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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길 위의 인생: 한국의 보행자
허찬국 2023년 02월 14일 (화) 00:43:42

한 4년 전쯤 경기도 남부 농촌 지역으로 이사 후 주변 도로들의 인도 사정이 열악한 것에 대해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지 꽤 되었습니다. 보행자가 지나치게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개인적 문제의식이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 우리나라의 사정이 매우 심각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먼저 통계를 살펴보지요. 인구 대비 자동차 보유대수가 2020년 기준 OECD 평균보다 낮지만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자가 많은 것은 잘 알려졌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건수가 제일 많고,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5.9명으로 평균인 4.7명보다 높지만 비교대상국 중 8번째입니다. 그런데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가 사망한 비중이 비교 대상 29개국 중 단연 제일 높습니다(도로교통공단 자료). 

이사 직후 가로수가 멋지게 양쪽으로 늘어선 도로(두창로, 사진 1)로 조깅하러 나갔다가 자동차를 피하느라 혼비백산하고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밤에 그 길로 운전하여 귀가하다 섬뜩한 경험을 했습니다. 가로등이 드문 길가에 보행자가 있는 것을 근접해서야 발견한 것입니다. 보행자 운동화에 있는 흰색 줄무늬가 전조등 빛을 반사하지 않았더라면 짙은 색 복장의 보행자가 있는지 모를뻔 했습니다. 차와 보행자의 경로가 조금 더 가까워 중첩되었더라면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죠. 차를 피하느라 혼났던 길에서 졸지에 교통사고 가해자가 될 뻔했습니다.

집에서 비슷한 거리(4~5km)에 면 소재지 두 곳이 있습니다. 주소지 행정복지센터(면사무소)의 헬스장에 자주 다니는데 날씨만 좋으면 운동 삼아 걸어가기에 적당한 거리이지만 매번 차를 이용합니다. 제한속도가 시속 60km(이하 km/h)이지만 그보다 빨리 다니는 차가 많은 이 도로(경기도 지방도 318번, 원삼면 인근, 사진 2)를 두어 번 걸어보고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포기했습니다. 두창로와 달리 노면에 차도와 인도 경계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 얼굴 가까이 ‘우왕~’하고 달리는 큰 트럭이 일으키는 바람과 엄청난 소음, 진동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런 길을 다시 걷지 않으려는 것을 이해할 겁니다. 그 길에서 걷는 사람을 보기 어려운 게 자연스러운 일이죠.

   
  왼쪽 ' 차와 사람이 같이 다니기 어려운 두창로' / 오른쪽 ' 강심장 보행자만 이용할 수 있는 인도'  

과거에 일반도로는 사람, 우마차, 자전거, 자동차가 같이 이용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이제는 자동차전용도로뿐 아니라 모든 길에서 자동차가 보행자도 밀어내고 최상위 사용자가 되었습니다. 좀 엉성해도 인도가 구비된 서울·부산 등 대도시나 중소도시 도심 지역 사정은 나은 편입니다. 하지만 그 외 지역의 여건은 열악합니다. 

근래 여가활동을 위해 멀리 운전하는 일이 늘며 이전에 몰랐던 곳곳의 도로를 다녀 볼 기회가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잘 포장된 자동차전용도로와 국도, 지방도로망(網)에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길이 좋아서인지 과속단속 카메라가 없는 rn간에서 50~60km/h의 속도제한을 지키는 차가 많지 않은 듯합니다. 제한속도가 80km/h인 국도 44번의 홍천-인제 구간을 자주 다니는 편인데 제한속도보다 빠른 차가 많습니다. 그 길가로 가끔 사이클 선수들이 훈련 다니는 것을 볼 때 오금이 저립니다. 웬일인지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점점 더 큰 승용차와 SUV를 선호하는 것도 보행자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추세이지요. 

국도·지방도는 소도시나 마을을 통과합니다. 보통 20~30km/h 정도 감속해야 낮아진 제한속도를 지킬 수 있는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잘 지켜졌다면 곳곳에 과속방지턱을 설치할 필요가 없겠지요. 속도를 낮추라는 지시가 있는 구역이 있습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학교 앞 30km/h 구간은 잘 지켜지지만 그 이외 ‘노인보호구역’, ‘마을주민보호구간’ 등은 효과가 크지 않아 보입니다. 과속방지턱, 단속카메라가 없다면 운전자가 얼마나 순응할지 의문시됩니다. 운전자의 양식에만 의존해서는 보행자 보호가 미흡하기에 좀 더 적극적인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입니다. 

OECD 국제비교에서 유추해보면 앞으로 우리의 평균 소득이 늘면서 자동차 보유 대수도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당연히 사고도 더 늘겠지요.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통계를 보면 사고 건수는 전체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인 것이 다행입니다. 하지만 선진국이라고 뽐내는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 사망자, 특히 보행자가 사망하는 경우가 다른 데에 비교해 상당히 많습니다. 

작금 정부와 국회는 ‘민생’ 챙기기 떼창에 여념 없습니다. 요즘은 난방비 지원금, 공공요금 등이 주요 관심사인 듯합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 국민의 삶 개선에 필요한 과제를 고민할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선진국 수준에 못 미치는 보행자 보호를 강화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입니다. 자동차전용도로를 제외한 모든 도로를 보행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검토하며 대폭 정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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