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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의 회고
김영환 2023년 03월 21일 (화) 01:34:34
베르메르의 자화상이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풍속화의 일부.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작품명을 딴 미술 영화입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죠.

몇 년 전 유튜브에서 어찌어찌하여 <Girl with a Pearl Earring>을 무료로 보았고 너무 기뻐서 주변의 미술 애호가들에게도 알렸는데요, 요새 다시 보려고 찾았더니 유료이거나 선전용 트레일러 같은 것만 떠 있었습니다. 당시 영화는 자막도 없었고 어느 나라 말인지 몰랐는데 대사가 많지 않아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대략 짐작했습니다. 베르메르의 다른 그림들과 달리 검은 배경에 인물만 강조돼 떠오르는 이 그림의 모델은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상상 속의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은 가세가 몰락해 보퉁이 하나만을 허리에 끼고 운하 옆 화가의 집에 하녀로 들어와 쥐들이 오가는 다락방에서 지냅니다. 운하에서 물을 길어오고, 빨래와 청소를 하고, 요리를 돕고, 장을 봐오는 보조 가사도우미 역할이죠. 

   
  베르메르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가끔 화실을 엿보던 그녀는 그곳도 청소하게 되는데요, 움직이면 절대로 안 되는 물건들의 먼지를 털고 화가에게 매우 중요한 유리창을 걸레질합니다. 이윽고 화가는 그녀에게 옆에 앉아 물감을 개라고 지시합니다. 베르메르는 자신의 그림을 넋을 잃고 바라다보는 소녀를 모델로 삼으려고 진주 귀걸이를 달 귀를 뚫어줍니다. 이런 과정을  바라보는 베르메르의 부인 카타리나는 미묘한 의문의 시선을 던집니다. ‘네덜란드의 모나리자’, 혹은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소녀라고 합니다.

베르메르는 사십 평생에 50여 점만을 그린 과작이었고 이 중 37점 정도가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르메르의 그림에는 하녀와 함께, 편지를 읽거나 쓰는 부인들이 많이 등장하죠. <우유를 따르는 하녀>, <여주인과 하녀> , <편지를 쓰는 부인과 하녀> <연애편지>등에서 하녀들을 그렸습니다. 인물의 정밀한 묘사와 살아있는 표정은 보는 이들을 빨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많은 베르메르의 그림들에는 왼쪽에 높은 창문이 있고 그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만드는 명암으로 인물과 의상이 선명하게 부상하죠. 자화상이 등장한다는 <뚜쟁이>라는 속된 그림이 있는 반면, 선악과를 연상시키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와 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그림 속 그림이 담긴 <신앙의 알레고리>, 엽전과 진주로 <저울을 재는 여자>는 미덕과 죄의 무게를 재는 듯한 최후의 심판 분위기를 조성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겁고도 본질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베르메르의 세계관도 엿볼 수 있습니다. 개신교도였던 베르메르는 처가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하려고 아내의 종교인 가톨릭으로 개종할 정도였습니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 / 신앙의 알레고리. / 편지를 쓰는 숙녀와 하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회고전시회의 한 큐레이터는 코로나19로 미술관이 문을 닫으면서 베르메르의 그림들을 과학적 기법으로 정밀 분석한 결과 <빨간 모자를 쓴 여인>의 그림 밑에서 남자를 그린 밑그림이 발견되었다고 했습니다. <플루트를 든 여인>은 기법과 색감이 달라 그의 제자나 후배들의 조력이 있었다고 의심하게 되었답니다. 베르메르가 아틀리에를 운영하지 않았느냐는 얘기죠. 그는 성질이 급해 그림을 빨리 완성하려고 처음부터 붓 칠할 정도였고 마음에 안들 때는 싹 지우고 다시 그리기도 했다는 겁니다. 

