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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은숙이
한만수 2023년 03월 07일 (화) 01:18:10

시골길을 지나다 보면 마을 입구에 ‘마을자랑비’가 세워져 있는 곳이 있습니다. 마을자랑비, 혹은 마을유래비라 부르는 바위에는 대부분 그 마을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마을 유래가 적혀 있습니다. 가끔은 마을을 주제로 한 시가 정면에 적혀 있기도 하고, 후면에는 마을 유래와 돈을 기증한 주민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정면에는 큰 글씨로 동네 이름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제 고향에는 마을자랑비에 이런저런 인연으로 제 시가 음각되어 있는 곳이 몇 곳 있습니다. 산골에 살면 별의별 글을 써 달르는 부탁이 다 들어 옵니다.  진정서며, 소장,  심지어는 학교 체육대회 축사도 써 주어야 합니다. 그나마 마을자랑비는 양반입니다. 마을의 이장이 친구이거나 직접적인 인연은 없어도 저를 알고 있는 분의 소개로 부탁을 하면 시와 마을 유래를 써 주기도 합니다. 

하루는 중학교 3년 선배 되시는 분이 마을자랑비에 새겨 넣을 시와 마을의 유래를 써달라고 찾아왔습니다. 마을자랑비나 유래비를 세우시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젊거나 마을에서 몇 대를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선배에 대해서는 선배가 살고 있는 동네의 부잣집 아들이라는 정보밖에 없었습니다. 군청에서 일부 지원을 받고, 동네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내서 마을자랑비를 세우게 되었다. 어느 동네에 가 보니까 후배의 글이 적혀 있더라, 우리도 똑같이 써 주면 술 한 잔 사겠다는 등의 대화가 오갔습니다.
이런저런 말끝에 갑자기 선배 동네에 살았던 ‘은숙’이라는 초등학교 동창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은숙이 사촌오빠여.”
“그럼, 미국으로 간?”
“그렇지. 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이민 갔지.”

나중 일이지만 그 선배도 마을자랑비를 세운 이듬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고국을 떠나기 전에 무언가 흔적을 남기려고 마을자랑비를 계획했던 것 같습니다. 마을자랑비 세울 계획을 하고 있었을 때는 동네 이장 신분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은숙이는 산골에 사는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이 단발머리를 하고 다녔는데 은숙이는 항상 양 갈래로 머리를 땋고 깨끗한 옷만 입고 다녔습니다. 4학년 때 같은 반에 은숙이가 2명이었습니다. 

선배의 사촌은 이쁜은숙이고, 단발머리 은숙이는 동네 이름을 따서 ‘철동은숙이’라 불렀습니다. 은숙이는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고, 공부도 항상 1등을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월반(越班)제도가 있었습니다. 은숙이는 5학년은 건너뛰고 6학년으로 월반을 했습니다.

은숙이가 월반을 하고 나서는 이쁜은숙이가 아니고 6학년 은숙이로 호칭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점은 이쁜은숙이가 친구들하고 떠들거나, 복도를 뛰어다니거나, 수업시간에 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은숙이는 학교 올 때만 같은 동네 사는 아이들하고 줄을 서서 올 뿐이지 계속 혼자 시간을 보냈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혼자 책상 앞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보거나 물끄러미 운동장을 바라봤습니다.

오리떼 사이에 홀로 백조처럼 앉아 있으니까 짓궂은 아이들이 심심풀이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복도에서 아이스케이크를 외치며 치마를 걷어 올리는 애들도 없었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코를 질질 흘리며 복도로 책상 사이로 뛰어다니는 애들도 은숙이 곁을 지나갈 때는 한 마리 순한 양으로 변하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이쁜은숙이가 저만큼에서 보이면 슬쩍 숨어버리거나 다른 길로 다녔습니다. 이상하게 이쁜은숙이 앞에 서면 얼굴이 빨개지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마음 편하게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쁜은숙이가 6학년이 되고부터 얼굴 볼 기회가 줄어들었습니다. 조회 시간에는 가끔 6학년 은숙이가 어디쯤 서 있는지 찾아보기는 했지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봄 소풍 때였습니다. 산골에 있는 학교가 대부분 그렇듯이 저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계속 같은 곳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금강 상류 쪽에 있는 ‘송호리’라는 솔밭이 전용 소풍 장소입니다. 

강변에 있는 솔밭이라 소풍을 가지 않아도 여름에는 강에 수영을 하러 다니는 탓에 자주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늘 은숙이네 집 앞을 지나쳐 가면서도 저는 그곳이 은숙이네 집인 줄 몰랐습니다.

소풍을 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친구가 "저 집이 6학년 은숙이네 집"이라며 길가에 있는 기와집을 가리켰습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옆에 아담한 기와집이 있었습니다. 여느 집과 다르게 아이들 허리 높이의 석축을 쌓아 놓은 집이라 대문 밖에서도 방문이 보였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걸음이 우뚝 멈춰지는 것을 느끼며 깨금발로 서서 마루를 바라봤습니다. 

은숙이 얼굴은 보이지 않고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마루에 걸터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계셨습니다. 저분이 6학년 은숙이 할머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도 가끔 6학년 은숙이가 사는 집을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실천해 본 적은 없습니다.

“은숙이는 잘 살죠?”
“잘 살지. 미국인 남편이 변호사 아녀?”

은숙이가 미국인과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만도 놀랐습니다. 더구나 변호사 남편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까 과연 은숙이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놀랐습니다. 그것도 잠깐 “변호사면 뭐 하냐? 흑인인데?” 선배의 시답지 않다는 말에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선배가 앞장서서 세운 마을자랑비는 은숙이네가 살던 집 근처 국도변에 서 있습니다. 가끔 차를 몰고 그 앞을 지나가다 마을자랑비를 유심히 바라보기도 합니다. 선배는 자신의 치적인 마을자랑비 사진을 미국으로 가져갔을 것입니다. 

마을자랑비 사진을 은숙이에게 보여줬을까? 상상을 하면 은숙이 얼굴은 떠오르지 않고 얼굴을 모르는 흑인 남자 모습이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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