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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 장세동 부장, 그리고 갓김치
이성낙 2023년 02월 23일 (목) 00:00:27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만나고, 그 인연이 평생을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관계는 인연의 깊이만큼 오래도록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몇 해 전, 대통령 재직 당시 피부과 주치의로 인연을 맺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1931~2021)의 회고록 《전두환 회고록. 1.2.3.》 (자작나무숲, 2017)을 받았습니다. 바쁜 일상에 쫓겨 읽기를 차일피일 미루다 어느 날 아침 책을 펼쳤습니다. 책장을 넘기던 중 ‘백담사 생육신’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습니다. 

알려진 대로 전두환 대통령은 퇴임 후인 1988년 11월부터 1990년 12월 30일까지 약 2년간 백담사에 머물렀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백담사에서 지낼 때, 피부에 문제가 생기면 필자가 전 피부과 주치의로서 백담사를 찾아가곤 했습니다. 그 산중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언급한 몇몇 인물 가운데 특히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기억에 남고, 좀 색다르긴 하지만 ‘갓김치’ 이야기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제 고인이 되신 전두환 대통령이 백담사에 머물던 시기, 서울에서 백담사까지의 도로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소양강댐을 따라가던 길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런 도로 사정 탓에 일정이 늦어지면 더러는 백담사에서 하룻밤을 자내기도 했습니다. 필자가 백담사에 머무는 날이면 전두환 대통령은 필자에게 격의 없이 소탈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과 장세동 전 안기부장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는 전두환 대통령의 회고와 월남전에 포병 소위로 참전했던 김광휘 씨의 일간지 인터뷰의 일부 인용으로 대신하겠습니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을 때 일이다. 1966년 4월 19일, 전두환 중령은 부대의 장교들과 테니스를 치고 있었다. (중략)// 테니스 경기가 한창 진행되던 중에, 우리 군이 순찰을 나갔다가 베트콩의 자동화기에 습격당해 장교 4명이 부상하고 사병 1명이 사망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중략) // 당시 장교들은 육사 출신으로 명예심과 책임감이 강해 전투에서 물러섬이 없었다. 소대장이 총에 맞자 중대장이던 장세동은 지휘를 하려고 일어났다가 오른쪽 어깨에 관통상을 입었다. 중상을 입은 장세동은 사단 야전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전두환 중령은 병원으로 장세동을 문병했다. 그때 장세동이 “선배님, 제 골대가 부러졌습니다.”라고 보고하자 전두환은 “자네가 육사의 체면을 살렸네.”라고 위로했다. 이것이 전두환과 장세동의 첫 만남이다. (중략)// 장세동은 월남전 당시, 용감하고 헌신적인 군인으로서 공평무사한 지휘관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 장세동의 군인다운 모습을 전두환은 눈여겨보았던 것 같다. 그 후로 전두환은 장세동을 중용하고 평생의 동지이자 부하로 함께했다.』
(조선일보, 2020. 9. 28) 

필자는 한때 경복궁 맞은편에 자리한,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바뀐 국군서울지구병원에서 불규칙적으로 진료를 했습니다. 국군서울지구병원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져 경의전(경성의학전문대)으로 불리다가 한국전쟁 때는 수도육군병원으로, 그 후엔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개편되어 대통령과 그 가족, 청와대 근무자와 각료들의 진료를 담당했습니다. 대통령의 건강 문제를 다루는 병원이었기 에 청와대 경호실의 관리하에 있었습니다. 당시 필자는 청와대 경호실장이던 장세동 실장을 진료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당하고 귀공자 같은 용모의 신사였습니다. 게다가 청와대 경호실장이라는 막강한 권력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대할 때는 늘 정중하고 깍듯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두환 대통령의 이야기나 필자의 경험을 통해 갖게 된 장세동 씨에 대한 인상은 충성심 있는 군인이자 예의 바른 신사였습니다.

