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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만큼 멋진 구두
박종진 2023년 03월 06일 (월) 02:21:55

양복을 입고 만년필을 챙긴 다음, 중절모를 쓰고 구두를 신는다. 백 년 전엔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요즘 이렇게 외출을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불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잊히는 것은 너무 아깝고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특히 구두는 만년필만큼 멋집니다. 그리고 이 둘은 묘하게 닮았습니다. 길이 나면 점점 더 좋아지고, 틈틈히 손질을 하면 평생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만년필이야 이름처럼 말 그대로 오래가는 물건입니다. 잘 만든 만년필 펜촉은 600만 자를 쓸 수 있습니다. 하루에 1,000자씩 쓰면 6,000일을 쓸 수 있는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썼을 때 6,000일은 약 16년, 이틀에 한 번이면 30년으로 평생 함께할 수 있습니다. 

구두 역시 잘 만들어진 것은 평생 신을 수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만년필 만큼 오래가고 매력적인 구두에 관한 것입니다. 구두는 어퍼(upper, 갑피), 밑창(out sole), 제법(製法, construction)이 결합하여 만들어집니다. 먼저 눈에 보이는 부분인 어퍼, 가죽으로 만든 부분입니다. 좋은 구두는 한마디로 좋은 가죽입니다. 여러 종류의 소가죽 중에 최고급인 카프(calf)는 생후 6개월 정도 된 송아지 가죽입니다. 얇고, 가볍고, 부드럽고, 촉감이 좋은데, 손질을 하면 할수록 좋아집니다. 

 키프(kip)는 6개월부터 2년까지의 카프 다음 고급 가죽으로 카프보다 두꺼워 강도가 더 좋습니다. 스티어(steer)는 2년이 지난 거세된 수소의 가죽으로  결이 고르기 때문에 다루기 쉬워 일반적인 구두는 대부분 이 가죽을 사용합니다. 이 밖에 주로 유럽보다는 미국에서 고급 구두에 사용하는 말 엉덩이 가죽인 코도반(cordovan), 수사슴 가죽인 벅스킨(buck skin)은 유연하고 신축성과 내구성이 좋고 변형이 적은 것이 장점입니다. 그리고 귀한 대접을 받는 독특한 무늬로 한눈에 알 수 있는 악어가죽이 있습니다.   

가죽 다음으로 구두가 지면에 직접 닿는 바닥 부분인 밑창(out sole)이 중요합니다. 겉창은 물과 열에 강해야 하고 체중에 변형되지 않아야 하며 덜 닳아야 하는 내마모성이 좋아야 합니다. 또 유연성과 적당한 탄력성이 있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고급 구두는 홍창이라고 부르는 두꺼운 소가죽으로 만든 것이지만, 요즘은 천연고무와 합성고무, 우레탄 등으로 내구성이 좋게 바닥을 만들고, 모양에 따라 동그란 도넛 모양이 찍혀 있는 다이나이트, 군화와 등산화에 주로 쓰이는 코만도 바닥 등이 있습니다.

또 바닥을 전문으로 만드는 이태리 비브람사(vibram社)를 알아두면 좋은데, 비브람사는 세계적인 신발 바닥 전문회사로 뛰어난 내구성과 접지력이 뛰어나 유명한데, 구두를 뒤집어 노란색 비브람 표식이나 비브람이 쓰인 글씨가 있는 바닥을 확인하는 것도 좋은 구두를 알아보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갑피와 겉창을 붙이는 방법인 제법(construction)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제법이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법은 가죽이나 바닥만큼 중요합니다. 어느 제법을 썼느냐에 따라 스타일과 착화감 신발의 수명도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시멘트와 굿이어 웰트 제법입니다. 

먼저 시멘트 제법입니다. 시멘트라는 건축 용어가 쓰여 어리둥절할 수 있지만, 실로 꿰매지 않고 접착제로 갑피와 바닥을 붙인 것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구두는 이 방법을 사용하여 만들어집니다. 신사화의 60% 이상, 숙녀화의 97% 이상 이 제법입니다. 유행에 민감하고 디자인이 빨리 바뀌는 요즘에 맞는 제법으로 주로 가격이 저렴한 신사화에 쓰이고, 비싼 숙녀화도 간혹 이 제법을 사용하지만, 바닥 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래 신을 수 없는 단점이 있습니다. 

