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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슬픈 노래
노경아 2023년 03월 20일 (월) 00:04:17

사람, 위스키, 전축과 레코드판. 방송사 프로듀서인 친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소식을 알릴 때마다 올라오는 세 가지입니다. 그날 만난 사람과의 인연, 함께 마신 위스키에 담긴 사연,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 짓는 음악 이야기를 영화처럼 풀어냅니다. 전엔 늘 삶에 찌들어 보이던 친구인데, 아날로그 선율의 레코드판이 등장하면서 표정부터 몹시 편안해졌습니다. 

누구나 행복의 조건이 있겠지요. 최근 지인들에게 가족을 제외하고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뭐냐고 묻자 다양한 단어들이 쏟아졌습니다. 책, 햇빛, 술, 숲, 바다, 영화, 작약, 바람, 커피…. 그중 가장 많이 나온 건 음악입니다. 좋아하는 곡을 들으며 뭔가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면 이보다 더 편안하고 좋은 삶은 없다고들 말했습니다.

전문지 편집국장인 한 선배는 쉬는 날, 아내와 함께 책을 읽으며 음악 들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날 듣고 싶은 곡을 정해 반복 재생하면서 책을 읽다 보면 서너 시간이 봄바람처럼 따스하게 지나간다고 합니다. 

특히 요즘엔 삼월의 화사함과 잘 어울리는 사라 브라이트만(63·영국)의 노래를 듣는데, 그의 목소리에 설레는 순간순간엔 책장을 덮고 선율에만 집중한다고도 했습니다. 브라이트만은 ‘타임 투 세이 굿바이’ ‘넬라판타지아’ 등을 부른 팝페라의 여왕입니다.

음악은 나의 행복 조건이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화장실 청소, 옷 개기, 설거지 등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집안일도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듣는 노래는 ‘봄날은 간다’입니다. 지난달 점심 식사 자리에서 서울 모대학 교수로부터 선물받은 유에스비(USB)에는 무려 쉰일곱 개의 ‘봄날은 간다’가 담겨 있습니다. 1953년 이 노래를 처음으로 부른 백설희부터 배호, 한영애, 심수봉, 조용필, 장사익, 개그맨 김보화에 이르기까지 누구 것을 들어도 다 몸에 감겨듭니다. 

같은 노래를 계속 들으면 지겨울 것 같다고요? 노랫말만 같을 뿐 부른 이마다 장르, 음색, 리듬이 달라 같은 노래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노랫말이 가슴으로 절절하게 스며들 뿐이죠. 희대(稀代)의 절창이니까요. 같은 선물을 받은 언론 선배는 스산한 목소리로 신들린 듯 주절대는 한영애의 창법이 최고라고 합니다. 또 다른 이는 감정을 추스르지 않고 절규하듯 토해낸 장사익의 노래가 봄날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해줘 자주 듣는다고 말합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1절)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2절)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3절)

작사가 손로원(1911~1973)의 노랫말은 화가 출신답게 풍경화를 펼쳐놓은 것 같습니다. 옷고름, 산제비, 성황당, 꽃편지, 청노새, 역마차, 신작로 등 한(恨)의 정서를 담은 토속적인 단어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입고 그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합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구절에선 이유도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흐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 긴장감 등이 해소되면서 편안해집니다. 

노래를 듣다 보니 완연한 봄입니다. 좋은 시절은 금세 가겠지요. 속절없이 떠나는 우리네 삶처럼. 부쩍 부고 소식이 잦은 봄날, 햇살이 반짝일수록, 꽃이 화사할수록 심란합니다. 마음 편안해지는 노래를 들으며 좋은 사람들과 봄밤을 즐겨야겠습니다. 이런 날 술을 마다할 수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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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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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숙 (14.XXX.XXX.154)
행복해지는 슬픈 노래
봄 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잔인한 사월처럼
꽃을 바라볼 때
음악을 들으면서
슬프면서도 행복해지는
순간이 있지요.
폭풍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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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2 11:25:51
0 0
노경아 (116.XXX.XXX.129)
사람에게서 찾던 행복을,
이젠 노래에서 더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답답할 때 걸으며 듣는 노래는,
세상을 환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크게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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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2 21:01:49
0 0
안해영 (118.XXX.XXX.219)
역설적 제목에 끌려 읽었습니다. 희망을 노래하는 봄에
슬픈 노래가 희망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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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0 22:27:10
0 0
노경아 (116.XXX.XXX.129)
슬픈 영화를 본 후 가슴 개운한 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상영관까지 가야 하는 불편이 있어 노래를 더 자주 듣게 됩니다. 느리고 깊은 데서 희망을 봅니다.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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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1 15:18:00
0 0
김성규 (222.XXX.XXX.94)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그렇게 여러 가수가 부른 줄은 몰랐네요...
혹시 그런 USB가 시판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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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0 10:34:23
0 0
노경아 (116.XXX.XXX.129)
'봄날은 간다' 수록 USB가 시판되진 않습니다. 지인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으신 분께서 일일이 담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귀한 선물을 받아 감동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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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0 21:32:23
0 0
정병용 (220.XXX.XXX.57)
노래를 들으며 삶의 여유를 갖는다면 당연히 행복하겠죠?
그러나 세상사가 내 만대로 살 수 없기때문에 불행한 일도 생기고,
삶에 찌달리고, 매일같이 현장(건설현장)에 일어난 안전사고 등을 생각하면
노래를 들을 영유가 없어 불행하답니다.
노래를 들으면 인상을 쓰고, 화를낸 사람은 없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시간적여유도 없지만 주위환경이 노래를 감상할 수 없어
불행한가 봅니다. 그러나 노경아님의 칼럼을 읽을때가 가장 행복 하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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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0 09:36:40
0 0
노경아 (116.XXX.XXX.129)
일에 집중하시고, 짬을 내 여행 등 즐거운 행보도 하시잖아요.
먼 곳까지 이동해 공부도 하시고요. 그런 행복함도 아주 클 거라 생각되옵니다.
졸필을 읽고 행복하시다니 제가 더 행복합니다.
격려 말씀에 늘 큰 힘을 얻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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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0 21:3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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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용 (220.XXX.XXX.57)
항상 기분이 좋은 노경아님 ㅎㅎ
건행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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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2 09: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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