훗날 전두환 대통령은 연희동 자택으로 백담사에 머물 때 자신을 진료해준 의료진을 초대했습니다. 왕복 하루가 걸리는 길을 달려가 자신의 건강을 돌봐준 의료진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날 대통령 주치의였던 한용철 교수(서울대학교 흉부내과)를 비롯해 이비인후과, 안과, 피부과 담당 의료진이 참석했습니다. 아마도 의료진 가운데 필자가 백담사를 가장 자주 방문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참석자 중 한용철 교수는 전두환 대통령과 연배가 비슷해 서로 편하게 대하던 사이였습니다. 이런저런 환담이 오가던 중 한용철 교수가 “각하, 오늘 얼굴에 화기가 도십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하고 묻자 전두환 대통령은 “기분 좋지, 오늘 부장(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나왔잖아요. 아까 왔다 갔어요. 그래서 내가 정말 기분이 좋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연희동을 방문한 날,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 전두환 대통령을 방문했던 것입니다. 

다음은 필자가 국군서울지구병원 L 병원장에게 들은 장세동 부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외국 순방을 떠났을 때의 일입니다. 대통령의 외국 방문에는 청와대 의무실장과 주치의가 동행하기 때문에 지구병원 병원장은 병원에서 대기해야 하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장은 ‘대통령이 외국 순방 중이니 며칠 자리를 비워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장세동 경호실장을 찾아가 잠시 외국에 다녀와도 되겠느냐며 허락을 구했습니다. 병원장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장세동 실장은 “이 새끼!” 하고 화를 버럭 내며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병원장을 만난 필자는 절뚝거리며 걷는 그에게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병원장은 위의 얘기를 털어놓으며 “장 실장이 어떤 분인데 그런 말을 했으니 제가 맞아도 싸죠”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장세동 실장은 자신의 임무에 철두철미한 사람이었나 봅니다. 역시 L 병원장이 들려준 이야기인데, 장세동 실장은 대통령이 옛 청와대 관저에 머물 경우, 자신도 건물 1층에서 예외 없이 24시간 내내 구두끈도 풀지 않은 채 대기했다고 합니다. 퇴근도 거의 하지 않고 청와대에서 조용히 대통령을 지킨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렇듯 장세동 경호실장은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대통령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를 알아주는 주군에게는 목숨도 바친다”라는 옛말이 떠오릅니다.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전두환 대통령이 있어 장세동 부장의 충성도 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장세동 부장은 전두환 대통령을 ‘어르신’이라고 호칭합니다. 전두환 대통령의 회고록 중 백담사 생육신 명단에 장세동이라는 이름이 맨 먼저 등장하는 이유를 알 듯싶습니다. 

‘갓김치’ 이야기는 백담사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겸상(兼床)으로 식사하던 중 들었던 일화입니다. 밥상에 놓인 반찬 그릇을 가리키며 전두환 대통령이 물었습니다. “이 박사, 저 갓김치를 먹어봤어요?” 필자가 “처음인데요” 하자 “참 맛있으니 한번 맛보세요” 하시기에 한쪽을 입에 넣었습니다. “약간 쓴 듯 새콤한 게 맛이 괜찮은데요.” 필자의 말에 전두환 대통령은 기뻐하며 “그렇지요, 맛있습니다”라고 하신 후, 갓김치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초급장교로 광주(光州)보병학교에 부임할 당시, 그 지역 셋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집주인이 한번 맛보라며 갓김치를 줬는데, 그게 무척 맛있었답니다. 셋방살이하는 신혼부부가 갓김치를 맛있게 먹는 걸 본 집주인은 젊은 장교가 임지를 여기저기 옮길 때마다 계속 갓김치를 공급해주었습니다. 청와대 시절에도 그때의 인연이 이어졌다며, 전두환 대통령은 무척 고마워하셨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조금은 놀라며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이 갓김치도 그분이 이곳 백담사까지 보내온 것입니까?” 그러자 전두환 대통령은 “여기 백담사에 들어오는 음식이나 물품은 모두 철저한 검열 절차를 거쳐야 해요. 그래서 지금 백담사 주둔 경비원 중 그곳 출신인 한 대원이 집에서 갓김치를 가져와 우리에게 나누어준 것이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정이 넘쳐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주해: 필자는 이제 갓김치의 큰 애호자이다.) 

