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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
노경아 2023년 02월 17일 (금) 00:00:26

선배: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밤 분위기에 홀려 딱 한 번 사고 쳤는데 우리 ○○가 생길 줄 누가 알았겠어. 사랑하는 감정도 없이 앞뒤 안 가리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혼부터 했지. 참 이상하지, 그러고 나니 애 아빠가 미친 듯이 좋아지더라. 반지하 전셋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는데, 화장실 주방 베란다 등 집 안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도 그땐 마냥 좋았어.

나: 그땐? 지금은 아니란 얘기야?

선배: 누가 말로 먹고사는 사람 아니랄까 봐 바로 집어내네. (호호호) 지금도 미친 듯이 사랑하면 그건 그냥 미친 거야. 잘 알면서 왜 그러니. 

나: ‘결혼은 모든 조건을 갖춘 남자랑 해야 한다’고 눈 부릅뜨고 말하던 선배가 갑자기 마흔 넘은 고시생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배신당한 느낌이었어. 근데, 그때 그렇게 후다닥 아이 갖고 결혼한 거 정말 잘했어. 안 그랬으면 지금껏, 아니 앞으로도 계속 혼자일걸.”

20·30대 청년들은 중년 여성들의 이 대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하룻밤 사고에 무조건 결혼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기에 반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불과 30년도 안 된 일이 이들에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을 거예요. 요즘 대다수 청년은 셋방에서 ‘모냥(양) 빠지게’ 사느니 혼자 벌어 즐기는 게 낫다고 생각하니까요. 하룻밤 사고로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한다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일걸요. 

대중가요 노랫말처럼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의 시대에 결혼적령기도 달라졌습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1960년 남자 25.4세, 여자 21.6세였던 평균 초혼 연령은 1991년 남자 27.9세, 여자 24.8세로, 2021년엔 남자 33.4세, 여자 31.1세로 높아졌습니다. 30대 신부가 20대를 초월하면서 “서른 전에 결혼하지 않으면 노처녀”라는 말은 그야말로 옛말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어영부영하다가 결혼이 늦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회사 일에 열중하느라, 혹은 공부에 빠져 결혼할 시기를 놓친 이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렇다 보니 경제적 여건은 좋은 편입니다. 나이만큼 정신적으로도 성숙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잘 지낼 수도 있습니다. 50대 초반에 결혼한 지인 부부의 생활신조처럼 ‘짧지만 굵게’ 사랑하겠지요.

만혼(晩婚)이 낳은 풍경도 재미있습니다.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라는 익숙한 주례사가 만혼 부부에겐 “검은머리 파뿌리 되기 전에 결혼해서 더욱 축하…”로 바뀝니다. “언제 결혼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므로…”라는 대목에선 “뭐 하느라 이제 결혼한대…”라는 하객들의 귓속말이 쏙 들어갑니다.

즐거운 날 초를 치는 이들도 있습니다. 신랑신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애부터 빨리 만들어라”라고 말하는 집안 어른들입니다. 인삼, 녹용 등 보약 상자에 ‘아기 만들어 와’라고 큼지막하게 써서 신혼여행 떠나는 부부에게 선물하는, 눈치 없는 친구들도 분위기를 깨긴 마찬가지입니다. 

꼰대 소리를 듣겠지만 저 역시 만혼 증가가 저출산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걱정스럽습니다. 2021년 여성의 첫 출산 연령은 32.6세로 전년보다 0.3세 높아졌습니다. 10년 전보다 2.3세, 20년 전보다는 4.6세 늦어졌습니다.

물론 몸이 건강하고, 평균수명이 늘어나 늦은 나이에도 문제없이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이가 많은 산모는 태아뿐만 아니라 자신도 위험한 상황에 처할 확률 또한 높습니다. 육아 역시 젊은 엄마아빠에 비해 더 힘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오래 살진 않았지만 결혼을 해본 경험자로서 조혼이 좋다, 만혼이 좋다 딱 잘라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결혼은 시기가 아니라 상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아갈 사람의 인성을 잘 살펴, 평생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을지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부부는 믿음이 있어야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으며, 사는 내내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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