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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일이 큰일이다
정숭호 2023년 03월 03일 (금) 00:00:45

“나는 큰일 하는 사람보다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
어제 고향 친구가 전화하면서 이렇게 말했을 때 너무 좋은 말이라 찌르르 감전된 것 같았습니다. 소위 ‘큰일’ 한다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큰일을 저질러 나라를 큰일에 빠트리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 참이어서 더 그랬을 겁니다. 

그와 나는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습니다. 멀리 떨어져 살면서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합니다. 그와 나는 책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다가 다른 화제로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야, 요즘 어떻게 지내냐?”를 “니 요새 무슨 책 읽고 있노?”로 바꾼 거지요. 평생을 책 읽고 책 쓰는 걸로만 보내온 그가 먼저 시작한 대화법인데 나도 물들고 있습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정공, 요새 무슨 책 읽고 있노?”
“이븐 할둔이 쓴 ‘역사서설’을 읽다가 덮고 어떤 중견 기업인 자서전을 읽는데 참 감동적이네.”
“역사서설? 그거 토인비가 최고의 책이라고 했다던데? 그건 그렇고, 누구 자서전인데 그리 감동을 받았노?”
“회사를 정말로 깨끗하게 꾸려서 자식에게 안 주고 직원들에게 넘겨준 중견 기업인. 이름을 들어도 귀하는 모를걸. 한 줄 읽어줄까?”
“제목이 뭔데?”
“‘직원이 주인인 회사’. 작년에 받아놓은 책인데 오늘 왠지 눈에 띄어 자기 전에 편하게 읽을 생각으로 펼쳤더니 잠을 미룰 정도로 흥미롭고 감동적이더라고.”
“업종은 뭐고?”
“화학물질 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해운회사라. 이 양반이 1960년에 대학 졸업했는데 국영기업에 취직했다가 9년 만에 그만두고 한국 최초로 이런 회사를 차렸다네. 좀 기다려라. 내 머리말만 몇 줄 읽어줘야겠다.” 
요령 있게 말하는 법을 못 배운 나는 전화기를 스피커폰 모드로 바꾸고 책을 펼쳤습니다.

 
  이번 '아름다운 일'의 주인공은 'KSS해운' 창업자인 박종규 선생입니다. 사진은 그의 회고록 표지.

“기업인이 개인적 사리를 추구하지 않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인 없는 회사는 안 된다고 한다. 이런 말은 헛말이다. 가족 회사를 유지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거래가 불투명한 사회에서 회삿돈을 빼내 뒷거래를 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전문경영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기업의 CEO는 회사를 키우고 돈 잘 버는 사람이 해야 하는데 남을 못 믿어 세습경영을 하게 된다. 세습을 하려니 상속세가 많아 일감 몰아주기 등 편법 증여를 하게 된다. 외국은 기업이 커지면 경영과 자본을 분리하는 게 보통인데 우리나라는 성공한 회사가 다 가족기업이다. 도리어 가족기업이니까 성공했다고 억지를 부린다.”

“유한양행 만든 유일한(柳一韓) 선생 같은 분이군?”
“응. 이 분도 유일한 선생을 제일 존경한다고 하네. 자기도 그 당시 100대 기업이던 유한양행만큼 큰 회사를 만들고 싶었지만 시대가 벌써 바뀌어 큰 사업을 이루려면 사업권 취득부터 금융 조달까지 비자금이 안 들어갈 수 없어 작지만 깨끗한 기업 쪽을 택했다는 거야. 한국에도 이런 회사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말이지. 그래서 창업하면서부터 임직원은 동업자라는 생각으로 이익을 나눠주었다네. 주인 대접 받은 직원들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일하고 이익은 더 커지고 …. 대주주이지만 사장 추천권한도 포기했고, 주주배당률 결정권한도 내놓았더라. 경영과 자본이 분리된 회사, 주인이 없는 게 아니라 직원이 주인인 회사를 만든 거지.” 

“몇 해 전에 TV에 소개된 분 같은데?”
“그럴 수 있겠지. 한국에서는 드문 경영자일 테니까 TV가 다루고도 남을 인물이지. 나는 이분의 대외전략, 영업전략에서도 감동을 받았어. 직원들과 나눠 갖고 싶어도 나눌 것이 없으면 말로 그칠 뿐이잖아. 이분은 작은 회사를 하면서도 대기업 사람들과 상담할 때 배짱과 당당함을 내려놓지 않았더라고. 물론 임기응변에도 강했지. 국영기업 월급쟁이일 때 자기네 회사가 민영화될 거라는 소문을 듣고 사주조합을 만들어 인수하려다가 사상을 의심받아 중앙정보부에 걸렸다는군. 그런데 자기 잡으러 나온 정보부 사람을 설득해 주식을 사게 했다는 거야. 박정희 대통령도 이 양반더러 ‘회사 직원들이 좋은 일에 나섰다’라고 칭찬하면서 100주를 샀을 정도로 신념과 논리가 확실하고 영민한 분이지.”

나는 잠깐 멈추고 침을 삼킨 뒤 계속했습니다.
“김공, 그런데 이분 회사가 잘 되니까 탐내는 대기업이 있었을 거 아니야. 경쟁자도 있었을 테고. 일본의 대형 선박회사나 보험회사 사람들도 상대해야 했고. 그런데, 몇 십 배나 큰 기업을 운영하는 거물들이 자신을 불러 말도 안 되는 ‘갑질’을 부려도 전혀 굴함이 없이 당당한 태도로 맞서고 그 사람들의 허를 찔러 자기 요구를 관철하고 그것도 안 되면 몇 달을 그 회사로 출근하는 끈기와 집념으로 양보를 받아냈대. 그것뿐이 아니야. 자신을 부당하게 대한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나서는 ‘그 당시에는 그분들도 그럴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을 것’이라면서 따뜻하게 감싸더라고. 김공 삼국지 좋아하지? 이 양반은 삼국지에 나오는 훌륭한 장수 몇 명을 합쳐놓은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도 그런 생각이 방금 지나갔어.”

“김공, 나는 우리나라가 이런 분들 때문에 이만큼 발전한 게 아닌가 싶어. 예전에는 이런 분들 이야기가 많았는데 요즘은 어떻게 전부 자잘한 사람들 이야기뿐이야. 전략과 정열, 배짱과 이웃사랑, 배려 같은 것은 전혀 없는 자잘한 것들이 큰일 한다고 설치니까 나라가 매일매일 지저분하고 너저분하게 돌아가는 것 아니겠어? 꺽꺽대고 꺆꺅거리는 소리가 허구한날 길거리를 채우는 것도 그렇고. 머리를 쓴다고 하는 짓이 전부 제 죽을 짓이고 나라 망치는 짓이지.”
“맞아, 나도 큰일 하는 사람보다 아름다운 일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라는 말은 이때 나왔습니다. 나는 이 '명언'을 듣고 이번 달 자유칼럼에 쓸 글감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 바로 최선을 다해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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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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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175.XXX.XXX.173)
큰일하는 사람보다 아름다운일 하는 사람!~~~ 하루하루 아름다움으로 채울수있도록 마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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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3 11:41:11
1 0
trout (116.XXX.XXX.121)
예, 벌써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일 좀 쌓이면 연락주세요. 꼭.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답변달기
2023-03-03 18: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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