문득 “사람 살 곳은 고을마다 있다. 아무리 어려운 때라도 도와주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人間到處有靑山)”라는 글귀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고 전두환 대통령을 많은 사람이 경원(敬遠)합니다. 그래도 이승을 떠난 망인(亡人)의 유골이 한 해가 지나도록 안식처를 못 찾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우리 사회가 전직 대통령의 유골 모실 자리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거운 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외과 수술하듯 도려낼 수 없다 (Vergangenheit lässt sich nicht chirurugisch entfernen).” 꿈에 나타나는 히틀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토로한 영국 거주 독일 작가 카타리나 폴크너(Katharina Volckmer, 1987~ )의 말입니다. 우리 사회도 차분히 생각해봐야 할 얘기인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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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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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 드립니다 (58.XXX.XXX.113)
히틀러를 칭송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도 있는데 전두환을 그리 생각한다 한들 뭐라고 하겠습니까? 병원장에게 폭력을 행사한 장씨 마저 칭찬하다니 유구무언입니다. 더구나 의료인이면서. 겸상의 은혜가 그리 좋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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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4 00:21:09
1 4
Sungnack1212 (218.XXX.XXX.234)
1)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필자는 그 폭력 상황이 발생한 정황을
묘사한 것 뿐이지, 폭력에 대한 저의 생각을 담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물리적 폭행은 물론 언어 폭행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의사로, 교수로 이사회에서 생활하면서, 환자에게는 물론 제자에게도 반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폭력을 경계하는 사람입니다.
필자의 변변치 못한 표현으로 심기가 불편하셨다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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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9 23:33:55
0 0
김성규 (222.XXX.XXX.94)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할 것인바, 공적과 과오를 나누어 살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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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3 14: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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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생각 (218.XXX.XXX.234)
지향하는 사회 품격에는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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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9 23:38:58
0 0
김완수 (39.XXX.XXX.105)
주사파가 설쳐대는 시대가 도래하여 전직 대통령의 유골조차 장례를 못 모시는 세태가 한심스허울 뿐입니다.
존중의 사회가 되어 함께 지켜야 할 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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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3 1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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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nack1212 (218.XXX.XXX.234)
우리 사회는 자고로 망자에게는 너그러웠다고 생가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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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5 12:46:34
0 0
조용한 관찰자 (175.XXX.XXX.166)
그 분이 대통령이던 시절에는 저는 그를 몹시 싫어했습니다. 많은 다른 사람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종북주사파들이 탄핵이란 완벽한 선동을 통해 정권을 거머쥐면서 더 이상 다른 정치적 일탈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무법세상을 만들었던 것을 상기하면 이제는 오히려 그분의 공과를 종북주사파들의 행태와 극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형국이 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당시 유신헌법 체제하에서 불공정하게 대통령이 됐다 하더라도, 종북 주사파의 집권 이후 광범위한 부정선거에 의한 선거가 이루어졌다면(의혹제기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군사정권의 압박을 넘어서는 용서할 수 없는 행위가 됩니다. 그러나 실제는 부정선거의 증거가 차고 넘치는 데에도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법원의 선거소송 재판 행태는 설명 자체가 안됩니다. 그분의 행적을 포함하여 지난 세월에 대한 평가는 부정선거의 진실과 함께 이제 시작 단계에 들어섰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장세동씨도 귀감이 되는 한국인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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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3 10:52:00
1 1
여러생각 (218.XXX.XXX.234)
역사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실감하게 되는 근래 우리 사회인가 싶습니다.
역사가 만들어지는 시공간에 거리를 두는 것도 바람직한 사회의 지혜인가 싶습니다.
많은 점에서 저의 글에 동감하여주심에 고마운 마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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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9 23:53:1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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