많이 걷고 오래 신고 싶은 사람은 굿이어 웰트 제법으로 만든 구두를 선택하면 됩니다. 이 제법은 구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제법으로 평가받는데, 고급 구두는 이 제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제법을 알아보는 방법은, 갑피 가장자리를 기다란 가죽(welt,대다리)을 둘레에 따라 한 바퀴 두르고, 바닥과 안감을 같이 재봉틀로 꿰맨 것이라 실밥이 보이면 굿이어 웰트 제법입니다. 

   
  굿이어 웰트 제법으로 만든 구두(갑피 가장자리에 가죽을 대고 꿰맨 실밥이 보인다.)  

주의할 것은 꿰매지 않고 웰트만 접착한 가짜도 있는데, 뒤집어 바닥을 보면 실밥이 없습니다. 매우 드물게 실밥이 없는 굿이어 웰트도 있는데, 이럴 경우 보통 굿이어 웰트라고 바닥에 표시하고, 구두설명서를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구두점 담당자에게 물어보고, 담당자가 모르면 그 구두점에서 구두를 살 필요가 없습니다. 바닥 교체가 쉽지만, 약간 무거운 것은 단점입니다.

이 밖에 견고하면서 착화감이 뛰어나고 무겁지 않은 고급 맞춤 구두에 사용되는 손으로 꿰맨 핸드 소운 웰트 제법, 방수가 아주 뛰어나고 착화감이 좋은 노르웨이전 제법, 가벼운 착화감을 위한 멕케이식 제법, 고양이처럼 부드럽게 걸을 수 있는 볼로내제 제법 등이 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품이 많이 들어가고, 복잡한 제법이 능사가 아니란 점입니다. 제법 모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품이 많이 들어간 제법은 비싸지만 관리를 잘하면 오래 신을 수 있고, 품이 덜 들어간 시멘트 제법은 저렴해서 유행에 따라 다양하게 바꾸어 가면서 신을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중절모를 구하게 되었고 구두도 샀습니다. 당연히 만년필도 포켓에 꽂혀 있습니다.  며칠 동안 발이 불편했지만, 지금은 만 보 이상 걸어도 발이 편합니다. 무엇보다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길을 걷다가 중절모에 구두를 신고 허리를 곧게 세우고 씩씩하게, 행복한 얼굴로 걷는 사람을 보았다면 바로 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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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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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펠리칸 (175.XXX.XXX.32)
남자의물건 중 제일 멋스러운 것만 이야기 하시네요. 만년필,중절모,구두 어떤 물건이든 의미를 가지고 그 물건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알아야 애정이 가는 것 같습니다.저도 애정하는 물건들이 하나 둘씩 늘어 갑니다. 나이가 들어 애정하는 물건들이 오래 나와 같이 있어 준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남자의 물건들도 소개 시켜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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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6 12:16:25
0 0
박종진 (118.XXX.XXX.241)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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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6 14:03:19
0 0
단석 (211.XXX.XXX.109)
익숙한 구두 이야기가 나와서 더 잘 읽혀집니다
좋은 글 잘 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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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6 10:34:56
0 0
박종진 (175.XXX.XXX.121)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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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6 14:03:45
0 0
김봉현 (106.XXX.XXX.115)
중절모에 구두에 만년필까지... 잘 갖추어진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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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6 08:18:12
0 0
박종진 (175.XXX.XXX.121)
기회가 모자에 대해서 써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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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6 14:04:42
0 0
송길원 (14.XXX.XXX.2)
귀한 글 잘 봅니다. 그런데... 덧붙여 제품 중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메이커나 구두 추천도 해 주시면 더욱 좋을 듯 합니다. 가능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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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6 07:40:59
0 0
박종진 (175.XXX.XXX.121)
파주 등 금강제화 아울렛에 싸고 좋은 구두가 많습니다. 성수동과 동대문에도 발품을 팔면 숨은 보물 같은 좋은 구두를 싸게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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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6 14:09:25
0 0
Nerie (172.XXX.XXX.46)
말씀하신 대로 목적과 예산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는 안목도 중요하지만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제품을 사용하는 것도 인생의 한 즐거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 때 신었던 구두 중 웰트를 접착만 한 저렴한 신발도 제법 있었구나 깨달았습니다^^ 정성들여 만든 수제 구두도 만년필처럼 오랜 친구가 될 수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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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6 05:56:08
0 0
박종진 (118.XXX.XXX.241)
저도 가짜 웰트 신발 비싸게 산 적 많습니다. ^^ 유명 메이커 할인 매장을 이용하면 좋은 구두를 싸게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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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6 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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