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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복이 형제
한만수 2023년 02월 02일 (목) 02:34:28

민족의 명절이라는 설이 지났습니다. 해가 갈수록 설에 대한 의미가 떡국이나 먹고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의미 정도로 축소되는 것 같습니다. 올해 같은 경우는 지난해보다 날씨까지 추워서 차례를 지내러 귀성을 하거나 귀향을 하는 인파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고속도로 밀린다는 방송이 명절 분위기를 띄우는데 한 몫을 단단히 했는데 올해는 고속도로도 조용했습니다.

고향 친구 3명이 삼거리에서 장사를 합니다. 한 친구는 정육식당을 합니다. 다른 친구는 문방구를 하고 또 다른 친구는 중화식당을 합니다. 농사를 짓는 친구들을 볼 때는 부모를 따라서 농업을 이어받는구나 하는 생각 정도만 드는데, 그 친구들이 삼거리에서 장사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삼거리에서 장사하는 친구들은 서로 자주 얼굴도 보고 하니까 재미있게 사는 줄 알았습니다. 막상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면 다들 자기 장사에 열중하다 보면 얼굴 안 보는 날이 더 많다는 겁니다.

명절 때 산소에 가려면 반드시 삼거리를 경유해서 가야 합니다. 삼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이런저런 소식을 주고받으며 저녁 술자리를 약속하기도 합니다.

영복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키와 덩치가 보통 작은 것이 아니고, 나란히 서 있으면 어깨 밑에 머리가 있을 정도로 작습니다. 네 살 어린 영복이 동생도 키가 작습니다. 다른 점은 영복이는 몸이 왜소한데 동생은 키가 작아도 얼굴부터 다부지게 생겼습니다. 성격도 영복이는 내성적이고, 동생 영식이는 외향적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들 형제는 어울려서 노는 광경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 형제를 보면 사람이 불행해지려면 한없이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전형을 보는 것 같습니다. 영복이 아버지는 상을 만들어서 등짐을 지고 객지로 나가 파는 상장사였습니다. 영복이 동생처럼 성격이 괄괄한 아버지는 어느 추운 겨울날 술에 취해 다리 밑에서 동사를 했습니다. 

영복이네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고 젊은 어머니는 자식 형제를 남겨두고 재가를 했습니다. 
영복이 형제는 무당 할머니가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영복이 형제가 키가 작은 이유는 부모님을 닮아서가 아니고 할머니를 닮아서였습니다. 제 장편 대하소설 “금강”에서도 캐릭터를 차용했던 영복이 할머니는 ‘꼬막네’라는 무당이었습니다. 할머니 모습 그대로 그려낸 것이 아니고 작은 키와 무당이라는 점만 차용했습니다. 

나중에 커서 알고 보니 꼬막네는 부인이 있는 박수무당의 첩이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는 무당인 줄만 알았지 박수무당의 첩인 줄은 몰랐습니다. 꼬막네도 키가 작아서 영복이 형제와 세 명이 서 있으면 일부러 키를 맞춘 것처럼 비슷합니다. 

영복이네 집에는 부모도 없는 데다, 할머니가 자주 집을 비우는 까닭에 또래들의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영식이도 같이 놀면 좋을 텐데 우리들이 집에 가면 영식이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갑니다. 겨울에는 밖이 추운데도 영복이는 바깥으로 나가는 영식이를 잡지 않았습니다. 

“내 말을 안 들어.”

왜 동생을 추운 밖으로 내모냐며 영복이한테 물으면 영복이는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 뿐입니다. 
명절 전날에는 친구들이 집에서 부침이며, 과일, 떡 같은 것을 들고 영복이네 집에 모여 밤이 늦도록 놀았습니다. 명절 같은 날은 개가를 한 어머니가 그리울 텐데도 영복이는 단 한 번도 어머니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어머니가 안 계셨던 것처럼 재미있는 얼굴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 영복이는 어느 핸가 다른 친구와 함께 면소재지에 약을 팔러 온 계몽극단을 따라서 집을 나갔습니다. 떠돌이 극단은 활발한 성격의 영식이가 맞을 텐데 그 반대라는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도 영복이는 계속 외지에서 돌았습니다. 동생 영식이는 지금도 고향에서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와 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재가를 한 어머니 댁으로 들어가 살았습니다. 마침 의붓아버지가 돌아가신 데다 어머니가 인적이 드문 외딴집에서 작은 식당을 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들어간 것 같습니다.

​영복이는 몇 년간 계몽극단을 따라다니다가, 서울에 있는 룸살롱의 웨이터로 일하기도 하고, 택시 기사로 근무한다는 소식을 주는가 했더니, 양초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던 어느 해는 여자를 데리고 와서 아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영복이보다 키가 훨씬 커서 누나와 같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내는 작고 귀여워 보이는 스타일의 영복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느 해부터인가 영복이는 명절 다음 날이 되면 혼자 고향에 나타났습니다. 어머니 집에 가지 않고 정육식당을 하는 친구 집이나 다른 친구 집에 머물렀습니다.

삼거리를 지나다 보면 정육식당 문이 열리면서 키가 작은 영복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도 아니고, 반갑다며 손을 흔들지도 않습니다. 그냥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모습으로 바라만 봅니다. 
그 모습은 영복이가 어렸을 때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영복이는 어렸을 때도 장터나, 냇가, 혹은 읍내에서 우연히 만나도 특별하게 반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걸음을 멈추고 싱긋이 웃는 얼굴로 바라만 보았습니다. 

영복이는 식당 의자에 앉아서 제가 묻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근황을 먼저 말합니다. 지금은 평택에서 살고 있는데 가죽으로 가방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혹은, 얼마 전에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부평 공단에 있는 공장에 다니고 있는데 먹고살 정도의 월급은 나온다는 둥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신상을 털어놓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면 더는 영복이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없습니다. 동생 영식이는 요즘도 매일 술을  마시느냐? 어머니한테는 가 봤냐는 둥 해마다 똑같은 질문을 하고, 저녁에 만나서 술 한잔 하자는 말을 하고 헤어집니다.

고향에 부모님 산소만 남겨두고 객지로 떠난 친구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삼거리 친구들을 찾지 않습니다. 삼거리 친구들을 찾는다는 것은 고향에 있는 친구들이나, 명절을 쇠러 고향에 와 있는 친구들과 함께 술 한잔 하자는 무언의 제안입니다. 가게 주인들이 여기 누가 와 있으니 이쪽으로 오라고 친구들을 소집하는 까닭입니다. 

영복이는 거의 10년여 동안이나 명절이 되면 고향을 찾았습니다. 어느 해부터인가 영복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제 아버지처럼 술에 취해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영식이에게 물어보면 전화번호조차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들 형제는 어렸을 때부터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았기에 더는 묻지 않았습니다. 

명절 다음 날이면 정육식당 문을 열고 씩 웃는 모습을 봇 본 지가 5~6년 정도 되어 갑니다. 친구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영복이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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