endes des Zweiten Weltkrieges-Staatsakt in Berlin am 8. Mai 1995-Ansprache des Bundespräsidenten (Die Bundesregierung Bulletin 38-95, 12. Mai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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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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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용 (220.XXX.XXX.57)
저도 동감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자의 마음보다 용서를 받아 들이는자의 마음이 훨씬
커야 한다"는 새로운 지식을 배웠습니다.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이런 마음의 제세로 생활한다면 다툴일이 없겠지요?
좋은 Column 에 감사드립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세용~~~~
답변달기
2023-03-27 10:12:24
1 1
정병용 (220.XXX.XXX.57)
저도 동감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자의 마음보다 용서를 받아 들이는자의 마음이 훨씬
커야 한다"는 새로운 지식을 배웠습니다.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이런 마음의 제세로 생활한다면 다툴일이 없겠지요?
좋은 Column 에 감사드립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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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7 10:11:53
0 1
여러생각 (218.XXX.XXX.234)
동감 하여주셔서 큰 힘을 받았습니다.
서로 적처럼 사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삶이겠습니까.
국가 간에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23-03-27 22:26:25
0 0
김완수 (39.XXX.XXX.105)
시기 적절한 칼럼에 동감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답변달기
2023-03-27 07:41:50
1 1
여러생각 (218.XXX.XXX.234)
고맙습니다.
좌파, 우파를 넘어 우리 모두가 건전한 사회로 지향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노력해야지요.
답변달기
2023-03-27 22:29:2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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