젊을 때는 여관과 비단 직조공에 화상을 겸한 아버지가 있어 살림이 어렵지 않았겠으나 온 정성을 기울여 1년에 단 두세 점의 작품을 그려서는 15명의 낳은 아이 중 4명을 잃고 생존한 11명을 거느리고 생활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캔버스를 아끼려고 덧 그림을 그렸는지 모릅니다. 베르메르는 장모가 매우 부유했던 처가로 들어갔는데도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푸른 터번을 두르고 있는데요, 당시 청색 물감 ‘울트라 마린 블루’는 금·은광에서 생산되는 청금석(靑金石)이 원료라서 금처럼 비쌌습니다. 지금도 순수한 자연산은 1킬로그램에 2,000만 원이나 합니다. 베르메르는 처가살이로 이 물감은 원 없이 쓴 걸까요. 푸른 옷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족족 팔았고, 양조업자이자 투자가이며 후원자인 피에터 라이펜은 그의 그림을 20점이나 소장했다고 합니다. 베르메르는 개인의 소장으로 인하여 전시를 통해 유명해질 기회가 없었다는 거죠. 그가 화가로 다시 높이 뜨는 것은 거의 2세기가 지난 19세기 후반 프랑스 평론가가 언급하고 나서입니다. 

사망 일자가 확실하지 않아 그가 42, 혹은 43세의 나이로 타계했을 때 빚쟁이들은 그의 그림을 가져가려고 했는데 그를 사랑했던 아내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작업을 보여주는 <작업실의 화가(The Art of Painting)>는 못 가져가게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사위가 빚을 많이 진 것을 안 장모 마리아는 딸을 제치고 재산을 손주들에게 넘겼기 때문에 카타리나는 빈궁하게 살았습니다. 영란전쟁이 발발하자 그림은 안 팔렸고 장모의 사업도 큰 타격을 받았죠. 

베르메르는 1653년부터 화가 직능조합인 길드에 가입했는데 화장(畵匠)이 되려면 6년간의 도제 생활이 필요했기에 스승이 누구였을까 연구가 계속됩니다. 미적 감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는 면밀하게 그린 공간에서 주인공이 금세라도 소곤거릴 듯한 따뜻한 장면을 제시해 더 친밀감을 줍니다. 빛과 명암의 대가라는 그는 바로크 시대 불멸의 대표적 화가로서 미술의 대상을 저변으로 확대하여 자신이 왜 그림을 그리는가를 잘 전했다고 봅니다. 200년 뒤의 반 고흐는 똑같이 그릴 바에는 그림이 사진이랑 뭐가 다르냐고 의문을 던졌죠. 

자연을 그대로 복사하는 그림이 결코 자연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살바도르 달리는 화가들의 평가에서 베르메르에게 최고점을 주었고 <레이스 뜨는 여인> 등 베르메르 작품을 모티브로 작품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베르메르의 고향인 <델프트 풍경>에 대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보았다"고 격찬했습니다. 

현존하는 베르메르의 그림 중에서 4분의 3인 28점을 어렵게 모은 일생일대의 베르메르 회고전이 6월 3일까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데요. 전 작품을 소개하는 사이트로 안내합니다. http://www.essentialvermeer.com/catalogue/art_of_painting.html#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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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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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관찰자 (175.XXX.XXX.166)
평소와는 약간 다른 글이지만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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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1 12:04:57
0 0
김영환 (118.XXX.XXX.129)
조용한 관찰자님 격려에 늘 감사드립니다.
답변달기
2023-03-21 15:59:04
0 0
김영환 (118.XXX.XXX.148)
최 형, 반갑습니다. 베르메르의 그림이 영원불멸이라는 울트라 마린 블루처럼 우리를 이렇게 이어주는군요. 격려와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그간 너무 적조했습니다. 자리를 만드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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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1 10:31:24
1 0
최노석 (125.XXX.XXX.136)
김영환 형.
오늘 베르메르의 글, 강동적으로 읽었소이다.
역시 글쟁이는 다르군요..
그동안 잘 계셨는지? 처음으로 소식 전합니다.
전 경향신문 파리특파원 최노석 드림
답변달기
2023-03-21 07:14:32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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